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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국내 대기업들을 바라보는 자본시장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밖으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안으로는 비상계엄과 대형 사고 문제로 가라앉은 분위기가 해를 넘어 이어지는 모습이다. 믿었던 반도체마저 중국 등쌀에 시달리게 된 상황에 주력으로 내세울 사업이 몇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이들의 조달을 지원할 투자은행(IB)의 머리도 아프다.
새해 들어 증권가의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8조50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9조원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추고 있었으나 한달 새 기대감은 증발했다. 주력인 범용 D램의 부진이 뼈아프다. 주가가 일찌감치 바닥을 찍은 터라 추가 하락이 없다 뿐, 애널리스트들은 D램 시장에서 중국 CXMT가 따라붙는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CXMT가 DDR4에서 예상보다 너무 빨리 따라오면서 실적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전자가 넛크래킹(nut cracking) 상태에 놓인 것"이라며 "한국이 수십년 동안 절대우위를 지킨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부가가치가 낮은 영역에서부터 중국의 덤핑 세례를 받기 시작하는 모습이라 불안감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DDR5 D램이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고부가 제품군 영역에선 여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업체를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고부가 제품군을 제외하면 메모리 반도체 역시 중국과 직접 맞붙으며 경쟁력을 잃어가는 구간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실상 최후 저지선을 내주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반도체 이전 국내 대기업의 주력 사업들이 그간 비슷한 수순을 밟아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증시를 이끌었던 '차화정' 테마는 순차로 그룹사의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작년 이후로는 여기에 철강 산업까지 가세했다. 그간 한국 대기업들의 최대 고객사이던 중국이 어느새 순수출국으로 돌아서면서 숨통을 조여오는 형국이다.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이미 구조조정의 적기를 넘어서 헐값에 매각하는 방법 외에는 탈출 전략이 없다는 분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증권사 다른 한 연구원은 "국내 대기업이 지난 20년 글로벌 제조업 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근간이 기술력이나 혁신이 나이라 단순히 규모의 경제, 상대적으로 값싼 인건비 때문이었음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라며 "규모의 경제, 싼 인건비로만 경쟁하자면 내수시장이 크고 정부 지원까지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에 따라잡히는 게 시간문제라는 점이 국내 재벌의 전 사업 영역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추격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마련한 대체 신사업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정유·석유화학·철강사들이 사활을 걸었던 2차전지 산업은 테슬라가 흑자로 돌아섰던 2019년 연말 당시부터도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우려가 많았다. 현재는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통상 규제가 아니면 무슨 수를 써도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전기차의 경우 이미 중국 업체의 경쟁력이 유럽이나 미국의 전통 완성차업체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많다. 이 때문에 2차전지·전기차 업계 내에서도 과거 스마트폰 교체기처럼 3~4개 브랜드를 제외한 대부분 전기차 메이커가 수년 내 퇴출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이 미국·유럽을 넘어서는 점은 다행이나, 이마저도 관세장벽이 없을 경우 희석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드러나고 있다.
작년부터 방산·조선 등 주목을 받지 못하던 군소 산업군이 크게 조명된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다. 방산 산업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갑작스럽게 늘어난 지정학 갈등의 수혜 사례에 불과하고, 조선업은 중국이 친환경 선박 건조 역량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덕을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달리 말하면 중국이 손을 대지 못한 영역에서 한국 기업들이 마지막 우위를 누리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그나마 지정학적, 산업 구조적인 문제로 중국이 침범하지 못한 방산이나 친환경 선박 시장 등 정도가 성장하는 산업군으로 분류되는데, 문제는 여기도 성장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는 것"이라며 "과거 태양광 패널부터 시작된 중국발 트러블이 사실상 국내 대기업이 발을 걸치고 있는 전체 산업군으로 확장하는 추세고, 이걸 막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 닥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올해 이후 2~3년 동안은 대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는데,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22년 이후 국내 대기업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매물을 파는 입장만 고수해 왔다. 재벌 그룹들의 성장 한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상황에 더 이상 이들의 눈치를 봐줄 이들이 남아 있겠냐는 것이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 관계자는 "그간 대형 PE에서는 재벌의 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 추후 알짜 사업을 받아 가는 식으로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대기업들이 내어줄 수 있는 선택지도 잘 안 보인다"라고 전했다
실패로 가려지고 있는 신사업들을 키우기 위해 그간 무분별하게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인 후폭풍 역시 올해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기업공개(IPO) 방식으로 회수를 약속한 투자 유치 건의 경우 국내 증시에서의 자금 유출이 본격화한 터라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늘고 있다. 개별 조 단위 투자유치 건들이 올해 이후 우발채무 형태로 대기업들의 목줄을 틀어쥐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2년 SK·롯데·CJ그룹 등 몇몇 그룹사들의 위기를 영업 기반으로 삼았던 IB업계에서도 난감한 기류가 감지된다.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한 대기업들이 늘어나는 만큼 공격적인 영업의 대가도 기대하기 힘든 까닭이다. IB업계에 손을 벌려야만 하는 대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 자체가 두렵다는 걱정이 적지 않다.
취재노트
삼성전자 D램마저 중국 등쌀에 시달리는 상황…최후 저지선 뚫려
차·화학·정유·철강에 전기차·배터리 등 신산업까지 中과 직접 경쟁
남아 있는 방산·조선도 규모는 미약…대기업 주력 전장 다 내준 셈
PE도 IB도 대기업 손 잡아주기 힘든 분위기…연초부터 불안만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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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1월 0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