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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이렇게까지 운(?)이 좋았던 기업이 있었는가 싶다.
몇 년 전부턴 한화그룹의 중심이던 화학사업은 끝없는 추락을 시작했다. 수 십년간 미래 먹거리로 삼았던 태양광은 여지껏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룹의 대표적인 유통사인 갤러리아는 휘황찬란한 겉모습과는 달리 한 푼도 못벌어들이는 재력가들의 놀이터 수준에 불과하다. 불확실한 건설 사업은 기대감이 작다.
2022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시작으로 혼돈에 빠져든 정세는 한화그룹에 반전의 계기가 됐다.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두산DST,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며 사실상 우리나라의 대체불가능한 방산기업으로 자리잡은 한화그룹은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룹으로 변모하게 됐고, 혼란한 국제 정세에 최대 수혜기업이 됐다. 때마침(?)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패권주의를 내세우며 위기감을 더했다.
이제서야 그룹의 주축이 됐지만 방위 산업은 사실 돈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란 매출처가 있지만 국가 사업이다보니 수수료가 박해 들이는 돈에 비해 남는게 얼마 없는 사업이다. 그러나 수출이 가세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전쟁에 대한 공포는 각 국의 군비경쟁을 부추켰고 전차와 자주포, 군함 등 밀려드는 수주는 방산 계열사의 덩치를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가세했다. 그러자 만년 바닥을 기던 한화오션(대우조선해양)의 주가가 수직상승 했고, 변방에서 그룹의 중심으로 파고 들었다.
불과 2년 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때만 해도 존재하던 불안감은 기대감으로 치환했다. 사실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하려 했지만 포기한 전례가 있다. 결론적으론 그룹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었던 파고를 피해간 결정적인 순간으로 기록됐다.
한화그룹, 엄밀히 말하면 김승연 회장과 오너일가는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사실상 가족회사인 한화에너지와 그 계열사가 보유한 한화오션의 주식을 인수했다. 한화그룹은 "시너지 제고와 책임경영 강화"란 근거를 제시했으나 사실 그 목적과 시기에 대해선 말들이 많다. 궁극적으로 1조3000억원이란 자금이 한화에너지 및 계열사로 흘러들어 갔고, 재무부담을 던 한화에너지는 곧바로 기업공개(IPO) 작업에 돌입했다. 당장 눈 앞에 실익이 없는 한화오션 지분을 사들이느라 조 단위 지출을 하게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의 증자를 발표하며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
사실상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주들이 고통을 분담하고, 대주주인 ㈜한화 역시 재무적 부담이 가중하지만 한화에너지와 그 오너일가는 막대한 수혜를 보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복현 금감원장이 나서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최대한 빨리 심사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 역사상 전례 없는 최대규모의 유상증자임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 최고 수장이 심사도 시작하기 전부터 앞장서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앞서 MBK파트너스가 촉발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한화에너지와 오너일가는 또 한번 수혜를 봤었다. 자금이 급한 고려아연이 ㈜한화의 주식을 한화에너지에 넘겼다. 한화에너지, 즉 오너일가가 ㈜한화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은 김승연 회장의 주식을 받아오거나 공개매수를 통한 거래가 전부였다. 이미 공개매수는 한 차례 실패했는데, 결론적으론 ㈜한화의 자사주를 한화에너지가 비교적 싼 값에 받아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현재로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습 유상증자로 투자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김승연 회장은 또 한번, 어쩌면 승계를 위한 마지막이 될지 모를 퍼즐을 맞췄다. 3남에게 지분 절반을 증여했고 사실상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끝냈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에너지와 개인이 보유한 ㈜한화 지분을 합해 사실상 그룹의 최대주주가 됐고 대관식을 앞두고 있다.
오랜기간, 아주 천천히 시장에 각인시켜온 그대로의 시나리오인 탓인지 지분 승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발심도 적었다. 사업이 잘 되고 주가가 오르니 그룹 총수가 누구든 그리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는 어쩌면 김승연 회장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른다. 후대에 너무도 똑똑한 세 아들 사이에 펼쳐질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직 권력이 살아있을 때 모두 정리하겠단 의지였을 수도 있다. 유상증자가 이왕 논란이 된 김에 승계까지 한 번에 해결해보잔 '한화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경영권 승계의 방법과 일련의 자본시장 거래의 적합성은 한화그룹의 창립 이래 초호황이란 시기적 배경에 묻혀있는게 사실이다.
운과 복에 좌우된다는 운칠복삼(運七福三)이란 말은 이제껏 한화에 너무도 잘 들어맞았다. 어디가 정점일지 모르는 이제부턴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현 정부의 최대 수혜기업이란 낙인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M&A와 IPO, 유상증자에 지분증여까지 숨가쁘게 진행되온 거래들에 투자자들은 조급함을 느끼고 있고 또 그룹 내부에서도 이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톱니바퀴가 너무도 잘 맞아 떨어졌을 땐,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을 떠올려야하는 시기가 왔단 의미이다.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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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4월 01일 12:2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