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ㆍ매크로 급변 '이중고' 공포에 질린 韓 경제...'회복탄력성'만 믿는다
입력 24.12.12 07:00
내년 韓 경제성장률 1%대 하락...내수ㆍ정부지출 침체 불가피
자본시장 여전히 살얼음판...10일 외국인 국채선물 투매 나오기도
2004년ㆍ2017년 탄핵 당시 헌재 판결 후 경제ㆍ증시 급 회복세
매크로ㆍ대외환경 불확실성은 여전..."기업 이익은 성장 가능"
  • "최근 증권가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가 '회복탄력성'(resilience)입니다. 11월에 내놓은 전망은 믿기 어려워졌고, 그 전망에 근거해 세운 사업 계획도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지금의 정치적ㆍ경제적 불확실성이 언젠간 줄어들며, 정상 궤도로 돌아갈 거란 소망과 기원이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에 담겼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한 중견 자산운용사 대표)

    42년만의 계엄령에서 시작된 정치적 혼란이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보다는 탄핵 후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내년 상반기까지 '권력 공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내수 침체가 이어지는데다 수출까지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한 한국 경제는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수렁으로 굴러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득세하고 있다. 매크로 환경이 한국에 유리하지 않게 급변하고 있다는 점 역시 우려를 더하고 있다. 다만 앞서 두 차례 겪었던 탄핵 정국에서 한국 경제의 회복탄력성이 예상보다 탁월했다는 점은  위안거리로 꼽힌다.

    아시아개발은행(ADB)는 11일 한국의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0%로 지난 9월 대비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앞서 지난 4일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2%로 제시했던 내년 성장률을 2.1%로 0.1%포인트 낮춰 잡았다. 이들의 전망은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내년엔 국내 내수 경기가 호전될 거란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시점에서 추가 조정이 불가피할 거란 전망이 적지 않다.

    탄핵 등 정치적 불안 국면에서 국내 내수 경기는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 한창이던 2017년 1월,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5%로 크게 낮췄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을 1.7%로 제시했다. 지난 9월의 2.2% 대비 0.5%포인트나 낮아진 수치다. 골드만삭스ㆍ씨티ㆍ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이 시작되며 성장률 전망을 1.6~1.8%로 하향 조정해 제시했다.

    한 증권사 시황 담당 연구원은 "증시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계엄 실패 이후 대통령이 빠르게 하야 하고 조기 대선을 실시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는데, 지금 뉴스 흐름을 보면 탄핵 후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나와야 할 것 같다"며 "그 사이 내수는 더 침체하고, 이를 메워줄 정부 지출은 지지부진하며 체감 경기는 훨씬 나쁠 것 같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은 일단 침착함을 되찾은 모양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은 현재 36.4bp(1bp=0.01%포인트)로 비상계엄 선포 직전 32bp 대비 4bp가량의 상승폭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 혼란의 정도에 비하면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채권 시장 역시 비교적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10일 오후 외국인이 10년 국채 선물 1만 계약을 장 마감 직전 투매하며 금리가 크게 출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주식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현 정국이 시작된 지난 4일 이후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조1500억원을 순매도했다. 연기금 창구에서 8000억원의 순매수가 들어오며 지수를 일단 끌어올렸다. 다만 경기나 매크로 상황을 보면 당분간 2500선 재돌파는 어려울거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남은 문제는 현재의 불확실성이 언제 해소되느냐의 이슈다. 지난 2004년과 2017년, 두 차례의 탄핵 국면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인용ㆍ기각 방향과는 상관없이 경제 및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700대 초반까지 밀렸던 코스피지수는 기각 후 상승을 시작해 2004년 연말에는 9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 2017년의 경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의결한지 3개월만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됐다. 한국은행은 곧바로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6%로 높였다. 이후 곧바로 반도체 호황기가 찾아오며 최종적으로 2017년 GDP 성장률은 3%를 훌쩍 넘어섰다.   

    현재 정치권의 전망대로 오는 14일 탄핵안이 가결된다면, 헌법재판소에서 180일 내에 결론을 내게 된다. 지금은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이 결원으로, 탄핵 관련 심사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해석이 엇갈려 빠른 진행은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물론 이번 탄핵 국면은 앞서 있었던 두 사례와는 다르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당시엔 탄핵 직후 호경기가 찾아오며 경제의 활성화 속도가 빨랐던 반면, 지금은 고환율ㆍ저성장ㆍ저수출 국면으로 예상보다 상처가 오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4년과 2017년 모두 수출로 정치 혼란에 따른 경제 위기를 극복했는데 이번엔 이런 '재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려의 핵심이다.

    매크로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오는 19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가 유력하게 언급된다. 현재 국채 선물 시장은 인하 가능성을 85%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11월에 이어 12월에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반등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돼 '마지막 인하가 되지 않겠느냐'는 공포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자동차ㆍ반도체ㆍ방산ㆍ조선 등 제조업 경쟁력을 고려하면 비관에만 빠져있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의 발빠른 금리 인하가 숨통을 틔워줄 거란 의견도 있다. 실제로 탄핵 국면이 한창이던 2017년 1분기 한국 경제는 1.1% '깜짝 성장'했는데, 당시 성장률엔 건설투자가 큰 공헌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취임한 이후(집권 1기) 불확실성이 줄어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전략 담당 임원은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순이익비율(PER)이 7.9배까지 내려왔는데, 정치적 불확실성은 밸류에이션을 낮추지 기업의 펀더멘털을 직접 끌어내리진 않는다"며 "내년 코스피 영업이익 전망치는 여전히 올해 대비 두 자릿 수 성장이 예상되며, 정치 이벤트 후 밸류에이션이 정상화되면 한국 증시가 미국 증시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