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PEF, 韓 정세 관심도 뚝…관세 전쟁發 연쇄 충격파에 한숨
입력 25.04.10 07:00
탄핵 인용으로 韓 정세 불확실성은 제거됐지만
미국 관세 전쟁 촉발하며 더 큰 불확실성 등장
경상수지 악화에 성장률 하락, 투자금 이탈까지
"파장 예측 어렵다" 다시 움츠러들 글로벌 PEF
  •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은 작년 말 계엄사태 이후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혔지만 반색하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발 관세 전쟁이 블랙홀이 돼 사소한(?) 정세 문제는 다 집어삼키는 상황이다. 앞으로 한국 시장에 얼마나 큰 충격파가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만큼 투자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전까지 한국 내 글로벌 PEF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정세 불안'이었다. 이들은 작년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의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본사에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며 투자를 집행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달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했는데 글로벌 PEF들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를 보였다. 탄핵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았고, 재판관들도 하나로 뜻을 모으면서 논란의 여지를 없앴기 때문이다. 비상 회의를 열거나, 본사의 질문에 대응하는 등 분주한 분위기는 없었다.

    글로벌 PEF들의 발목을 잡았던 한국 정세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걷혔고, 차기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어떻게 다시 투자를 재개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향후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대한 득실 판단을 하느라 분주해야 할텐데 그런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PEF 산업을 말살할리 없기 때문에 대선 결과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며 "글로벌 PEF는 한국 규제에서도 한발 비켜나 있어 영향이 더 적다"고 말했다.

    문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이다. 이 여파로 각국의 정세나 경제 환경 등은 더욱 사소한 문제가 됐다.

    지난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5일부터 세계 모든 국가에 10%의 기본 관세를, 9일부터 국가별로 차등 개별 관세를 추가한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최악의 침해국(worst offenders) 중 하나로 지목된 한국의 상호관세율은 25%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부터 관세(Tariff)를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표현하며 관세 인상 의지를 보여왔다.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협상용 카드'란 평가가 많았지만 실제로 이를 휘두르기 시작하자 전세계가 충격파에 빠졌다. 미국을 시작으로 모든 국가의 주식 시장이 된 서리를 맞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PEF들도 미국발 관세 전쟁의 충격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우려를 표하는 모습이다. 당장 경상수지가 악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인 경제성장률과 투자성적표까지 타격을 입힐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포트폴리오가 먼저 타격을 받겠지만, 내수 중심 기업도 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90일간 일시 유예하기로 했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경상수지가 악화하면 한국에서 돈이 빠져 나갈 것이고 국내총생산 감소, 원달러 환율 상승, 나아가 리세션(경기침체)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투자자 입장에선 탄핵이나 대선보다는 무역 관세 전쟁으로 인한 충격파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기대했던 환율 효과도 제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달러화 가치가 높을 때가 한국의 좋은 자산을 싸게 살 기회라는 시선이 있었지만, 전방위적인 경기 하방 압력 속에서는 글로벌 PEF들도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힌 정도로는 다시 투자에 적극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1450원 안팎의 환율이 새로운 기준이 됐기 때문에 글로벌 PEF들도 이에 맞춰 다시 전략을 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미국 관세 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높고 예상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수출 여건이 악화할 것이며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도 안 좋아질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그 파고가 얼마나 높을지 예상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다른 글로벌 PEF 관계자는 "트럼프의 관세 인상 의지를 과소평가했던 것이 충격파로 돌아오고 있다"며 "관세의 여파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현해 경제를 망가뜨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진짜 공포"라고 말했다.

    다른 PEF 업계 관계자는 "미국 기업들도 관세 전쟁 영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PEF가 먼저 의사를 결정하고 조치를 취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