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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모펀드(PEF) 산업이 출범 2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을 계기로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PEF에 대한 감독 강화 요구가 급부상하면서, 업계 전반에 걸쳐 변화의 압박이 커졌다.
경영계에서는 PEF를 여전히 적대적 M&A를 노리는 주체로 경계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고용 불안을 초래하는 투자자로 인식한다. 금융당국과 국회에서도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한국 PEF 시장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홈플러스의 회생 신청은 정치권에서도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8일 긴급 현안 질의를 열어 홈플러스 사태를 집중 논의했다. 해당 자리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출석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MBK파트너스에 대한 청문회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특히, MBK파트너스가 기업회생 신청 직전까지 유동화증권(ABSTB)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전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기적 부당 행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병주 회장이 개인 재산을 출연한 배경도 주목받고 있다.
MBK파트너스 경영이 ‘도덕적 해이’로 결론 날 경우, 사모펀드 산업 전체가 규제 강화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서는 ▲투자 투명성 강화 ▲투자기관 구조조정 방식 규제 ▲노동자 보호 장치 마련 등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금융당국도 PEF의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자산규모 기준 30위권 내 PEF 운용사들에 내부 조직도와 주요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는 사모펀드 산업에 대한 감독 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된다. 더불어 MBK파트너스에 대한 검사에도 착수했다. 금감원장까지 나서서 “매우 엄격한 검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만큼 대대적인 검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 사안을 두고 금감원이 PEF 검사에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PEF 설립 시 금융감독원의 사전보고 절차를 다시 도입할 경우, 사실상 금융회사와 유사한 수준의 감시 체계가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모펀드의 운용 실태는 금감원뿐 아니라 국세청 조사 4국 조사를 통해서도 어느정도 윤곽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대기업 비자금 수사를 전담하는 국세청 조사 4국은 재벌들의 ‘저승사자’라 불리우는데 최근 MBK파트너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내 자금흐름뿐 아니라 국외 자금흐름 전반이 이번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세청은 지난 2015년 KKR과 어피너티의 OB맥주 매각차익에 대해서 세무조사를 벌인 경험이 있다. 당시 펀드 자금흐름 및 LP들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만큼 사모펀드의 자금흐름에 대해선 충분한 이해도가 있다.
문제는 해당 사태가 PEF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으로 PEF가 ‘국민 정서법’을 건드린 점이다. 특히 PEF가 경영계와 노동계에서 모두 질타의 대상이 됐다. 경영권 분쟁 사태로 경영계에서 PEF에 대한 경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노동계에선 재벌보다 ‘악덕한 자본’으로 프레임 잡히면서 양쪽에서 난타를 당하고 있다. 즉, 여당과 야당 모두 PEF 편을 들어 줄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모피아’로 불리우는 금융관료들 사이에서도 PEF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같지 않다. 한국 사모펀드는 2000년대 초반 금융관료를 중심으로 해외 자본에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넘어가는 것에 문제의식으로 PEF 도입이 추진됐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당시 국회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융관료를 중심으로 설득작업이 진행돼 어렵사리 사모펀드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국내 PEF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 6~7년간 PEF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해 PEF 약정액은 140조원, 등록 PEF 숫자는 1200개에 육박한다.
이 과정에서 PEF는 전통적인 투자 영역인 비상장 기업을 넘어 상장 기업 인수까지 시도하면서 자본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금융관료조차 사모펀드가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점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금융적 수익만을 추구하며 PEF ‘배 불리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PEF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는 추세다. 투자 투명성을 높이고 노동권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2022년 SEC(증권거래위원회)를 통해 사모펀드의 투자 보고 및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유럽연합(EU) 역시 2023년 AIFMD(대체투자펀드 운용사 지침) 개정을 통해 PEF의 투자 과정에서의 책임을 확대했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PEF들은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이복현 금감원장과 국회가 어떤 규제를 만들어낼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속으론 이런 상황을 만든 MBK파트너스를 탓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PEF가 구조조정, 고용창출 관점에서 기여한 부분에 대한 평가는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산업이란 관점에서 PEF 시장을 살펴봐야 하는데, 홈플러스 이슈에 매몰되어서 어떠한 법이 발의될지가 최대 고민거리다”라며 “출자자들이 움츠려들까봐 가장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다른 PEF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비핵심 사업을 인수해 투자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역할을 그간 사모펀드들이 수행해왔다”라며 “자칫 사모펀드 전체가 사회악으로 규정될까봐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국회에선 MBK파트너스 책임 추궁
국세청은 MBK파트너스 자금흐름 조사
금감원은 검사 착수 “엄격히 검사할 것”
PEF에 대한 전방위 압박
미국·유럽도 최근 PEF 투자 투명성 강화에 방점
PEF들 펀딩 부담부터 규제 불확실성에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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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