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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특례상장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기술평가' 통과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술평가는 기술특례상장의 첫 관문으로, 상장 예비심사 전 한국거래소가 인정한 전문평가기관(2곳)에서 A·BBB 등급 이상을 받도록 한 제도다.
과거 수월하게 기술력을 인정받았던 기업들마저 탈락하기 시작했는데, 증권업계는 최근 거래소의 심사기조 변화가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3D 프린팅 제조 기반의 기업은 첫 기술평가에서 BBB·BBB 등급을 받아 탈락했다. 업계에서는 해당 기업이 3D 프린팅 분야에서 충분한 기술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탈락한 것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기업은 이후 평가 전략을 수정, 시장성과 매출 비중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대응한 끝에 재도전에서 A·A등급을 받아 기술평가를 통과했다.
친환경 소재 기술을 보유한 한 기업도 첫 기술평가에서 BBB·BBB 등급을 받으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매출 실적을 개선한 끝에 재평가에서 A·BBB 등급을 획득하며 거래소 예비심사 청구를 준비 중이다.
해당 기업의 기술특례상장 평가를 도운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기술력이 입증된 기업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과 사업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술평가를 통과하기 어렵다"며 "기술평가 탈락 후 재도전을 위해 자문을 요청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과거 기술평가를 통과했던 기업들도 최근 재도전 과정에서 더 낮은 등급을 받아 탈락하는 사례도 생겨 났다.
난치성 치과질환 치료제 개발사 하이센스바이오는 2년 전 전문평가기관에서 A·BBB 등급을 받으며 기술평가를 통과했지만, 최근 재심사에서는 BBB·BBB 등급을 받으며 탈락했다.
표적항암제 개발기업인 피노바이오 역시 과거 A·BBB 등급을 받으며 기술평가를 통과했으나, 최근 재도전 과정에서 더 낮은 BBB·BBB 등급을 받아 고배를 마셨다. 기술평가 점수는 6개월간 유효하기 때문에 보통 거래소 예비심사 청구 단계에서 탈락한 기업은 다시 기술평가를 받아야 한다.
한 기술평가 컨설턴트는 "과거에는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유망산업 분야라면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아 A등급 이상을 받기가 수월했지만, 이제는 현재 매출이 나오는 제품을 기반으로 평가받아야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특례상장 컨설턴트는 "바이오 기업들의 경우 과거에는 기술 수출 실적만 있어도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요즘은 최소 100억원 이상의 계약 건만 유의미한 실적으로 인정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나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MFDS) 허가 여부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자리 잡았다. 임상 1상 단계 기업은 기술평가 신청 자체가 어렵고, 임상 2상 단계여도 실적이 없으면 기술평가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증권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기술력과 미래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 기술특례상장임에도 불구, 거래소가 매출과 사업성 등 '실적'을 중시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은 원래 당장의 실적이 좋은 회사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인데, 지금처럼 실적을 강조하는 기조가 이어진다면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거래소는 상장 기업의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을 해결하기 위해 퇴출 요건을 강화하고, 증시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평가기관 역시 거래소의 기조에 발맞춰 심사 기업의 실적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증권사들 사이에선 강화된 거래소의 상장 심사 경향을 반영해 암묵적인 통과 기준을 설정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매출 기준으로 일반 상장은 200억원, 기술특례상장은 100억원, 이익 미실현(테슬라 요건) 상장은 300~400억원이 돼야 안정적으로 상장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기업들은 특례상장보다 일반 상장을 고려하는 분위기로 나오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이 더이상 과거처럼 손쉬운 상장 경로로 여겨지지 않으면서, 차라리 안정적인 실적을 쌓고 일반상장을 추진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거래소의 기조 변화에…"기술평가도 실적 없으면 힘들다"
바이오 업체 경우, 임상 2상도 사업성 없으면 장담 못해
"기술특례보다 일반상장 낫다"…업계 IPO 전략변화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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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14일 15:1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