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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한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심사개시 전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으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결론을 정해놓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 증자의 경우 자금 집행시기가 2028년까지로 예정돼있어 자금 사용처는 물론, 조달 시기에 대한 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 원장이 'K-방산' 운운하며 벌써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20일 금감원은 이번 한화에어로의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상증자 계획이 공시되고 불과 30분만이다. 금감원은 증자 규모가 크고 1990년 이후 첫 유상증자인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는데,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사전에 제출받는 점을 고려하면 미리 중점심사를 계획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화에어로와 같은 대규모 유상증자는 일찍이 금감원에 보고를 하는게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금감원은 사전에 답을 정해놓은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원장이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지난 20일 이 원장은 "최근 보호무역주의 경향 강화 등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회사가 '케이(K)-방산'의 선도적 지위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번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심사역량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를 문제삼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복현 원장의 발언만 보면 한화에어로 유상증자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중점심사가 얼마나 집중적으로 이뤄질지 의문"이라며 "심사란 말 그대로 살펴보는 과정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결론이 나있다면 과연 심사가 필요한 지 모르겠다"라고도 말했다.
특히, 이번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에 대해서는 증권가 연구원들조차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데도 금감원장이 나서서 옹호하는 상황이 대조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향후 늘어날 영업이익만으로도 투자금을 자체 충당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회사 자금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투자에 굳이 주주들의 돈을 끌어다 쓰겠다는 결정인데, 오히려 금감원이 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결 영업이익 3조5천억원과 이후의 꾸준한 이익으로 투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유상증자를 자금조달 방식으로 택한 것은 아쉽다"며 "투자의견을 보류로 낮추고 현 적정 PER(주가수익비율) 20배를 유지할 만한 대단한 투자가 집행되는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한화에어로에 대한 투자심리가 우호적이기 때문에 증자 이외에 채권 등의 자금조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에어로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390%인데, 회사채 사채관리계약상 부채비율 유지 의무선은 600%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부채가 부담된다면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신종자본증권이나 교환사채(EB) 등의 메자닌 발행이란 선택지도 있다.
더불어, 이번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 결정은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시 한 결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 한화에어는 1조3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가진 기업들이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인수했다. 대규모 자금을 총수 일가 관련 지분 인수에 먼저 사용한 후 곧바로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자금 부담을 주주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이에 금융시장에 공정한 질서를 확립해야 할 금감원이 기업의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역할은 금융시장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인데 최근 이 원장의 행보는 시장에 혼동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앞서 삼성SDI의 유상증자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며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을 당국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움 드리겠다"고 했다. 금감원장의 역할이 기업 경영진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원장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금감원이 유상증자 중점심사 제도를 도입한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화에어로의 대규모 증자 결정에 대해 증권가와 투자자 사이에서 싸늘한 반응이 나오고 있음에도 이를 면밀히 심사하겠다는 태도가 아닌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기업의 결정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금감원은 유상증자 중점심사 제도 도입 배경으로 주식가치 희석화 및 일반주주 권익훼손 우려 등을 꼽았던 바 있다.
취재노트
3.6조 유증 공시 30분 만에 중점심사 결정…동시에 우호적 평가
증권가에서도 유증 회의적인데…금감원장이 나서서 옹호
일각에선 "유증 중점심사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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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21일 15:3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