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대선에 대기업 '대관' 설왕설래 오가지만…정작 내부선 '미국'에 집중
입력 25.04.24 07:00
친여·친야 낙인찍기, 정작 재계 기조는 '조용한 대응'
포스코·CJ 대관 정비…삼성·LG·롯데 등은 체제 유지
한화·HD현대 등 방산사는 보좌진 출신 물색하기도
"조기대선보다 미국이 더 급하다"…북미 대관에 '몰두'
  • 조기대선을 둘러싼 정국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계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특히 대기업 대관 라인을 두고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여의도와 재계 안팎을 오가며 잡음을 낳는 분위기다. 누가 친야(親野)고, 누가 친여(親與)냐는 식의 낙인찍기부터, "전임 정부에서 미운털 박힌 인사가 다시 돌아왔다"는 식의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실제 대기업들의 대응 기조는 외부의 소문과는 온도차가 크다. 대부분 그룹들은 대관 조직을 조용히 정비하거나 현 체제를 유지하며, 오히려 여의도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지금 움직이는 게 더 눈에 띈다"는 게 재계 내부 판단이다.

    최근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던 곳은 포스코그룹이다. 포스코홀딩스는 대관업무를 총괄할 인물로 양원준 부사장을 재투입했다. 양 부사장은 전남 순천 출신으로, 과거 최정우 전 회장 시절 대관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후 계열사 사장을 역임하며 한동안 현업을 떠나 있었지만, 다시 본사 요직으로 복귀하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다만 실제로는 기존 대관 담당자였던 김경한 전 부사장이 북미 대관을 전담하게 되며 생긴 공백을 메우는 성격이라는 게 중론이다.

    CJ그룹도 대관 라인 정비로 눈길을 끌었다. 최근 대관총괄 역할을 맡게 된 허신열 전략지원실장은 유승민 전 의원실에서 잠시 보좌진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어 '친여'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지만, 실상은 CJ대한통운 출신의 내부 승진자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CJ지주-올리브영 합병 가능성 등 그룹을 둘러싼 주요 이슈들이 겹치며 대관 역량 보강 필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카카오 대관 출신 인사를 상무급으로 영입하는 등 조직 확대도 단행됐다. 전임자는 지난해 오너 리스크가 불거졌을 당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와 CJ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기업은 아직 조기대선 이슈에 따른 가시적 인사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은 기존 대관 체제를 그대로 유지 중이다. 엄재훈 상생협력센터장(부사장)이 전자 부문 대관을, 최승훈 부사장이 금융 부문 대관을 맡고 있으며, LG도 국내 대관 조직에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롯데그룹은 이미 몇 년 전 대관 조직을 재정비한 바 있다. 박왕근 전무가 대관 총괄 역할을 맡고 있으며,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임성복 실장은 최근 부사장으로 승진해 대관 기능도 함께 책임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등 방산 관련 기업들의 경우, 국방위 및 산자위 등 국회 관련 라인과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해 보좌진 출신 인사들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역시 조기대선 대응이라기보다는 '정책 커뮤니케이션 강화'라는 전략 차원의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 전반의 기류는 "아직은 아니다"라는 쪽에 가깝다. 여야 대선 후보 윤곽이 아직 뚜렷하지 않고, 조기대선 시점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섣부른 대관 인사는 오히려 향후 정권과의 관계 설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금은 움직이기엔 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시점"이라며 "대선 결과가 나온 뒤 움직여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북미 대관 조직은 발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대기업들은 '트럼프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그룹은 글로벌대외협력실(GPA)을 이끄는 김원경 사장이 북미 대관 전략을 진두지휘 중이다. 김 사장은 외교부 출신으로, 이재용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다.

    현대차그룹은 드류 퍼거슨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HMG워싱턴사무소 신임 소장에 선임했다. 퍼거슨 신임 소장은 공화당 소속으로 조지아주에서 4선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인물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제조업 부흥, 일자리 창출, 세제 개혁 등 핵심 정책을 지지하며 입법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SK그룹은 미국 내 사업 법인인 'SK아메리카스'를 공식 출범시키고, 북미 대관 총괄로 SK온 유정준 부사장을 투입했다. LG그룹도 워싱턴 사무소 조직을 정비 중이다. 최근에는 제현정 전 한국무역협회 워싱턴 지부장을 임원급으로 영입해 네트워크를 보강하고 있다. 황상연 워싱턴 사무소장 역시 트럼프 정부 내 인맥이 탄탄한 인물로, LG 북미 대관의 쌍두마차 역할을 맡고 있다.

    그외에도 주요 그룹들이 미국 현지 법인을 중심으로 북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며 대비에 나서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관 조직은 정권보다 반 발 앞서야 하지만, 너무 앞서면 되레 찍힌다"며 "지금은 시끄러운 사람보다 조용히 일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