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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승계의 시간은 한화S&C가 설립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화S&C는 ㈜한화의 전산사업이 떨어져 나온 회사로 ㈜한화와 김승연 회장이 대주주였다. 4년 뒤 ㈜한화는 보유지분 전량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 넘겼고, 김승연 회장은 나머지 두 아들에 지분 절반씩을 나눠줬다. 당시 김 회장은 50대, 김 부회장은 20대 초반이었다.
2007년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한화S&C 증자에 참여하며 김동관 50%, 김동원 25%, 김동선 25% 지분구조가 만들어졌다. 그해 삼형제는 한화S&C에 1147억원을 증자했고, 한화S&C가 ㈜한화 지분 2.18%를 인수하며 지배력 강화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한화S&C는 이후 그룹의 일감을 몰아 받으며 성장했다. 계열사 사업을 받아 오고 한화아이티씨, 군장열병합발전 투자사업부문 등을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2012년엔 여수열병합발전과 군장열병합발전 등 자회사 두 곳을 합해 '한화에너지'를 설립했다.
한화S&C는 2017년 SI사업을 물적분할했다. 삼형제의 에이치솔루션이 존속회사, SI사업을 하는 한화S&C가 신설회사가 됐다. 그해 신설 한화S&C는 사모펀드(PEF) 투자를 유치했고, 2018년 한화시스템과 합병을 거쳐 2019년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했다. 한화S&C로 경제적 기반을 다진 삼형제는 이로써 '일감 몰아주기' 부담도 덜었다.
2021년 한화에너지는 모회사 에이치솔루션을 흡수합병했다. 회사는 지난해 공개매수로 ㈜한화 지분율을 14.9%까지 확대했고, ㈜한화의 자산을 받아오기도 했다.
한화에너지는 올해 주관사를 선정하며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기업가치는 4조~5조원으로 거론된다. 2005년 삼형제가 지분을 받을 때 한화S&C의 기업가치는 300억원 수준이었다. 삼형제가 항상 소유하던 회사인데 기업가치는 20년 새 100배 이상 커진 셈이다.
한화에너지가 오너일가 회사라 단순 자금 확보건 ㈜한화와 합병 포석이건 어떤 식으로는 승계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자문사들도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다만 오랜 기간 현란한 기법을 활용해 지금의 형태와 사업을 꾸린만큼 주목을 받더라도 과거 문제가 불거질 여지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승계 과정이 복잡해 과세당국이나 경쟁당국도 과거 일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이 한창 경영 일선에 있고 3형제도 어릴 때부터 승계를 준비한 것이 이제 빛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승계 작업이 워낙 복잡하게 이뤄졌다 보니 당국도 살펴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승계는 한화그룹처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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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승계를 위한 경제적 기반은 한화S&C에서 한화에너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나머지는 후계자가 경영을 이끌 역량이 있느냐는 명분과 당위성인데, 이는 M&A로 채워가는 모습이다.
한화그룹이 승계의 지렛대로 삼고자 했던 사업은 태양광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김동관 부회장을 전면에 세워 세계 각지로 사업을 넓혀 나갔는데 글로벌 환경에 따른 부침이 있었다. 해외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여러 투자를 집행했으나 그 역시 투자 대비 성과가 마뜩지 않다.
그보다는 삼성그룹과의 화학·방산 부문 빅딜이 치적의 기반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한화그룹은 2015년 ㈜한화, 한화에너지, 한화케미칼 등이 나서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했다. 삼성테크윈에 삼성탈레스도 함께 딸려 왔다.
한화테크윈은 2018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사명을 바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의 항공사업부와 한화방산 등을 인수했고, 2016년 인수한 한화디펜스(전 두산DST)도 흡수합병하며 한국 항공·방위산업의 간판으로 거듭났다. 매년 해외에서 대규모 수주 성과를 내며 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이달 발표한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가 잠시 제동이 걸렸지만 큰 차질은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3년 한화오션(전 대우조선해양) 인수도 주도했다. 당시만 해도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인수를 결정했는데 2년 새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글로벌 선박 수요가 꾸준히 유지됐고, 미-중 갈등에 따른 수혜도 입고 있다. 한화오션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강조한 뒤엔 증시 최고의 블루칩이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한화에너지가 갖고 있던 한화오션 지분을 사줬다.
한화시스템(전 삼성탈레스)과 한화임팩트(전 삼성종합화학)도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대주주, 한화에너지가 2대주주로 있다. 회사는 전차, 군함 등의 무기전술 체계를 생산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무기 판매가 늘수록 실적이 늘 수밖에 없다. 한화임팩트 역시 한화에너지 자회사로 승계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작년 김동관 부회장이 이 회사의 투자부문 대표에 올랐다. 한화임팩트파트너스를 통해 미국 사업 확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그룹의 비주력 사업이 한화그룹을 먹여살리는 꼴이다. 최근 수년간은 예상을 뛰어넘는 호재가 이어지면서 오랜 기간 준비한 승계 작업의 최종본이 도출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20년 넘는 서사가 결말을 향해가다 보니 그룹 안팎에서도 누가 이런 대단한 장기 플랜을 짰느냐는 물음이 나올 정도다.
또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계획들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데 대해 놀라는 분위기가 있지만 지금의 조선, 방산 상승세는 계산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한화그룹의 지금 상황을 보면 운칠복삼이라고 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2001년 설립 한화S&C, 삼형제 경제적 기반
그룹 일감 지원 속 기업가치 100배 이상 성장
승계 당위성은 삼성그룹과 빅딜 이후 마련돼
20년 이상 현란한 기법 활용하며 승계 준비
최근 방산·조선 호황은 "계산에 없었다" 평가
그룹 일감 지원 속 기업가치 100배 이상 성장
승계 당위성은 삼성그룹과 빅딜 이후 마련돼
20년 이상 현란한 기법 활용하며 승계 준비
최근 방산·조선 호황은 "계산에 없었다" 평가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3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