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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PEF) 세금은 해묵은 논란거리다. 30년 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차익, 10년 전 KKRㆍ어피너티의 오비맥주 매각차익 과세논란, 그리고 최근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까지 이어진다.
법인세법ㆍ조세조약ㆍ국외투자기구 비과세ㆍ지주사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등 과세특례 조항들이 여럿 엮여 있어 쉬운 주제는 아니다. 다만 정기적으로(?) 사모펀드 세금 논란이 재점화될 때마다 두 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하나는 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설움이다. 지금이야 당당히 K-컬쳐를 자랑하는 나라지만, 국력이 약했던 시절 체결한 조세조약에 매번 발목이 잡힌다. 1976년 서울에서 서명되고 1979년에 발효된 한ㆍ미 조세조약은 국내 세법보다 상위에 있다.
다른 하나는 약아빠진 '검은 머리 외국인'들에 대한 분노다. 천문학적인 돈을 한국에서 벌고, 이 나라에서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 정작 세금은 남의 나라에 갖다 바치는데...그렇다면 조용하게라도 살 것이지, 초대형 사고를 쳐 놓고는 책임을 따져 물으려니 "저는 미쿡인입니다"라며 미꾸라지처럼 도망가는 행태들이 종종 나타난다.
해외 사모펀드는 어떻게 세금을 낼까
KKRㆍ칼라일ㆍMBK 같은 해외 사모펀드라고 해도 한국회사를 인수했다가 매각해 '차익'이 발생하면 국내에서 세금을 매긴다. 관련세법(법인세법 제93조제9호)은 외국회사가 한국기업 주식을 팔아서 얻은 매각차익을 '국내 원천소득'으로 간주한다.
세율은 '지급액의 10% 또는 양도소득의 20% 가운데 적은 금액' (법인세법 제98조제1항제5호)이 적용된다. 일례로 사모펀드가 어떤 회사를 2조원에 인수해서 수년뒤 6조원에 매각했다고 치자. 그럼 매각액 6조원의 10%인 6000억원, 혹은 양도차익 4조원의 20%인 8000억원 가운데 적은 쪽인 6000억원이 과세되는 식이다.
비과세ㆍ면세 신청은 나중에 하고, 일단 세금이 원천징수된다. (법인세법 제98조의5) 즉 사모펀드에게 매각대금을 주는 회사가 우선 세금을 미리 떼서 국세청에 납부한다.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세금을 떼인 사모펀드가 불만이 있으면 나중에 경정청구를 하거나 조세심판원을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보면 단순한데, 논란은 조세조약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가 주요 국가들과 맺은 조세조약은 1970년대 후반부터 최초 서명된 후 발효됐고, 이후 국가별ㆍ항목별로 조금씩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는 1979년 발효된 내용이 그대로다. 네덜란드ㆍ벨기에 등과는 1978~1979년 서명후 일부 항목들이 개정됐다.
문제는 이들 조세조약 상당수에 "한국 내에서 생긴 부동산 양도소득은 한국에서 과세할 수 있지만 주식 등 나머지 양도소득은 거주지 (타국)에서 낸다"라고 규정된데서 비롯됐다. 그리고 정작 그 나라에서는 관련세율이 0%거나 제한세율이 매우 낮다. 그래서 한국에서 기업을 팔아 떼돈을 번 사모펀드들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SPC)를 세워두고 이 명의로 한국기업 주식을 거래한 후, "조세조약에 의거 한국에 세금을 안내겠다"라고 한다. 정작 관련 나라에서도 세금을 면제 받는 식이다. 이 문제로 오랫동안 국세청과 사모펀드가 싸워왔다.
현재는 이 논란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부)가 '비거주자ㆍ외국법인 국내원천소득 과세제도'를 마련하고 2014년 법인세법 개정(제98조의4)를 통해 '국외투자기구'(Overseas Investment Vehicle)의 과세방식을 개선했다. 해외 사모펀드의 실질투자자(LP)별로, 국가와 거주리스트를 개별적으로 국세청에 제출하면 그에 맞춰서 세금을 매겨주겠다는 일종의 타협책. 사모펀드들도 이에 따라 과거 론스타처럼 통째로 "벨기에 SPC니까 세금 0원"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LPㆍ홍콩LPㆍ캐나다LP 등등에 맞춰 조세조약별로 감면받는 추세다. 2014년 오비맥주 과세를 두고 둘러싼 논란은 이 원칙 적용을 두고 국세청과 기재부가 충돌한 사례에 해당된다.
