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스크'에 놀란 서학개미, 국장으로 대피? 인버스ㆍ테마주에 베팅했다 '눈물'
입력 25.03.20 07:00
국내 투자자 미국 주식 규모, 7주새 16조원 급감
코스피 개인 비중은 44%→48% 상승...'곱버스'에 뭉칫돈
美 경기 침체 공포 본격화...반도체도 수요 개선 기대 '과도'
"상호 관세 공개되고, 美 고용 둔화 본격화한 후 기회"
  • 영원할 것만 같았던 미국 증시의 아성이 무너지며, 서학개미들의 국내 증시 귀환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증시가 이른바 '트럼스크'(트럼프+일론 머스크+리스크) 이슈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자, 연초 이후 연기금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국내 증시로 다시 눈을 돌린 것이다.

    다만 이런 '빅 무브'의 성과는 아직 탐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귀환한 서학개미들의 자금은 주로 코스닥 테마주로 향했다. 연기금 집중 매수의 수혜를 입은 코스피엔 오히려 '인버스'로 역베팅을 감행하고, 대형주는 매도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지수는 1.7% 하락 마감했다. 연초 이후(YTD) 수익율은 마이너스(-) 9.4%에 달한다. 인공지능(AI) 산업 주도주인 엔비디아와 메타가 3%대 하락세를 보였고, 최근 잠시 반등했던 테슬라는 또 다시 5% 급락 마감했다.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BYD)가 5분 충전에 400km를 주행할 수 있다는 기술을 공개한 게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 다우존스 지수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2%, S&P500지수는 -4% 수준이다. 중국 항셍종합지수가 같은 기간 23%, 독일 닥스지수가 17%, 코스피도 9% 오르는 강세장에서 미국 증시만 소외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펼쳐진 미국 증시 주도 랠리와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다.

    서학개미들의 탈출 러시도 본격화했다. 지난 1월 말 약 1137억달러(165조원)까지 불어났던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 18일 현재 979억달러(142조원)으로 급감했다. 불과 7주 새 약 16조원, 14%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미국 증시를 빠져나온 자금은 일부 홍콩 증시와 코인 시장으로 향했고, 상당 부분은 국내 증시에 돌아온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코스피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거래대금 기준)은 44%로 최근 3년새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지난 2월 기준 48%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 '트럼스크'가 불러온 미국의 증시 급락을 피해 국내 증시로 돌아온 서학개미들은 수익을 냈을까? 수치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연초 이후 국내 증시 상승세의 핵심 동력은 연기금이었다. 외국인 순매도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연기금은 코스피에서만 3조6000억원을 순매수하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 기간 주로 산 종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바이오로직스, 포스코홀딩스, LG에너지솔루션 등 대형주 위주였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같은 기간 코스피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순매도했다. 종목 중에는 삼성SDI와 현대차를 주로 담았고, 상장지수펀드(ETF) 중에선 미국 S&P와 나스닥에 투자하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매수했다. 개인들이 상당수 비중을 실은 'KODEX200선물인버스2X'(일명 곱버스)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9%에 달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연초 이후 코스닥 시장에만 3조원의 순매수를 쏟아부었다. 알테오젠, 오름테라퓨틱, 리가켐바이오 등 바이오 테마주가 중심이었다. 조선주, 로봇주, 엔터주 등 일주일도 채 안되는 간격으로 돌아가는 '순환매 장세'에도 올라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코스닥 시가총액 1위인 알테오젠조차 이달 초 급락기에 투매로 나온 물량이 꽤 된다"며 "바이오주의 주가 변동성을 고려하면 올 초 진입한 투자자 상당수는 손실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실의 고통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증권가에서는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가운데, 침체가 확인되고 이후 이른바 '트럼프 풋'(정책 전환)이 본격화하면 투자 비중을 점차 늘려가야 한다는 전략이 힘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공개된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 펀드매니저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동안 미국 경기에 대해 '침체가 없을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한 달 새 36%에서 19%로 급감했다. 경착륙(하드랜딩) 비중은 6%에서 11%로 증가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일론머스크가 주도하는 정부효율부(DOGE)의 해고 정책이 경기 침체를 불러올 거란 공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첫 재무 사령탑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경기 침체를 배제하지 않는다"며 "최근 주가 하락은 '과도한 희열'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한 것 역시 투심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반도체 업황 회복의 기대감이 있으나 미국 내외 지역의 경기 둔화를 고려하면 수요 개선 기대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라며 "올해는 조금 더 조심해도 과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디톡스(해독)은 건강에 유익하지만 일부 영양결핍과 근손실이 나타날 수 있는데 최근 미국 경제와 주가가 그렇다"며 "반전의 계기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4월 상호관세 공개, DOGE의 연방정부 직원 정리 후 미국 고용 둔화가 본격화된 다음 미국 증시가 반격의 시점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