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도 결국 'PEF 고객'에 기대야 하는 로펌들
입력 25.01.02 07:00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PEF 존재감 확대
국내도 경기불안·탄핵정국 속 PEF 주목
기업 대신 쏠쏠한 수수료 챙겨줄 고객
영업보다 척질 일 만들지 않는 게 우선
  • 글로벌 로펌 1위 자리는 미국의 커클랜드앤엘리스(Kirkland & Ellis)가 수년 째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우리 돈으로 10조원을 훌쩍 넘는 매출(약 72억달러)을 올렸다. 2위 레이텀앤왓킨스(약 5억7000만달러), 3위 DLA파이퍼(DLA Piper, 약 3억8000만달러)와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독주 비결은 사모펀드(PEF)다. 1909년 설립된 이 로펌은 송무, 파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는데 2000년대 들어 PEF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PEF의 결성부터 투자, 회수, 포트폴리오 관리까지 다양한 법률자문을 수행했고 전문 인력들을 적극 영입했다. 전세계 800곳 이상의 PEF 고객을 두고 있다.

    커클랜드는 2024년에도 블랙스톤, KKR, 칼라일 등의 대형 거래를 자문했다. 2023년엔 토마브라보 15호 펀드(243억달러), 워버그핀커스 14호 펀드(173억달러) 등 매머드급 펀드 결성을 돕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PEF의 존재감이 커지고 씀씀이가 늘어나면서 커클랜드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한국 법률자문 시장에서도 PEF의 중요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글로벌 PEF들은 점차 대형화하고 전략을 세분화하며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데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영권 인수에서 소수지분 투자, 크레딧 투자 등 일감이 다양해지고 있다. PEF의 언어에 익숙한 변호사들의 몸값이 올라가는 추세다.

    새해에도 특히 PEF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가 둔화하고 탄핵정국까지 이어지며 기업들이 적극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법률 비용이다.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사정당국이 기업과 경영진들을 옥죄는 것도 부담스럽다. 로펌들이 송무에서 기업의 '방패'로 나설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로펌 입장에선 확실한 자문 일감이 기대되는 PEF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막대한 드라이파우더를 가진 유수의 대형 PEF들이 내년 초부터 적극 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대형 PEF들은 거래 성사를 떠나 수십억원의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는 중요 고객이다. 투자에서 회수, 포트폴리오 관리, 각종 분쟁과 송무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기대된다. 甲인 PEF와 乙인 로펌 간 지위 격차가 더 벌어진 형국이다.

    한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시장 상황이 어떻든 대형 PEF들은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내년에는 대형 PEF와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한 해 성적표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로펌 경영진들도 PEF와 접점을 늘리는 것을 중요 과제로 꼽고 있다. 업무 역량과 네트워크를 앞세워 적극 영업에 나서기도 하는데, 일단 PEF와 척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한 번 PEF와 관계가 틀어지면 한 동안은 수임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국내 PEF들은 국내 출자자(LP)들의 표정을 살펴야 한다. 분쟁 때 상대를 도운 로펌과는 일하기 쉽지 않다. 글로벌 PEF 역시 본사 차원에서 상대방 측 로펌과 거래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한다.

    김앤장법률사무소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회사 측을 대리했다. 일감을 도맡다 시피했던 MBK파트너스의 상대편에 섰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이해한다지만 불편한 기류도 감지된다. 김앤장의 PEF 담당 변호사들은 고려아연 자문과 무관했음에도 부담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MBK파트너스 측 자문은 세종이 맡았는데, 이후 태평양도 힘을 보태고 있다. 세종은 2022년 글로벌 PEF 네트워크가 있는 최충인 변호사를 영입하는 등 PEF 강화에 힘을 쏟아 왔다. 태평양도 시장의 가장 큰 손인 MBK파트너스와 자문 관계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광장은 한동안 PEF 관련 업무를 하는 데 애를 먹었다. 교보생명 중재에서 신창재 회장 쪽을 자문하는 바람에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EQT파트너스 등 최근 가장 활발한 PEF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2024년 광장 중재팀 변호사들이 세종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중 일부는 몇 개월 만에 다른 로펌으로 떠났다. 세종 자문 변호사들이 교보생명 중재에 다시 관여하게 될까 우려를 표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다른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포트폴리오 관리나 업무 소통을 중시하는 대형 PEF들은 거래 로펌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서도 "한 번 로펌과 갈등이 생기면 다음에 일을 맡기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