어쨌든 해외 사모펀드 과세를 놓고 국세청이 조사를 들어갈때 사안은 주로 하나다. "한국의 OOO회사를 매각하고 수천억원~수조원의 차익을 거뒀는데 세금을 그때 제대로 냈느냐".
장기간의 법리 싸움이 벌어지고 언론에도 충돌 양상이 보도되는 데, 결과적으로는 적당한 수준에서 양측 '타협'으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세청 조사와 추가과세 에 대해 사모펀드가 조목조목 반박하다가 "이 정도 내면 충분하냐"라고 제안하고 과세당국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인정해 주는 식이다.
매년 세원부족을 감당해야 하는 과세당국으로서는 해외 사모펀드에 대한 몇 건의 세무조사로 단번에 수천억원의 세원을 조달하는 장점도 있다.
'미쿡인' 회장님들이 한국서 수천억 벌고서도 세금 피하는 방법
더 관심사는 '개인'이다.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나 과거 어피너티 박영택 회장 같은 이들이 한국에서 얼마만큼 '소득세'를 내느냐, 혹은 아예 한 푼도 안내는 절세(?) 노하우가 있느냐다.
일단 '183일' 규정이 먼저다. 우리나라는 세법에서 납세의 의무를 지닌 이를 '거주자'로 정의한다. 즉 1년의 절반 즉 183일 이상 거주하면 한국 거주자로 보고 소득세를 내도록 한다. 거주자는 국내외 모든 소득에 대해 과세되지만, 비거주자는 국내 원천소득에 대해서만 과세여부를 판명한다. 그러니 일단 이 조건부터 채워야 한다.
이래서 과거 회장님 비서들의 주된 업무가 "회장님 여권에 직힌 날짜를 하나하나 관리하고 따져서 183일이 넘었느냐, 아니냐를 계산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국내 거주자가 아니면 해외 거주자로 판명, 해외에서 세금을 내면 된다. 하지만 해외는 세금이 적다. 과거 홍콩의 경우, 자본소득세ㆍ이자소득세ㆍ양도소득세 항목이 없고 원천징수도 안되는 식이었다. 한국에선 사모펀드에서 받은 급여를 '급여소득'으로 판단해 50%가 넘는 세금을 매길 수 있지만, 미국 세법에선 투자소득세로 보고 20%만 적용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는 "거주자가 아니어서 안 낸다"고 하고, 해외에서는 세목이 없거나 세율이 낮아 세금을 아끼는 식이다. 한때 신문지상에서 '탈세의 교과서'라고 평가받기도 한 '선박왕' 권혁 시도그룹 회장의 경우,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국내에서 세금을 안내다가 국세청으로부터 수천억원의 법인세와 소득세를 부과 받고 소송까지 이어진 경우다.
183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183일보다 적게 한국에 거주했더라도 ▲국내에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이 있다 ▲직업이나 자산상태를 볼때 183일 이상 국내에 거주할 것으로 인정된다 ▲국내에 본인 명의의 거주지가 있다 ▲국내에 본인 명의 자산을 갖고 있다 등등으로 과세당국에 의해 '거주자'로 판정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세청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를 피해가는 방법도 딱 정해져 있다. "미국 거주자로 미국에서 세금 낸다" "한국에는 집도, 절도 없다" "동생 집에 혹은 누나 집에 얹혀서 살고 있다" "당연히 그 집은 내 명의도 아니다"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다" "내 모든 재산은 미국에 있다" 등의 조건을 맞춰내고 주장하는 식이다.
실제로 국세법령정보시스템에는 비슷한 질의들이 많고 이에 대한 해석도 찾아 볼 수 있다. "국내 비상장법인 주식 투자하고 대표이사인데 동생 집에 거주한다. 비거주자 아니냐"라고 질의하고 과세당국이 "개별 사실판단을 해야 한다"라고 답변이 나와 있다.
공교롭게도 과거 여러 회장님들에 대해 "누구누구는 국내에 일부러 집을 두지 않았다" "돈이 넘쳐 나는데도 일부러 동생 집에 산다"라는 시답잖은(?) 개인정보들이 루머로 많이 나돌았다. 이 루머들을 따져보면 모두 세금을 아끼기 위한 조건과 거의 정확히 합치된다.
미국인이면 미국인답게, 미국에서?
