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 '관치'도 느슨? 금융사 연말인사 코드는 '내 식구'ㆍ'버티기'
입력 24.12.11 07:00
탄핵정국 속 금융당국 콘트롤 타워 공백 우려
금융사들은 '내 사람' 발탁하며 조직 장악에 무게
농협은 중앙회 인사 폭 커지며 회장까지 교체 전망
수혜자는 임종룡 회장? 불법대출 이슈 수면 아래로
  • 탄핵정국에 들어서면서 경제 컨트롤 타워가 마비되는 모습이다.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정부가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상 ‘정책 공백’ 상태를 맞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해마다 이맘때 벌어졌던 인사개입 관치(官治) 논란도 실종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금융지주들은 '내 식구' 챙기기에 나서며 조직 장악력을 잇따라 강화하는 모양새다. 내부 단속을 단단히 한 후, 내년 정치ㆍ경제 양면에 걸쳐 몰아닥질 불확실성을 납작 엎드린 채 버텨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펼쳐지며 금융당국의 영(令)이 서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시장 콘트롤 타워 기능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평가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으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장기화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이미 해외 금융기관들은 리포트를 내고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당장 9일 증시가 폭락하자 정부는 '증시안정펀드' 카드를 꺼냈지만, 누가 언제 얼마나 투입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게 없어 현업 최일선의 비웃음만 샀다"며 "10일 증시 회복세도 정부 대책 덕분이라기보단 단기 바닥 국면에서 외국인과 기관(금융투자)이 현선물 차익거래에 나서며 오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뢰가 중요한 금융시장에서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점차 커지자 금융당국은 진화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 증시 엑소더스에 대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책임있는 역할을 지속하라"고 주문했다.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해외 금융사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요구하기도 했다.

    주요 금융지주들이 인사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거대 이슈가 불거지며 추후 남은 임직원 인사에서도 정치적 변화에 따른 영향은 불가피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미 인사를 진행한 금융사들의 인사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친정 체제 강화'였다. 회장 및 최고경영자(CEO)들과 접점이 있는 인사들이 핵심 계열사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외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에서 내부에서 나올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인선으로 풀이된다.  

    비상계엄 직후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가 열린 신한금융은 진옥동 회장이 은행장이었던 시절 첫 비서실장이었던 정상혁 행장의 연임을 의결했다. 일반적인 연임 임기는 1년이지만, 정 행장은 2년의 임기를 받았다. 진 회장이 최근 가장 신임하는 계열사 CEO 중 하나로 꼽히는 이영종 신한라이프 사장도 연임됐다. 진 회장과 실무자시절 오사카지점에서 동고동락한 전필환 부행장은 신한캐피탈의 새 사장으로 낙점됐다.

    KB금융은 앞서 지난달 연 계열사대표이사후보천위원회(대추위)에서 이환주 현 KB라이프생명 대표를 새 KB국민은행장으로 추천했다. 이를 통해 사상 첫 주택은행 출신 회장-행장 라인업이 완성됐다. 공석이 된 KB라이프 대표 자리엔 정문철 부행장이 내정됐다. 정 부행장은 양 회장의 전주고ㆍ서울대 동문으로, 현 은행 부행장 중 가장 연차가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계열사 대표이사 인선이 진행중인 농협금융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인사권 행사가 본격화한 형국이다. 강 회장은 최근 NH농협손해보험, NH저축은행, NH선물 등 계열사 CEO 3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말 농협금융지주 회장 및 농협은행장 임기 만료와 함께 계열사 대표까지 교체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강 회장은 지난해 NH투자증권 대표 선임 당시에도 자신의 선거를 도운 측근을 추천했던 바 있다. '과도한 인사권 행사를 자제하라'는 금융당국의 개입이 이어졌고, 진통 끝에 내부 출신 윤병운 대표가 선임됐다. 올해엔 금융당국의 힘이 빠지며 강 회장의 인사권 행사 의지가 표면화했다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석준 회장 역시 탄핵정국에서 연임은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지주 회장직 역시 강 회장측 인사가 가져갈 거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계열사 CEO 인사뿐 아니라 임원 등 남은 인사도 탄핵정국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반사이익을 크게 누릴 곳은 우리금융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우리금융은 손태승 전 회장의 부당대출 건으로 인해 금융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국이 급변하고 윤 대통령의 측근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거취도 전망이 어려워지며, 우리금융 불법대출 사건 자체가 탄핵정국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조병규 행장이 자진해 연임을 포기하는 선에서 은행에 대한 불법대출 이슈가 마무리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며 "임종룡 회장의 이른바 '런던 인맥' 중 하나인 정진완 부행장이 차기 은행장으로 내정되며 임 회장 역시 '조직 장악'을 우선으로 가져가겠다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힘이 빠지면 임종룡 회장의 내년 연임 가능성 역시 커진다는 평가다. 현 우리금융 사외이사진은 지난해 임 회장 선임 당시 이를 지지했던 인물들이다. 올해 3월 신규 사외이사 2명이 추가됐는데 현 사외이사로 구성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선임한데다, 모두 교수라는 점에서 임 회장과 각을 세울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임 회장이 추후 단행할 인사에선 금융당국을 비롯한 주변의 시선에선 상당히 자유로워 졌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당장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시기이다 보니 현직 경영진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사실이다. 사실상 금융사들도 현재와 같은 상황은 겪어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비상상황에서 정부에서 현 금융권 인사에 대해서 살펴볼 여유가 없다”라며 “자연스럽게 손 전 회장 불법대출 문제는 수면 아래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