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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이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있다며 비상계엄 선포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후 계엄 해제, 탄핵소추안 발의가 이어지며 대통령의 권한이 사실상 정지됐다. 대통령이 스스로 정부 기능을 멈추게 만들었다. 질서있는 퇴진이 이뤄지고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행정력을 되찾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기능하기 어려워지면서 정부 주도의 산업재편이나 구조조정, 기업지원 역시 그 동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시장 상황과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한 정책을 내놓기 쉽지 않고, 정책을 내놓더라도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하는 과정에서도 정쟁이 불가피하다.
석유화학 업계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 주요 기업들은 공급과잉과 원가부담에 수년 째 고전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회사채 상환 문제까지 불거지며 올해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저마다 사업을 축소하거나 자산을 정리하며 자구노력을 이어가지만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
정부가 나서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8일 경제관계부처합동회의를 거쳐 석유화학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저리의 금융지원, 세제 혜택 등이 거론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최 부총리의 발언으로 볼 때 석유화학 관련 정책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며 연내 방안을 발표하겠다는 기존 계획에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산업 재편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주요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과잉 설비를 줄이고 통폐합하는 것인데 이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권위가 사라진 현 정부에 민간 기업들을 설득하고 중재할 능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의 구성이 달라질 가능성이 큰 터라 정책 추진 동력도 약할 수밖에 없다. 석유화학이나 철강 등 산업이 모여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해달라 요청하고 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석유화학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책임질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는 석유화학 외에 조선업과 항공·해운물류 등 분야에도 힘을 싣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선업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후 수혜주로 떠올랐는데 계엄 쇼크로 불안감이 커졌다. 수혜분 일부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규모 방산 수출 계약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항공·해운 분야는 정부 주도로 국적항공사와 원양선사를 한 곳만 남겨놨다. 정부 지원이 중요하지만 담당 부처들은 적극적으로 정책을 마련하기보다 몸사리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저비용항공사(LCC) 시장 재편 역시 상당기간 뒤로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방식의 변화든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부처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해당 부처들이 적극 움직일 상황은 아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도 정국을 살피며 보수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새로 시작하는 M&A들은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서도 행정력 공백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보수 정권은 취약 산업이나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데 적극적이었는데 윤석열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전 정부의 유동성 지원 정책 효과가 이어진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논란과 정쟁에 휩싸이면서 구조조정 같은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면이 크다.
내년엔 장기간 누적된 경기 부진 여파가 본격화할 것이란 우려가 많은데 정부가 이를 선제적으로 대비할 상황이 아니다. 구조조정 첨병을 맡아야 하는 산업은행은 2년여간 부산 이전 문제로 시달렸고, HMM 매각 무산 여파로 자본건전성을 관리하기도 녹록지 않다. 내년 HMM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BIS자기자본비율은 더 하락한다.
산업은행의 자금 조달 조건이 악화하고 정책금융 지원 여력이 약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결국 HMM을 최대한 빨리 매물로 내놓아야 하는데 지난 매각 때보다 원매자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매각을 이끌 선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정상기능할 때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해양수산부 등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HMM을 무조건 팔아야 하는 산업은행과 산업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며 "평상시라면 장관들이 방향을 정하고 용산의 재가를 받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겠지만 지금은 중심을 잡고 거래를 이끌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위기 시 대형 금융지주를 시장 안전판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이후 금융감독당국의 지형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 예견된 상황이라 당국의 발언에서도 전과 이같은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행정력 공백 상태 장기화할 듯
산업재편·구조조정 방향타 상실
정책 내놔도 "책임질 사람 없다"
금융당국·공정위도 눈치 살피기
산업재편·구조조정 방향타 상실
정책 내놔도 "책임질 사람 없다"
금융당국·공정위도 눈치 살피기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12월 1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