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 구제금융 화두 부상하지만…까다로운 조건에 부정적 여론도 걸림돌
입력 25.03.17 07:00
잔잔하던 PEF 시장에 홈플러스 충격파
자본확충·차환 등 방식 자구방안 거론
PEF는 부담 덜고, 투자자는 이익 '윈윈'
평판 낙인 부담에 냉랭한 여론도 장애
  • 사모펀드(PEF) 제도 초창기엔 경험과 이해도 부족에 따른 '사고'가 종종 있었다. 지난 수년간은 평온한 상황이 이어졌다. 운용사(GP)들은 저마다 아킬레스건이 있지만 파산이나 회생절차, 기한이익상실 등 극단적인 상황은 많이 벌어지지 않았다. PEF가 자본시장의 주축으로 떠올랐고, 기관투자가와 금융사들도 웬만하면 서로 사정을 봐주며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홈플러스 사태로 분위기가 다시 달라졌다. MBK파트너스는 막대한 차입 부담을 자산 유동화와 차환 등으로 버텼는데, 수년 전부터는 주류 금융사들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고 '대마불사' 명제가 깨졌다. JKL파트너스가 투자한 거흥산업도 법인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 외에도 경기 침체 장기화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적지 않다.

    PEF 포트폴리오를 둘러싼 우려와 잡음이 이어지며 GP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블라인드 펀드에서는 여러 자산의 전체 수익률을 따지지만, 실제로는 개별 자산 하나만 망가져도 타격이 적지 않다. 지금처럼 온 시장의 이목이 주목된 상황에서 극단적 결정을 하긴 어렵다. 최대한 자구노력을 펼 수밖에 없다.

    PEF의 포트폴리오 구하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확충에 애를 먹는 금융사 포트폴리오의 경우 사모로 자본성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 재무약정 위반이 우려될 때는 새 재무적투자자(FI)를 대상으로 메자닌을 발행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는 투자회수가 지연될 때도 쓸 수 있다.

    작년부터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작년 회계연도 결산기를 앞두고 재무약정 위반이 우려되는 포트폴리오를 가진 PEF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차환 논의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프리드라이프처럼 다른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기업가치를 설정하고 일부 자금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어려움을 겪는 PEF 포트폴리오를 대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도움을 받는 곳은 당장의 위험 부담을 피하고, 도움을 주는 쪽에선 두자릿 수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으니 윈윈"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입장에선 회수 시기가 늦어지는 것도 잠재적인 사고다. 상장(IPO)이나 M&A로 원하는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컨티뉴에이션 펀드 활용이나 세컨더리 거래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증권사나 투자은행(IB)들도 이런 거래를 주선하거나 돈을 대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재무적 어려움을 겪거나 회수가 늦어지는 PEF 포트폴리오 리스트를 파악하고 먼저 제안을 넣기도 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PEF와 관계가 돈독해지고 투자 이익도 기대할 만하다.

    한 증권사 IB 임원은 "앞으로 PEF 포트폴리오를 구제하기 위한 성격의 거래가 늘 것"이라며 "단순히 회수가 늦어지는 경우에도 새로운 펀드를 만들어서 자산을 넘길 수 있게 도와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모펀드 포트폴리오를 대상으로 구제금융에 나서는 것이 얼마나 활성화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정 급한 운용사와 위험을 부담하는 투자자간 시각차를 좁히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란 지적이다.

    새 투자자는 기존 운용사에 확실한 안전장치나 고통분담 방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펀드의 추가 출자나 다른 포트폴리오의 지급 보증, 나아가 경영권 변경 조건까지 제시될 수 있는데 운용사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사정이 좋지 않을 때 움직였다는 자체로도 출자자(LP)의 곱잖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증권사 IB 임원은 "급해 보이는 운용사를 찾아가 보면 관심은 드러내지만 의사 결정은 쉽사리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출자자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거나 출자자로부터 실패의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과 여론이 어느 때보다도 좋지 않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홈플러스만 해도 숱한 채권자와 투자자들이 좌불안석이지만 MBK파트너스는 이미 막대한 보수를 챙겼다. 이런 PEF들의 경영 실패의 책임을 굳이 제3자가 나서 도와줄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과거 재벌 구조조정 때 그랬듯 MBK파트너스 측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미 어려움을 겪은 기업이라면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하더라도 회수 불안정성은 크다. 메리츠금융 역시 사전적으로 홈플러스 지원에 나섰다가 예상치 못한 위험에 맞닥뜨린 꼴이다. 자본시장 내 손꼽히는 고수인 메리츠금융이 애를 먹는 터라 다른 증권사의 투자심사 벽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