롯데그룹 '56조 부동산'은 그림의 떡?…핵심은 못 팔고 비핵심은 안 팔려
입력 24.11.27 07:00
월드타워 등 핵심자산 유동화 쉽지 않고
부동산 시장 침체 속 울산호텔 매각 실패도
자산 재평가로 시장 달래기 나서지만
그룹 결단 없인 한계 뚜렷…점포 효율화 그칠듯
  • 롯데그룹이 50조원대 규모의 유휴 부동산을 앞세워 시장의 유동성 위기 우려를 잠재우고 있지만, 실제 유동화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잠실 월드타워나 롯데호텔 서울 본점 같은 우량 자산은 그룹의 상징성을 이유로 처분이 어렵고,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백화점·마트 등 비핵심 자산은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발이 묶였다는 평가다.

    올해 들어 롯데그룹은 양대 축인 화학과 유통 부문이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만 4136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주가도 63% 폭락했다. 롯데쇼핑도 이커머스 부문 누적 적자 5540억원에 부채비율 180%를 기록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롯데그룹은 지난주부터 금융사 및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IR)를 연이어 개최하고 전체 부동산 가치가 56조원에 달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장부가액으로 기록된 토지(3조2000억원), 건물(1조3000억원) 등 유형자산 6조7000여억원과 투자 부동산 등을 시장 기준으로 재평가하면 30% 이상의 자산 증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동산업계에서 주목하는 롯데그룹의 핵심 자산은 크게 세 곳이다. 서울 송파구의 롯데월드타워는 장부가액 1조4000억원이지만 시장 평가가치는 4조4300억원 규모다. 금싸라기 땅이지만 현재 물류센터 및 차량 정비 공장으로 쓰이는 서울 서초동 롯데칠성음료 부지는 장부가액 4000억원대에 불과하지만 강남 시세(3.3㎡당 2억원)를 적용하면 2조원을 훌쩍 넘는다. 롯데호텔 본점인 소공동 서울 호텔도 건물과 부동산을 포함, 최대 7조원 수준의 자산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런 핵심 자산의 실제 매각이나 유동화는 쉽지 않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최근 몇 년간 롯데그룹의 핵심 부동산 매각은 주차장 부지 등 일부 유휴 자산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유동화보다는 자산 효율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2000년대 후반부터 활발히 부동산 자산 유동화를 진행해왔지만, 대개 점포 정리 수준에 그쳤다. 롯데쇼핑은 2008년 롯데마트 2개점을 1660억원에 매각했고, 2010~2011년에는 롯데백화점 분당점 등 6개점을 5949억원에 처분했다. 2014년에는 일산점 등 7개점(6017억원), 동래점 등 5개점(5001억원)을 각각 매각하며 이미 상당수의 점포 유동화를 마쳤다.

    운용업계에선 한화그룹이 활용했던 '세일 앤 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도 거론된다. 앞서 한화그룹은 신규사업 투자 확보 일환으로 갤러리아 광교점과 천안 센터시티점을 이같은 방식으로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부동산 전문 운용사 임원은 "롯데의 상징과도 같은 자산들을 스폰서 리츠인 롯데리츠에도 넘기지 않는 마당에, 외부에 매각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세일 앤 리스백을 시도해도 자산 가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외국계를 제외하고 국내에서는 매수자를 찾기 힘든 데다, 운용사가 경매행을 택하면 영업권이 끊길 수 있어 롯데그룹 입장에선 불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초동 롯데칠성 부지의 경우도 개발 잠재력은 크지만, 실제 가치 실현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시 개발 플랜에 따라 용적률이 최대 1130%까지 상향될 수 있지만, 기부채납 등 공공기여 부담이 크고 개발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룹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도 발목을 잡는다. 월드타워나 호텔 본점 같은 상징적 자산의 처분은 단순한 매각을 넘어 그룹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다.현재 롯데지주 투자전략팀(정경운 상무 등)이 M&A 실무를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결정은 결국 그룹 총수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 비핵심 자산 매각도 녹록지 않다. 롯데건설의 PF사업 시공권, 롯데물산의 인천 구월동 등 비수도권 토지, 롯데쇼핑 안산공장 및 분당 물류센터 등 비영업용 자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올해 롯데그룹은 L7 강남, 롯데 시티호텔 명동, 롯데호텔 울산 등을 '패키지 딜' 형태로 시장에 내놓았지만, 가격에 대한 눈높이 차가 커 거래가 무산됐다. 특히 사업성이 떨어지는 울산 소재의 호텔 처분을 두고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매물로 나온 부산 센텀시티 백화점도 전망이 밝지 않다. 매출이 감소 추세인데다 인근 신세계 센텀시티점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폐점 및 재개발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결국 롯데그룹이 내세우는 56조원 규모의 부동산 자산은 시장을 향한 '방패막이'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산 가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유동화까지 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분위기다. 

    특히 부동산 시장 전반의 침체 속에서 대규모 거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결국 보유 자산, 그중에서도 계열사의 단계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핵심자산은 상징성 때문에 매각이 어렵고, 비핵심자산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유휴자산 매각만으로는 당면한 유동성 이슈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