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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체급을 키울 적기를 맞이한 가운데 자금 동원 문제로 딜레마를 마주한 모양새다. 치솟는 에너지 인프라 수요를 잡기 위해 지난 수년 계열 상장을 통한 조달 계획을 짜왔는데 이를 바라보는 주주들의 눈높이가 더 빠르게 올라간 탓이다.
B2B 중심 사업구조인 LS그룹이 국내 증시에서 주목을 받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년여 전 해상풍력과 2차전지 소재, 전력과 관련된 수직계열화 사업 구조가 주목 받으며 지주사 ㈜LS를 위시한 계열 전반 주가가 폭등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LS그룹은 다른 그룹사에 비해 뒤늦게 계열 상장 작업에 열을 올리며 시중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23년 초까지 8년간 10만원을 넘지 못하던 ㈜LS 주가는 작년 5월 19만4800원을 기록하며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작년부터는 신재생 에너지 공급에 비해 부족한 전력망 인프라와 인공지능(AI) 투자 광풍이 가세했다. 증권가에서는 '전기화 시대의 필수 기업'이란 보고서를 내면서 LS그룹의 전기동(구리) → 전선 제조 → 전력망 구축 → 전력 자동화 → 에너지 저장 시스템 수직계열화 사업 구조를 재조명했다. 실제로 LS전선이 유럽 3사가 과점을 이룬 해저 초고압직류송전(HDVC)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며 수주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 LS그룹에서 계획한 조달 전략이 잡음을 내고 있다. 기업공걔(IPO)를 통해 시중 자금을 확보하는 전략이 주주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LS그룹은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전력 인프라 등 신사업에 20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계획했다. 최근 3년 연평균 설비투자 규모인 500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전력기기 산업 특성상 설비투자가 필수적이고, 잠재 성장성이 높은 만큼 필요한 자금도 비례해서 불어날 수밖에 없다. 시중금리는 물론 통상 환경까지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진 탓에 현재 그룹이 보유한 자금 동원력만으로 계획한 투자를 소화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LS그룹은 사업부를 분할, 신설해 외부 투자를 유치하고 수년 내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식으로 필요한 설비투자금을 충당하는 계획을 짜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도 LS전선 자회사들의 IPO가 본격 검토되고 있다. LS이브이코리아와 LS전선이 2008년 인수한 미국 전선업체 슈페리어에섹스(SPSX)의 자회사들이 그 대상이다. 그 중 권선부문 자회사인 LS에식스솔루션즈는 상장 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선정하고 상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LS일렉트릭의 자회사인 KOC전기도 최근에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했으며 이외에도 LS MNM, LS이링크 등이 상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작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을 독려하기 시작했고, 올 들어 증시가 부진하자 계열 분할, 중복상장을 통한 자금 동원에 대한 주주들의 원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때 계열사들의 연이은 상장이 결과적으로 전체 그룹의 기업가치 상승에 기여한다는 논리가 시장에 통하기도 했으나, 국내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이 대기업들의 계열사 상장 및 주주가치 소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점차 중복 상장에 대한 허들이 높아진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 이후 모자회사 상장으로 인한 기존 주주의 피해가 본격 조명되기 시작했다. 투자유치와 그 이후 IPO까지 몇년간의 로드맵을 짜고 행동한 LS그룹 입장에선 난처할만 하다"라고 말했다.
이미 상장을 전제로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자금을 유치한 터라 계획된 IPO를 무르기도 힘든 상황으로 풀이된다. 에식스솔루션즈는 최근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KCGI컨소시엄으로부터 약 2950억원을 모았고, KOC전기는 작년 5월 LB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지분 51%를 592억원에 인수하면서 3년 내 상장을 약속한 바 있다. 이외에도 SEABL, LS MnM, LS이브이코리아 등 외형 확장 과정에서 외부 자금을 유치한 계열사들은 상장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LS그룹이 상장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임죄 성립 요건이 과거에는 회사의 손해였다만, 앞으로는 주주의 손해도 포함될 수 있단 의미다. 중복 상장으로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단 지적이다.
이에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IR(Investor Relations)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최근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중복 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상장 후 주식을 안 사면 된다"는 발언을 해서 중복상장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주를 무시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이어졌는데 이 역시 그간 IR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LS그룹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가운데 당분간 그룹의 행보가 자본시장의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저비용 고효율 AI인 딥시크의 등장으로 전력기기 관련 주가가 주춤하지만 전력 관련 사업에서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춘 LS그룹은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투자자와 접촉면이 넓어진 상황에서 LS그룹의 소통 능력에 대한 평가가 필연적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이런 가운데 자본시장에 비쳐져 있는 LS그룹의 기존 이미지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구자은 LS그룹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는 LS글로벌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고 해당 주식을 비싸게 매각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미 대법원이 공정위 처분 불복 소송에서 부당 지원 행위를 인정했기 때문에 형사재판에서도 무죄 입증은 쉽지 않을 거라는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재판에 걸려있는 혐의들은 일감 몰아주기ㆍ통행세 수취 등 현 자본시장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룹 성장을 위해 자본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지배구조 리스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산업 싸이클 측면에서 LS그룹의 핵심 사업들이 성장성이 높은 구간에 접어들었고, 투자를 위한 자본 조달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은 맞다"면서 "밸류업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는 이전과 달리 LS 같은 B2B(기업간 거래) 기업에도 주주소통ㆍ환원 등의 '미덕'을 요구하는데, 오너 일가 및 최고경영진이 얼마나 빠르게 새 트렌드에 적응할지가 변수"라고 지적했다.
LS그룹, 전력 인프라 호황 예상에 자금 확보하려하지만
중복상장 지적에 주주가치 훼손 딜레마 놓인 상황
IPO 로드맵과 외부투자 유치 약속 사이에 진퇴양난
시장 관계자들과 소통 역량이 성패 좌우할 전망
중복상장 지적에 주주가치 훼손 딜레마 놓인 상황
IPO 로드맵과 외부투자 유치 약속 사이에 진퇴양난
시장 관계자들과 소통 역량이 성패 좌우할 전망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19일 15:4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