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도 없고, MBK도 없고…수수료 장사 걱정하는 IB들
입력 25.04.03 07:00
대기업 비용절감 기조에 IB 수수료 '뚝'
잠잠한 MBK에 PEF發 거래도 많지 않아
ECM·DCM 정통IB 업무 수수료는 '바닥'
"IB도 투자 수익" 사업 패러다임 전환중
  • 올해도 국내 투자은행(IB) 업계는 ‘보릿고개’를 걷고 있다. 구조조정 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정작 IB들이 수익을 거두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대기업은 수수료를 깎고 있고, 사모펀드(PEF)는 보수적인 태도로 돌아섰으며, 외국계 IB의 자리를 회계법인이 대체하는 구조 변화까지 나타나고 있다.

    수조원대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IB들은 눈에 띄는 수수료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자문 기회를 아예 얻지 못하거나, 수십억원 이하의 수수료에 그치는 경우가 흔해졌다. 대기업의 리밸런싱(사업재편)도 회계법인이 턴키 방식으로 가져가면서 IB의 역할은 부수업무로 전락했다.

    SK도, MBK도 ‘조용’…대형 거래 있지만 IB는 없다

    SK그룹은 최근 수년간 계열사 매각과 분할, JV 설립 등 대규모 리밸런싱을 벌이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주요 IB들은 배제되고 있다. 과거 수백억원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던 조단위 거래들도 지금은 수수료가 10~30억원 수준으로 낮아졌고, 심지어 아예 자문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SK그룹은 비용절감을 위해 회계법인 중심으로 리밸런싱을 진행 중이며, 삼일PwC가 SK스페셜티 매각(약 2.7조원) 등 굵직한 거래들을 도맡았다. 애경그룹은 그룹의 핵심자산 매각을 삼정KPMG에 맡겼다. 딜로이트안진, EY한영도 매각자문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회계법인은 기존 IB보다 낮은 수수료 기준으로 M&A 자문 시장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외국계 IB들이 최소 수수료 기준을 30억원 이상으로 잡는 반면, 회계법인은 수억원 수준에서도 거래를 수임한다. 이는 조단위 거래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게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로 대표되는 빅3 IB들의 아성은 이전만 못하다. 외국계 IB 중에선 수수료 경쟁에 불을 붙인 UBS(옛 CS 합병) 정도가 눈에 띄는 상황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거래 구조가 복잡하지 않다면, 대형 거래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며 “외국계 IB 출신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MBK 빠진 PEF 시장, 인수전 동력도 약해져

    딜 성사 가능성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한때 빅딜의 핵심 인수 후보였던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사태 이후 사실상 매각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클래시스, HPSP 등 주요 거래에서도 MBK는 빠졌고, 다른 대형 PEF들 역시 공격적 입찰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MBK 부재로 경쟁 강도가 낮아지면서, 매각가 하락 압력도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는 PEF 전반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대형 PEF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고, 이는 딜 사이클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시국에 대형 거래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는 업계 반응도 나온다.

    이런 리스크는 IB 수익성과도 직결된다. 자문 대상이 줄고, 인수자도 줄며, 거래 성사 가능성까지 낮아졌기 때문이다.

    ‘DCM도, ECM도’ 수수료는 바닥으로

    IB의 핵심 수익원인 DCM(채권발행시장), ECM(주식발행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근 진행한 유상증자에서 주관 수수료는 각각 30bp, 25bp 수준으로 형성됐다. 과거 2014년 유상증자 최저기준 ‘1% 수수료’가 깨진 이후 현재  4분의 1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회사채 시장도 마찬가지다. 20~30bp 수준이던 회사채 인수 수수료는 작년 15bp 이하로 내려갔다.대형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을 활용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낮은 수수료에도 거래에 나서면서, 전체 수수료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사 IB본부장은 “이제는 수수료 장사만으로는 연간 실적을 맞추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전했다.

    IPO(기업공개)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빅딜(big deal)들이 순서를 기다리고는 있지만, 미국의 관세정책과 경기침체 우려로 인한 변동성이 극에 달하며 일단 시장의 추이를 관망하려는 모습이 감지된다. 

    우려를 딪고 서울보증보험이 증시 입성에 성공했지만, 투자자들에게 큰 수익을 돌려주진 못했다는 점 역시 부담이다. 공모 규모가 곧 수수료 수익으로 직결되는 IPO 시장 특성상, 빅딜의 부재는 실적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수료 아닌 ‘투자 수익’ 중심으로… IB 비즈니스 패러다임 변화

    일부 증권사 IB들은 수수료 외 수익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프리IPO 투자나 메자닌 투자 등 자기자본을 활용한 전략을 강화하면서, 자문 수수료보다는 투자 수익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 중이다. 

    최근엔 IPO를 앞둔 기업의 지분을 사전 취득해, 상장 이후 차익 실현에 초점을 맞추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 IPO 부서들은 상장 전 투자와 IPO 주관을 연계하고 있다. 다만 '파두 사태' 이후 한국거래소의 심사 장벽이 두터워지며 비상장 기업 투자 리스크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외국계 IB와는 다른 방향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IB들은 자기자본 투자를 최소화하고, 수수료 기반 비즈니스에 집중해왔다. 반면 국내 IB들은 제한된 수수료 구조 속에서 자본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흐름에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수수료 경쟁에서 벗어나 투자형 IB로 진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대”라며 “이미 주관사는 핵심 사업이 아닌, 수익을 위한 하나의 진입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