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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가 다시 번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위기감의 수준이다. "20년 전에 차이나 포비아가 신종플루급이었다면 지금은 코로나급"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산업적으로는 더 이상 기술 우위를 기대하긴 어렵고 자본으로는 견줄 수 없을만큼 거대하다. 재계든 금융시장이든 '중국'에 얽힐까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상황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우리 기업이나 자본에 기회였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엔 수십억명의 잠재소비자들이 있었다.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중국 기업이 우리 기업을 사들이겠다고 나서면서다.
2004년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기술 탈취 및 먹튀 가능성에 인수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많았다. 쌍용차가 재차 위기에 빠지자 상하이차는 결국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 사이 쌍용차에는 최장기간 파업과 2600명 구조조정이라는 깊은 상처만 남았다. 2018년엔 금호타이어가 중국 더블스타에 인수됐다. 이 때도 금호타이어의 성장보다 기술·노하우 확보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쌍용차 각인 효과다. 아직까진 더블스타와 금호타이어는 동행중(?)이다.
지금 불어닥친 차이나 포비아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과거엔 일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이었다면 지금은 재계 전반은 물론 금융시장까지 체감하고 있다. 배경은 20년 전의 한국과 중국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이 선도했던 산업에서 중국은 더 이상 이류(二流)가 아니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모바일에 이어 인공지능(AI), 바이오까지 선진국을 압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코로나 사태와 미중 갈등이 이어지면서 중국은 내수 경제에 치중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기간 동안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철저한 계획과 보호 아래에서 가격 및 기술 경쟁력을 갖췄다.
그동안 버텨왔던 중국 내수 시장은 한계에 봉착했다. 인근 국가로 확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고 그것이 한국 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것처럼 보인다.
중국 자본의 침투도 한층 달라진 모습이다. 몇 년 전부터는 미디어 기업들의 투자가 눈에 띄었다면 최근엔 플랫폼 기업 위주로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G마켓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합작, 중국 스포츠의류업체 안타스포츠의 무신사 지분 투자 등이 대표적이다. 티몬과 위메프 투자 검토 소식도 들린다.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중국 플랫폼들이 테스트베드 차원에서 한국 시장을 노크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은 실적 및 성장성과는 별개로 국내 플랫폼의 몸값이 너무 높아 향후 엑시트도 쉽지 않다고 본다"며 "찾을 수 있는 곳이 중국밖에 없다면 기업들도 (중국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국 자본들이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중국 측에선 '밸류가 어떻든 사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국내 숙박 플랫폼에 대해서도 중국 자본이 연락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 차원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는 거 아니냐는 루머까지 나올 정도다.
국내 시장에서 가장 높은 벽은 역시 '반감'이다. 국내에서 반중(反中) 정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 중국의 기업과 자본이 내수가 취약한 한국 경제를 덮치게 되면 가파르게 종속 관계가 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 크다. 수천년간 쌓여온 중국 트라우마가 재연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미중 갈등의 골이 얕아질 거라고 전망하기 어렵다. 거기에 대통령의 계엄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지면서 '친중 vs 반중'은 정치 색깔을 구분짓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돼버렸다. 여야 지지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기업과 투자자들은 중국과 연결되기만 하면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다.
사모펀드(PEF)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중국계 사모펀드, 중국계 자본'과 같은 프레임을 씌우지 말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어피니티가 SK렌터카에 이어 롯데렌탈까지 인수하면서, 중국 전기차 업체 BYD와 협업해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반박에 나선 것이다. 해당 루머에 대한 악의적 확산에 대해선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행위로 법적대응도 고려한다는 다소 나아간 반응까지 보였다.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도 비슷한 루머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SK그룹의 경우 최근 SK㈜ 구매정보시스템이 아이디·성명·생년월일·비밀번호·이메일·휴대폰 번호 등 개인정보를 SK차이나에 처리 위탁한다고 공지했는데 이에 해당 공지를 받은 이들이 자신의 정보를 왜 중국으로 넘기느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SK측은 SK차이나가 구매정보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일 뿐 정보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그 어떠한 개인 정보도 중국으로 넘어갈 일은 없다고 해명했다.
현재 매각을 진행 중인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는 조 단위 몸값에 사실상 국내 바이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중국 사업 비중이 높다 보니 중국 전략적투자자(SI) 또는 중국 자본을 낀 펀드가 나설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온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사업부를 중국에 넘기는 게 맞냐는 내외부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기업과 금융사들은 낙인 찍히는 게 두렵다. 특히 미국으로 진출하거나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곳들은 '중국'만큼 방해 요소가 없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다보니 외교적으로 풀 방안도 마땅치 않다. 향후 중국 자본이 국내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노크할지 지켜보면서 대응 전략을 짜야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중국을 무작정 배제하기만도 어렵다. 한국의 정치 불안정이 장기화할 경우 외국인투자자와의 끈은 끊어질 수 있고, 실제로 금융업계에서 그 위기감이 팽배하다. 시장에 매물이 쌓이기만 한다면 결국 이를 해소할 주체는 중국 자본일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아갈 길도 물러날 길도 안보이는 진퇴무로(進退無路)다.
20년전엔 기술 탈취·먹튀 논란이었는데
이젠 양적·질적 우위에 위기감 한층 고조
산업 넘어 자본의 침투 확산에 '종속' 우려
재계·PEF '중국' 낙인 효과에 화들짝
美中 갈등 속 韓정부는 컨트롤타워 공백
"이번 파고는 정말 쉽지 않다" 한목소리
이젠 양적·질적 우위에 위기감 한층 고조
산업 넘어 자본의 침투 확산에 '종속' 우려
재계·PEF '중국' 낙인 효과에 화들짝
美中 갈등 속 韓정부는 컨트롤타워 공백
"이번 파고는 정말 쉽지 않다" 한목소리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1월 2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