과거 국세청이 김병주 회장에 대해 거주자 요건과 국내 과세 당위성을 따져 물을 때 "미국 과세당국에 납세를 했고 조세조약상 이중과세 방지 협약에 따라 한국에 세금을 낼 명목이 없다" 가 반박논리로 제시됐다. 그럼에도 불구, 김병주 회장에 대한 과세도 다시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최근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세청 조사4국이 MBK파트너스 조사를 단행했는데, 사모펀드 업계는 물론 고소득을 버는 고위층의 도덕성을 따지는 사회문제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관련기사 : 국세청의 MBK 세무조사, 칼날 끝은 결국 김병주 회장? )
사실 MBK파트너스나 김병주 회장이 내야 할 정의로운, 혹은 합당한 세금이 얼마인지는 과세당국이 판단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 한 번 따져보자.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서 세금을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인물이 한국에서 한국 기업을 사고 팔아 벌어 들인 단위가 수조원 규모다. 한때 다양한 기부를 하는 점이 주목 받기도 했지만 '한국 기부액'과 '미국 기부액'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클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미국 국적자로서 보호를 받고 세금도 미국에 낸다면서, 수조원을 한국의 홈플러스에 투자한 후, 회사를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믿고 거래했던 증권사와 투자자들의 피해는 두말할 것도 없는데다....국민연금 자금 2조원 가량을 투자 받아 놓고 자칫 전액 손실까지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 나라에 세금을 따박따박 내고 있는 '우리 월급쟁이들'의 노후자금 몇조원이 자칫 그들의 실수로 날아가게 생겼다. 그러잖아도 국민연금 기금고갈을 한 푼이라도 막아보겠다고 정치권과 온 나라가 머리를 싸매는 시기에.
사실 한ㆍ미 양국 국력 차이를 감안하면 미국 국적자가, 미국인으로서, 미국법과 미국 조약에 의거해 보호를 받는 점은 뭐라하기 어렵다. 그게 억울하고 부러우면 미국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또 시장의 논리를 좀 아는 이들 사이에선 사모펀드에서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건 '촌스럽다'는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상황이 이 정도까지 오면 '국적'을 따져 묻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왜 미국인이라면서 돈은 여기서 벌고 세금도 안 냈으면 됐지 사고까지 여기서 쳐서 우리 국민을 힘들게 만드느냐" 라는 얘기다.
이런 억하심정이 거슬린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한국 국적의 '김갑돌' 회장이 미국 어느 주립연기금 돈을 2조원을 투자 받아 미국 기업에 투자한 후, 그 기업을 미국 연방파산법 (Chapter 11) 적용을 받을 정도로 만들었다. 당연히 주립 연기금 2조원에 대대적인 손실이 예상되고, 미국 국민의 노후자금에 문제가 생길 상황이다.
과연 미국 주 정부와 연방 정부와 언론과 지역사회가 그를 두고 "너는 미국인이 아닌, 한국 국적이니 용서하겠다"라고 할까. 게다가 '사기적 부정거래' 의심까지 받고 있다. 우리가 아는, 자국민 보호가 철저한 천조국은 김갑돌 회장을 그냥 내버려 뒀을까?
이 와중에 김병주 회장은 피눈물 흘리는 홈플러스 전단채 피해자들이 본인을 협박했다며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이 때는 또 편리하게(!) 한국 사법 시스템의 보호를 찾는다. 어쩌면 MBK와 김 회장은 자신들이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자각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의 행보를 국적과 무관한 투자 활동으로 바라 봐야 할까. 미국 국적에, 미국과 캐나다 연기금의 돈을 불려주고, 개인 세금도 미국에 낸다는데...이왕 이럴거면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서, 미국에서 살고 활동하면 될 일 아닌가.
굳이 국적을 바꿔가며 이제 조국도 아닌 이 나라에 들어 오겠다고 183일 숫자를 세며 여권 도장을 찍는 이들의 '한국 입국'을 고깝지 않게 봐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Invest Column
해외 사모펀드 세금은 '조세조약'에 발목 잡혀
과세당국 노력으로 합리적인 조정책 찾아가는 중
개인 소득세는 별도…'미국 국적' 주장하며 안내는 경우 많아
돈은 한국에서 벌고, 세금은 미국서 내면서 국민 노후자금 말아먹는 격
해외 사모펀드 세금은 '조세조약'에 발목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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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소득세는 별도…'미국 국적' 주장하며 안내는 경우 많아
돈은 한국에서 벌고, 세금은 미국서 내면서 국민 노후자금 말아먹는 격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4월 1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