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생존 경쟁 가열…'앙숙' 된 삼성ㆍ미래 진흙탕 싸움에 금융당국 칼 빼드나
입력 25.04.09 07:00
취재노트
삼성-미래운용간 극한 경쟁에 전운도는 ETF업계
금감원, 강력한 제동 걸 가능성 거론…10일 간담회 주목
"감정싸움으로 번진 경쟁, 서로 수익 내지 말자는 형국"
  • "최근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간 관계는 감정적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경고를 줘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간의 ETF 시장 점유율 다툼이 극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두 회사간 경쟁이 감정적 앙숙 관계로까지 번지면서 금융당국이 강력한 제동을 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10일 ETF 상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CEO(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김우석 삼성운용 대표, 이준용 미래에셋운용 부회장 등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 대표들이 참석한다. 

    당국에서 '수수료 인하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용사간 경쟁이 걷잡을 수 없어져 각 운용사 대표를 소집한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최저' 타이틀을 위한 운용사간 보수 인하 경쟁은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됐다. 미래에셋운용과 점유율 격차가 줄자 삼성운용이 먼저 KODEX S&P500TR 등 미국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의 총보수를 0.05%에서 0.0099%로 대폭 인하, 경쟁의 포문을 열었다. 

    올해 들어서는 1위 쟁탈을 노린 미래에셋운용이 선제적으로 대표 상품인 TIGER 미국 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 100의 총보수를 연 0.07%에서 0.0068%로 내렸다. 미래에셋운용은 대표 ETF 상품의 순익 감소를 감수한 결정이었다. 삼성운용은 바로 다음날 동일 지수를 추종하는 ETF의 총보수를 0.0062%로 더 낮췄다. 2차 보수 인하 경쟁에 불이 붙었다. 

    미래에셋운용은 최근 3차 보수 인하 경쟁을 준비했다. 삼성운용의 대표 ETF 상품인 레버리지·인버스 ETF의 운용보수를 삼성운용의 100분의 1수준으로 낮춰 승부를 걸려고 한 것이다. 

    다만 이번엔 금감원이 제동을 걸었고, 미래에셋운용은 계획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의 경쟁은 당국도 말릴 수 없는 수준이 되고 있다"라며 "'업계 최저 보수' 타이틀을 얻어 고객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지금은 각사가 대표 상품의 수수료를 극단적으로 낮춰 사실상 '서로 수익을 내지 말자'는 메시지를 주고 받는 형국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ETF 보수 인하 경쟁이 업계 전반의 수익성을 해치는 치킨게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운용과 미래운용 간의 관계에서 감정적 골이 깊어져 '앙숙' 관계로 변모하고 있다고 본다. 금감원의 구두 지시나 업계 관계자들의 만류에도 양사 간 치킨게임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당국은 지난 2월 삼성운용의 보수 인하 맞대응 당시 '더 이상 인하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업계 고위 관계자들도 경쟁 자제를 요청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양사 임직원들이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말조차 섞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독한 삼성'을 강조하는 그룹 기조에 맞춰 김우석 삼성운용 대표는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본부장들을 독려하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운용 역시 최고경영진의 1위 달성 독려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 인하 경쟁이 투자자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일각의 분석과 달리, 이러한 양사 간 출혈 경쟁은 여러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은 일부 ETF에서 낮춘 보수를 다른 ETF 상품의 보수를 높임으로써 순익 감소를 상쇄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운용역의 노력이 상대적으로 적게 요구되는 테마형 ETF의 보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대형 운용사가 손실을 감수하며 보수 인하를 단행함에 따라, 아직 충분한 수익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중소형 운용사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업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수익성 저하를 버틸 수 있지만 다른 운용사가 울며 겨자먹기로 보수 인하 전략을 따라갈 경우 상당수 운용사가 고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이번 간담회를 시작으로 금융당국이 수위 높은 조치를 시행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업계에선 향후 보수 인하를 발표하는 운용사는 ETF 상품 전체의 보수 책정 원리를 금감원에 제출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ETF 상품의 총보수는 관행상 정해지는 것들이 많아 운용사 입장에선 책정 원리 공개가 예민한 일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보수 인하가 쉽지 않아지는 셈이다. 

    실제로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최근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을 통해 "순위 경쟁만을 위해 일부 경쟁 상품을 타겟팅한 노이즈 마케팅이 계속 반복되는 경우 관련 운용사에 대해 보수 결정 체계 및 상품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해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ETF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