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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투자자들이 한창 다음해 청사진을 그릴 시기에 계엄 사태가 터지며 자본시장이 얼어붙었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기업의 불안감은 더 커졌고 외국계 자금은 한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새해에 돈을 쓸 수 있는 곳은 사실상 국내 기반의 대형 사모펀드(PEF)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을 잡느냐에 따라 여러 거래 당사자들의 성적표도 갈릴 전망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지난 2년여간 유동성 부족에 고전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실적 부진을 겪으며 사업 정리와 축소에 집중했다. 내년 역시 투자 시장에서 기업을 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계엄 사태까지 터졌다. 많은 기업들이 정기인사가 끝난 후에도 내년 전략 설정에 애를 먹고 있다.
해외에선 탄핵 정국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우려하며 투자 축소를 언급했다. 환율 효과와 미소진자금에 힘입어 한국 투자를 늘리려던 글로벌 PEF들도 유탄을 맞았다. 본사에서 이미 한국 투자에 신중하라는 지침이 내려지고 있다. 한국 자산 회수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 글로벌 IB 관계자는 "글로벌 PEF 본사에서 한국 투자를 신중히 보라는 지침이 내려오고 있다"며 "한국 투자를 꼭 막지 않더라도 본사 투자 심의를 넘기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글로벌 PEF가 위축됨에 따라 내년 초 자본시장에서 '신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내년부터 더 본격적으로 자산 매각 및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 롯데렌탈 등 조단위 매물이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런 자산들을 받아줄 곳이 있어야 하는데 현 시점에 믿을 곳은 결국 국내에서 자금을 받거나 국내에 주요 사업 기반을 둔 대형 PEF들이다. 대형 PEF들도 자신들 외엔 기업의 구조조정을 도울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조단위 PEF를 결성한 곳이 많아 여력은 충분하다.
MBK파트너스는 10조원 목표의 6호 블라인드펀드를 본격적으로 활용한다. 올해 일본 시장에서의 성과가 특히 좋았는데 한국 시장의 중요성도 여전하다. 한국에 투자할 만한 자산이 줄어드는 가운데 고려아연 투자로 향후 한국 내 전략 방향성을 드러냈다.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난이도 높은 거래는 MBK파트너스로 먼저 몰릴 전망이다.
한앤컴퍼니는 올해 4호 펀드(4조7000억원) 활용을 본격화했다. 한온시스템 회수 성과를 냈고, SK스페셜티 인수에 성공했다. MBK파트너스와 함께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을 소화할 능력이 있는 운용사로 꼽힌다. 올해 5호 펀드(2조원)를 결성한 IMM PE도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코비트와 UTK 인수에 성공했고, 여러 대기업에도 투자 제안을 하는 상황이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시가 2배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 롯데렌탈을 인수했다. 올해 SK렌터카에 이어 롯데렌탈까지 사들이며 확고한 1위 사업자가 됐다. 2018년 결성한 아시아 5호 펀드(60억달러) 투자 기한이 반 년가량 남아 소진을 서두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렌탈 인수 후에도 조단위 투자 여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 IMM인베스트먼트, 스카이레이크, 스틱인베스트먼트, 맥쿼리자산운용 등 대형 운용사들도 조단위 펀드를 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경기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내년 초부터 자금을 빨리 소진하기 위해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면 PEF간 손바뀜 거래라도 하겠다는 의지다. 국내 기관투자가(LP)들도 당분간 대형 PEF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보고 있다.
연초 대형 PEF와 어떻게 손을 잡느냐에 따라 자문사와 금융사 등 거래 당사자들의 한 해 농사 결과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전에도 자문사에 제대로 된 보수를 챙겨주는 곳은 대형 PEF뿐이었는데 앞으로는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사들도 대형 PEF가 만족할 금융 조건을 제시하거나 미리 관계를 더 다져두는 것이 중요해졌다. 지난달 IMM PE 연차총회에는 국내 유수의 LP와 금융사들이 총출동해 장사진을 이뤘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계엄 사태 후 불확실성이 커지며 대기업들은 더 움직이기 어려워졌다"며 "결국 내년에 움직일 곳은 써야할 돈이 많은 대형 PEF뿐인데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실적도 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 사태에 탄핵정국 이어지며 시장 급냉각
대기업·글로벌 PE 위축에 '신년 효과' 없을 듯
국내 기반 대형 PEF 외엔 움직일 곳 마땅찮아
대형 PEF에 대어 M&A 소화·자문사 실적 달려
대기업·글로벌 PE 위축에 '신년 효과'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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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12월 1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