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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을 두고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기획한, 의도된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MBK의 입장은 단호하다.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이 확정된 뒤에 긴급 (회생신청) 검토를 진행했고, 기업회생절차를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14일 기자 간담회)
그러나 투자업계의 해석은 다르다. MBK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여럿이라는 것이다.
신평사, 등급 강등 가능성 알렸지만 반박ㆍ소명 자료는 불과 몇 쪽
그간 홈플러스는 꾸준히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잠재적 (단기)자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입장이었다. 신용평가사에서 홈플러스 단기 신용등급을 A3 (투자적격등급)에서 기존 A3에서 A3-(투기등급 바로직전)로 조정해버리니, 어쩔 수 없이(?) 사후 대응으로 회생을 신청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신평사들 사이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신평사들은 등급을 공시하기 전 해당 기업에 등급 강등 가능성 사실을 사전에 따로 통보한다. 특히 '등급 강등' 조치 전에는 미리 수 일 전 회사에게 이를 통보하고, 회사가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부여한다.
업계 관계자는 "등급 강등 대상 기업들은 대표이사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수백 쪽 분량의 자료를 들고 신평사를 찾아가 등급 강등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하거나, 해당 위험이 해소됐다고 적극적으로 소명한다"며 "정성적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신평사 대상 프리젠테이션(PT)까지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달랐다. 등급 강등 위험을 알리자 김광일 대표(MBK파트너스 부회장)가 직접 신평사에 방문하긴 했지만, '최근 이익 규모가 늘고 있다'는 몇 쪽의 자료를 보인게 전부였다는 후문이다.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은 두 곳 이상의 신평사에서 받는데, 한 곳에는 아예 재심의를 요청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등급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기업 회생을 준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대목이다.
시장의 시각도 비슷하다. 홈플러스 유동화증권 판매사였던 신영증권 금정호 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하락한 기업 중 자구책 마련 없이 등급 하락 하루 만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사례가 있느냐”는 질의(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에 "제가 알기로는 없다”고 답했다. 기업 회생이 책임회피를 위해 기습적으로 신청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자본시장 사람들은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5일 만에 회생신청 서류를 준비한다고? 법조계 '서류 준비에 2주~1달'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건 지난 4일의 일이다. 지난달 27일 신용등급 강등 공시 이후 딱 5일만이다. 대체공휴일 연휴를 감안하면 등급 강등에서 회생 신청까지 영업일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분을 두고 의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기업회생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데는 아무리 빨라도 2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의 서류 사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재무제표 등 기업의 일반적인 현황에 대한 관련 자료 외에도 각종 자산 관련 증명서와 계약서, 등록증, 채무관계에 대한 명부 및 내역 서류를 총망라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향후 사업계획서ㆍ투자계획서ㆍ재정위기에 대한 원인 분석 및 대처방안에 대한 진술서까지 작성해 함께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아무리 대형로펌을 선임해 함께 준비했다고 해도, 5일만에 서류 준비를 마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신평사로부터 등급 강등과 관련한 사전 통보를 받은 시점에 곧바로 기업회생 절차 준비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빠듯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어느 정도 사전적으로 관련 작업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2월 조달 단기자금만 150억원...'의도성'이 '제 2의 동양 사태' 가늠자
홈플러스는 등급 강등 공시 이틀 전인 25일 820억원 규모의 전단채를 발행했다. 신평사가 등급 강등 가능성을 사전 통보한 당일이었다. 등급 강등 6일 전인 지난달 21일 CP 50억원, 전단채 20억원을 발행했다. 이에 앞서 일주일 전인 지난달 14일에는 30억원 규모로, 앞서 7일에는 50억원 규모로 CP를 발행했다.
회생신청 직전 한 달동안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전단채, ABSTB) 발행 규모가 1000억원에 육박한다.
여기서 MBK가 '언제' 기업회생 신청을 결정했는지가 핵심 변수로 부각한다. 만약 등급 강등 가능성을 인지한 후, 기업회생 신청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면서 '자금 조달'을 진행했다면 이는 2013년 '동양 사태'와 비슷한 수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영역에 속할 가능성이 커지는 까닭이다.
국회와 금융당국 역시 '의도성'에 중점을 두고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만약 신용등급 강등과 이에 대한 사후 조처로 기업회생 절차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자금 조달을 진행했다면 이는 '사기적 부정거래'로 볼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결국 이번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MBK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리게 됐다는 게 자본시장 복수 관계자들의 전반적인 관전평이다. 기업회생 신청을 미리 준비했다면 의도성에 따라 '형사적 책임'을 져야할 수도 있고, 사후적 대처였다고 해도 파장을 예상하지 못하며 '경영 능력'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인 까닭이다.
취재노트
신평사 등급강등 공시전 재심의 기회 제공 불구, 반박 서류는 불과 몇 쪽
등급 강등 5일만에 기업회생 신청? 업계 "불가능한 일, 서류 준비에만 한 달"
신청 직전 2월 한달에만 150억 CPㆍ전단채 조달...'기획된 회생' 의혹 불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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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18일 12:3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