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연금을 둘러싼 금융권의 점유율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 도입 후 금융사간 '머니무브'가 자유로워지면서, 은행·증권사·보험사 등 전 업권이 퇴직연금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퇴직연금 현물이전은 운용 중인 금융사의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옮길 때, 기존 상품(포트폴리오) 그대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특히 '수익률'을 앞세운 증권사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조직 내 퇴직연금 부서의 주목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다만 사업자간 수수료율 경쟁이 '치킨게임'으로 치달으면서, 정작 내부 담당 인력의 처우는 제자리걸음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약 4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 2011년부터 2023년까지 49조9000억원에서 382조4000억원으로 7.7배 증가했는데, 자본시장연구원은 오는 2040년 1172조원까지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 발맞춰 증권사들은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조직을 확대 개편하거나 TF팀을 만들어 사업 진출 활로를 모색하고 나섰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연말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연금1·2부문을 연금혁신부문과 연금RM1·2·3부문 등 4개 부문으로 확대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기존 1개 본부로 운영하던 퇴직연금본부를 1·2본부로 나누고 퇴직연금운영본부를 신설해 3개 본부로 확대했다.
증권사에서 퇴직연금 후발주자로 평가받는 키움증권은 지난해 운영하던 퇴직연금준비 TF를 연금사업팀으로 승격했다. 퇴직연금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시장 진출을 위해 본격 준비에 나선 모습이다.
이처럼 증권사 내부에서 퇴직연금 부서의 '입지'는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내부 인력 처우는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자는 "현물이전 제도 도입 후 퇴직연금이 소위 말해 '큰 장'이 섰지만, 정작 내부 인력의 처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라며 "퇴직연금 사업이 아직까지는 '돈 버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도 당장 큰 폭으로 처우를 개선해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퇴직연금 사업의 저조한 수익성은 '무료'에 가까운 수수료율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다. 퇴직연금 사업은 기본적으로 퇴직연금 계좌의 운용 관리와 자산 관리 수수료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는데, 증권사의 경우 수수료율이 은행 등 타 사업자보다도 낮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증권사의 퇴직연금 수수료율은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운용관리와 자산관리 수수료를 합산한 증권사의 IRP 수수료율은 0~0.29% 수준에 불과하다. 일부 증권사들은 수수료를 수취하지 않는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수료가 워낙 낮다 보니 가입자를 많이 끌어오더라도 인건비나 시스템 개발비 등을 고려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전했다.
DB형(확정급여형), DC형(확정기여형), IRP(개인형퇴직연금) 중에서도 IRP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현재 IRP는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10%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매년 20% 이상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성장이 빠른 만큼 증권사 간 '제로수수료' 경쟁도 가장 치열한 분야다.
삼성증권은 2021년부터 비대면으로 IRP 계좌를 개설할 경우 운용관리·자산관리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IRP에선 사실상 수수료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특정 증권사가 수수료 무료를 선언한 상황에서 다른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받기란 쉽지 않다"라며 "은행은 그나마 적게라도 수수료를 수취하고 있지만, 증권사에서는 IRP를 통해 수익을 내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시장 규모가 430조 원에서 장차 1000조 원 수준으로 확대되더라도, 지금의 수수료 체제 하에서 증권사가 거둘 수 있는 실질적인 수익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연금을 둘러싸고 증권사들 사이에 경쟁이 격화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부서처럼 인력 영입을 위해 '오버페이'를 감수하는 일은 사실상 없다"라며 "향후 시장이 안정화하면 부가서비스 등을 통한 수익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퇴직연금 시장 규모만 430조원
2040년까지 1000조원 이상 성장 전망
현물이전 시행 후 증권사들 조직 확대
'제로'에 가까운 수수료…수익성 저조에
인력들 처우는 제자리…'오버페이' 없다
2040년까지 1000조원 이상 성장 전망
현물이전 시행 후 증권사들 조직 확대
'제로'에 가까운 수수료…수익성 저조에
인력들 처우는 제자리…'오버페이' 없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2월 0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