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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리테일 부문 전통 강자 키움증권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차액결제거래(CFD) 사태에 이어 최근에는 해외주식 점유율 '부풀리기' 논란, 미국 단기채 상장지수펀드(ETF)의 자전거래 방조 의혹, 대표의 경쟁사 비방성 발언 등 각종 논란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연이은 구설을 두고 업계에서는 키움증권의 '조급증'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불과 3년 사이 리테일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인 토스증권의 급부상에, 이 부문 전통 강자였던 키움증권이 잇달아 무리수를 두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평가다.
토스증권은 지난해 11월, 업계 최초로 월간 해외주식 거래대금 30조원을 돌파하며 업계에서는 해외주식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토스증권의 외화증권 수탁 수수료 수익은 2080억원으로 전년 대비 211.8% 늘었다. 2089억원을 기록한 키움증권을 불과 9억원 차이로 턱밑까지 추격한 셈이다.
공식적으로 키움증권은 토스증권의 실적 개선과 점유율 확대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내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키움증권 관계자는 "리테일 부문 시장점유율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다 보니, 브로커리지 관련 논의뿐만 아니라 DCM 등 전통 IB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관 부서에도 압박이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키움증권은 올해 1분기 DCM 전체 주관으로 롯데렌탈 등 36건, 총 1조5186억원 규모의 딜을 성사시켰다. 지난해보다 주관 규모가 3000억원 가량 늘어났고, 순위 역시 미래에셋증권을 끌어 내리고 7위로 올라섰다. 업계에서는 키움증권의 적극적인 인수금융 및 DCM 분야 영업 드라이브가 리테일 부문 경쟁력 약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관계자는 "1분기 회사채 주선 시장에서 대형사들을 제외하고 가장 눈에 띄는 플레이어 중 한 곳이 키움증권"이라며 "적극적으로 주관 영업을 했고, 주관이 힘들면 인수단에라도 들어가 어떻게든 발행사와 관계를 트려는 노력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키움증권은 과거 리테일 부문 시장 점유율 선점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증권사"라며 "토스증권이란 신생업체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비슷한 방식으로 따라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내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지난 1월 현금 리워드 이벤트인 '히어로 멤버십'을 시작했다. 그 결과 해외주식 점유율이 한 달 만에 약 10%포인트 상승하며, 업계 1위를 탈환했다. 다만 이를 두고 이후 보상을 노린 이른바 '체리피커'(얌체 소비자)가 몰렸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고 현금 리워드를 챙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키움증권은 이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키움증권의 조급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사실상 돈을 주고 점유율을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태인데, 지난해 10월 금투협에서 무차별적인 현금 보상에 대한 경고성 공문을 보냈음에도 키움증권이 다소 무리하게 해당 이벤트를 진행한 것 같다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키움증권은 결국 4월부터 미국 단기채 ETF 37개 종목을 현금보상 이벤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통계 왜곡 논란도 적지 않다. 키움증권은 최근 IR자료에서 해외주식 거래대금 32조원, 해외주식 시장거래대금은 77조5000억원이라며 해외주식 시장 점유율이 41.3%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는 집계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 수치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예탁결제원은 순매수 기준(네팅 방식)을 쓰는 반면, 키움은 매수와 매도를 단순 합산해 거래대금을 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분모는 줄고, 분자는 부풀려져 실제보다 과장된 점유율 수치가 산출됐다는 것이다.
키움증권은 취합된 전체 외화 증권의 결제 대금 추이를 보여주기 위해 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시장 일각에선 "정보 제공을 가장한 과잉 홍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설화(舌禍)도 이어졌다. 지난 26일 주주총회에서는 엄주성 대표이사의 '토스증권 저격' 발언이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엄 대표는 커뮤니티 활성화 방안 질문에 "토스증권 커뮤니티는 리딩방 같다는 평가가 있다"고 언급했다.
토스증권의 커뮤니티는 투자자 간 자유롭게 종목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한 기능으로, 실제 종목 보유자만 글을 쓸 수 있게 설계돼 투자자 신뢰도 높은 서비스로 평가받고 있다. 3월 말 기준, 토스증권 커뮤니티의 월 평균 사용자는 약 130만명에 이른다.
키움증권은 해당 발언이 "리딩방으로 악용될 수 있는 우려 때문에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위기의식이 무의식적으로 외부로 드러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회사의 대표로서 주주총회에서 타 회사를 콕 집어 비방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리테일 부문 1위를 자부하는 증권사 대표가 아무리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해도 공식 석상에서 후발주자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는 건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증권사간 리테일 경쟁이 격화하자, 최근 금융당국도 모니터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운용사들 사이의 ETF 경쟁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자금력을 앞세워 현금성 이벤트를 남발하면 중·소형 증권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키움증권은 그동안 경쟁자가 없다시피한, 리테일 쪽에선 '1강'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라며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영풍제지 미수금 사고때도 점유율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 정도로 고객들의 충성도가 강했는데, 이제는 토스증권과 메리츠증권이라는 대안이 떠오른 만큼 키움증권의 역량이 본격 시험대에 오른 셈"이라고 말했다.
2023년 SG증권發 주가 폭락 사태에도 견고했던 '리테일 최강자' 지위
단기채 ETF 자전거래 논란ㆍ'점유율 부풀리기' 의혹…각종 구설수 자초
업계 "토스證 급성장에 조급 대응…커뮤니티 발언도 위기의식 반영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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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토스證 급성장에 조급 대응…커뮤니티 발언도 위기의식 반영된 것"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31일 16:0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