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탁사 위기에…LF그룹의 코람코자산신탁 사업재편도 '암초'
입력 24.12.03 07:00
非금융지주 신탁업계 유동성 불안 우려 커지자
당국, 코람코 신탁업 분리매각 시도부터 '제동'
신탁업 부담스런 LF, 리츠·펀드 통합 운용 구상
핵심 인력 자회사 이동으로 우회 전략 모색하나
  •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불황으로 국내 신탁업계가 유동성 위기를 겪는 가운데, 업계 상위권인 코람코자산신탁의 사업재편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무궁화신탁 등 비(非)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의 생존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LF그룹이 추진하던 펀드 운용업 중심의 코람코 사업재편도 금융 당국의 눈치로 제동이 걸린 분위기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람코자산신탁의 최대주주인 LF그룹은 올해 초부터 리츠 및 펀드 운용사 중심의 사업 구조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최근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다. 코람코와 함께 3대 부동산 운용사로 꼽히는 이지스자산운용이나 마스턴투자운용처럼 리츠와 펀드 운용을 통합해 사업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코람코자산신탁은 리츠사업과 운용사업을 통합하고 신탁사업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코람코 사업 구조는 리츠업과 신탁업이 모회사 코람코자산신탁에 혼재돼 있고, 자회사인 코람코자산운용에서 펀드 운용을 담당하는 이원화된 구조다. 이는 계열사간 정보교류 제한(차이니즈월) 등으로 인해 리츠와 펀드 운용 간 시너지 창출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관계 당국인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는 현재 신탁업계 전반의 부실 위험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우량 신탁사의 사업구조 개편이 시장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코람코 측에 반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신탁사들은 최근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당국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 무궁화신탁은 영업용순자본비율(NCR) 69%로 경영개선명령을 받았고, 국내 최대 부동산 디벨로퍼 회사 엠디엠(MDM) 계열사인 한국토지신탁과 한국자산신탁도 임직원의 부당 사익추구 혐의로 검찰 조사에 들어간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평가받았던 금융지주 계열사들의 상황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신한자산신탁은 올해 상반기에만 17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KB부동산신탁도 상반기 기준으로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양사 모두 모회사인 금융지주로부터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 인수 등 자금 수혈을 받아 위기를 버텨내는 중이다.

    시장에선 코람코자산신탁의 신탁사업부도 자산건전성 우려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상반기 보고서에서 코람코자산신탁의 고정이하여신이 3653억원, 고정이하여신비율이 50.8%로 자산건전성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신탁계정대 총액은 3866억원, 부채비율은 40%까지 증가했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의류 제조·판매가 주력인 모기업 LF그룹 입장에선 개발 사업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 신탁업을 분리매각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반면 당국은 코람코의 신탁업 분리를 허용할 경우 여러 신탁사들이 이를 선례로 삼아 비슷한 시도를 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코람코자산신탁은 운용 중인 3개 상장리츠에서도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코람코더원리츠는 프로젝트성 리츠로 추가 자산 편입이 제한적이며, 이랜드리테일과 합작한 이리츠코크렙은 이랜드 측의 자금난으로 신규 자산 편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LF그룹은 인력 이동을 통한 우회 전략을 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람코자산신탁에서 리츠사업부문을 이끌던 윤장호 부사장이 자회사 코람코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고, 주요 리츠 매니저들의 추가 이동도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LF그룹이 직접적인 사업부문 분리가 어려워지자, 인력 이동을 통해 운용사업 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신탁 시장이 금융지주 계열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개별 신탁사들은 자본력 부족으로 위기 상황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코람코자산신탁도 결국은 운용사업 중심으로 전환하거나 신탁사업부를 다른 금융그룹에 매각하는 등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코람코자산신탁 측은 "신탁업 분리 작업은 리츠와 펀드(운용)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사업구조 검토의 일환"이라며 "신탁사업부 매각 자체를 검토한 바는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