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수혈 필요성 부상한 SK이노…현금 생긴 SK㈜에 손 벌릴까
입력 25.04.16 07:00
합병 후 종합에너지로 새출발했지만 美中 격돌에 골고루 위험 노출
수익성 꺾이는데 1년새 순차입금 31조로…신평사도 예의주시
자산매각 쉽지 않고 자회사 중복상장 효과 기대하기도 어려워
현실적으론 '증자' 거론…떨어진 주가에 모회사 의존 반복 부담
  • 그룹 에너지 사업을 관장하는 SK이노베이션의 리밸런싱(사업 조정)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신용등급 불안이 계속되는 데다 에너지 산업 전체가 미중 갈등 한복판에 말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재무부담을 감안하면 추가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는데, 자연히 알짜 자산 매각에 성공한 SK㈜의 지원 여력에 시선이 모인다.

    최근 들어 증권가는 SK이노베이션이 1분기에도 당기순손실을 이어갈 것이라고 눈높이를 낮추기 시작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실적 전망을 올려잡고 있었지만, 미국 정부가 새 관세 정책을 발표하고 국제유가가 요동치면서 주력 사업인 정유 업황을 중심으로 에너지 산업 전반을 불확실하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SK E&S와 합병하며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난 효과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하는 분위기다. SK E&S 합병 이후 SK이노베이션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9조4790억원에서 15조8650억원으로 증가했다. 기업의 현금 보유량이 이만큼 늘면 통상 신사업 투자나 인수합병(M&A)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SK이노베이션의 사정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해외 생산기지 확장 작업이 남아 있는 SK온에 액화천연가스(LNG) 밸류체인을 담당하는 SK E&S까지 합류하면서 SK이노베이션이 전방위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 합병된 SK E&S에 실려온 현금만 2조35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 단기차입금은 7조5585억원에서 12조511억원으로 늘었고, 장기차입금은 13조4037억원에서 27조322억원으로 늘었다. 1년 새 순차입금 14조원이 늘어 작년 말 31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설비투자(CAPEX) 계획까지 포함하면 손에 쥔 현금보다 나갈 돈이 더 많다. 

    지난달 무디스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낮춘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작년부터 자회사 SK온의 투자를 줄이고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속도가 더 빨라 부채 부담이 지속된다고 내다본 것이다. 작년 SK이노베이션이 지불한 이자비용은 1조4670억원인데,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2조4777억원으로 집계됐다. 고정비 부담이 높은 사업 구조를 고려하면 EBITDA로 2년치 이자를 지불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벌어들이는 돈이 2년치 이자에 못 미친다는 건 지금부터 단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안 된다는 얘기"라며 "등급이 떨어져서 이자비용이 오르거나, 업황이 출렁여서 수익성이 더 떨어지거나 하는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국내 신평사들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작년부터 SK온 투자 속도를 조절하면서 재무안정 노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SK온이 SK엔텀·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넘겨받으며 자체 체력을 키우기도 했고, 신평사들도 배터리 사업의 안정화 여부를 주시하며 잠시 지켜보는 상황으로 보인다. 작년 합병으로 석유개발(E&P)부터 정유, 석유화학, 윤활유, LNG까지 종합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구축해둔 만큼 배터리 부진을 뒷받침할 여건도 마련됐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지정학 분쟁 한가운데 놓이고 있다. 미국이 시작한 관세전쟁이 중국의 강경 대응으로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는데, 당장은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SK이노베이션의 주력인 정유 사업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고율 상호관세를 미끼로 자국 에너지 구매까지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희토류 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종합에너지 기업인 만큼 자원대국 간의 신경전에 골고루 포위된 양상이다. 뚜렷한 해법은 없어도 양측 갈등에 적절히 대응하자면 신규 투자건 장기계약이건 얼마간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선은 SK이노베이션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로 모인다. 하반기 금리 인하를 점치는 목소리가 많다고 하지만 차입 부담을 더 늘리기는 쉽지 않을 거란 시각이 많아서다. 

    재무적투자자(FI)와의 계약 문제가 걸린 자회사 SK엔무브의 경우 중복상장 우려를 딛고 기업공개(IPO)에 나설 전망이다. 그러나 FI 회수가 우선인 만큼 SK이노베이션으로 자금 유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단 평이다. 지금으로선 기존 지배력을 유지해 SK엔무브의 수익성이 꾸준히 모회사를 받치도록 하는 게 유리하기도 하다. 

    SK지오센트릭의 납사분해설비(NCC) 매각 가능성도 꾸준하게 거론되지만 현재로선 민간 차원에서 성사시키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정국 불안으로 정부 차원 석유화학 개편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자문사까지 선정했던 분리막 자회사 SK IET 매각 작업 역시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SK온 보유 해외 합작법인(JV) 지분이나 생산공장 일부를 매각하는 방안도 오르내리지만 관세 문제로 완성차 생태계 향방 자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으로 유상증자가 꼽힌다. 이자 부담 없이 자본력을 확충하면 등급 불안도 잠재우고 통상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모회사인 SK㈜가 SK스페셜티를 매각해 지난 1분기 약 2조6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그룹 리밸런싱(사업 조정) 파트너로 부상한 한앤컴퍼니와 SK실트론 매각까지 논의하고 있는 만큼 자회사 지원에 수월한 형편이 마련되는 모양새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삼성SDI도 그렇고 신평사들이 추가 차입보다 유상증자가 낫다고 하는 건 배터리가 이 이상 이자를 부담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 크기 때문"이라며 "SK이노베이션 내 배터리 사업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실제로 몇년 동안 차입금 늘어나는 속도만 가팔라졌다. 등급 불안 문제도 있고 확실하게 자산 매각을 할 수 없다면 증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에 나설 경우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단은 주가가 너무 떨어진 상태다. 이달 들어 관세전쟁 여파로 전체 시장의 변동성이 극심해진 탓도 있지만 유가 불안까지 겹치면서 SK이노베이션 주가는 한 달여 만에 30% 가까이 하락했다. 2년 전 1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나설 때에 비하면 40% 수준 하락한 상태다. 최근 들어 대규모 유상증자에 대한 주주 반발이나 시장 피로감도 만만치 않다. 증자로 방향을 잡는다 해도 계획대로 밀어붙이기 쉽지 않은 형국으로 풀이된다. 

    모회사 SK㈜의 자산이 해를 거듭할수록 SK이노베이션을 향하는 것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10일 나이스신용평가도 SK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전반적인 신용 보강을 이뤘지만 최상위 지주사 SK㈜의 지원 부담이 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SK㈜는 2년 전 SK이노베이션 증자에 4000억원을 투입했고 작년엔 핵심 배당재원이자 캐시카우인 SK E&S를 내줬다. 그룹 중핵인 SK이노베이션이 3년 연속으로 모회사 지원에 기대야 하는 상황을 SK㈜ 주주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확실한 투자 계획이나 성장 밑그림이 그려지면 유증을 밀어붙일 수는 있겠지만 투자자들의 피로감이나 반발이 상당히 거셀 것"이라며 "SK온이 매년 상반기마다 돈이 부족해서 외부 수혈을 받아 간 상황을 SK이노베이션이 시차를 두고 반복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룹 전체적으로 피로감이 번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