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20년 韓 PEF의 '성장통'…"시대 맞는 규제 불가피" 한목소리
입력 24.12.11 16:43
성장통 겪는 PEF, 공시·컴플라이언스 정비 필요성 대두
MBK-고려아연 논란 속 정보공개 확대 요구 거세져
당국 규제 재정비 검토 시사에…업계 "수용 불가피"
  • 국내 사모펀드(PE) 도입 20주년을 맞아 시장 성숙도에 걸맞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업계와 당국 모두 투명성 제고와 정보공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11일 자본시장연구원이 개최한 'PEF 20년 성과와 전망' 세미나에서 금융당국은 PE 시장의 제도적 변화를 시사했다. 

    김경문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 사무관은 "해외는 규제를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추세"라며 "우리는 초기에 강한 규제로 시작해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향후 필요시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것이 (용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PE 시장의 제도 정비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근 법 개정으로 PE운용사 설립 요건이 완화되면서 소형 GP가 급증했지만, 이들의 거버넌스와 컴플라이언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PE가 자본시장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은 만큼, 미국처럼 포트폴리오 회사의 중대 사건 발생 시 72시간 내 보고 의무 등 선진시장 수준의 규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어준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PE가 이제는 단순히 소수 자본가들의 투자수단이 아닌 자본시장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며 "미국도 최근 'disclosure rule'(사모펀드 공시제도) 개정을 통해 PE의 정보공개 요건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최소한 투자 구조와 자금 흐름에 대한 정보는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자현 KDI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이 국내 구조조정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보며 한국형 PE를 육성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며 "그동안 나름의 성공 사례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PE의 기업 인수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논의됐다.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PE의 역할과 순기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특히 국내 기업 인수 과정에서 PE의 참여가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시장의 신뢰 확보 방안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PE 업계도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이다. PEF운용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임유철 H&Q코리아 대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규제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PE의 핵심 역할 중 하나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고, 이는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과도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국내 PE시장은 20년 만에 약정금액 136조4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사모펀드 운용사(GP) 수는 2015년 167개사에서 2023년 422개사로 급증했으며, 특히 전업 GP들이 전체 시장의 75%를 차지하며 성장을 주도했다. 투자 형태도 다양화돼 바이아웃(경영권 매각)과 소수지분 투자가 각각 48.6%, 48.4%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출자자의 절반이 연기금·공제회에 편중돼 있다"며 "해외 선진시장처럼 패밀리오피스, 퇴직연금, 대학기금 등으로 출자자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내 PE 시장은 현재 약 37조원의 미투자 자금(드라이파우더)을 보유한 가운데, 내년에는 투자금 회수(엑시트)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평균 투자기간이 작년 4.8년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회수 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