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평 "반도체, 美관세 리스크 지속가능성 커…자동차 실적 저하 불가피"
입력 25.04.24 17:04
반도체·자동차 관세 리스크에도 신용도 영향은 제한적
철강, 미국 투자 부담 확대 가능성 높아져
2차전지, 관세보다 전기차 수요 위축이 더 큰 문제
  •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제조기반을 유치하기 위해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 리스크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자동차 산업은 관세로 인해 전반적인 실적 저하를 피할 수 없으며 2차전지는 관세보다 AMPC 보조금 축소 여부가 실적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이다. 

    24일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무디스(Moody's)와 개최한 '현실화된 트럼프發 관세정책, 글로벌 경제 및 국내외 주요 산업별 영향' 세미나에서 미국의 관세가 국내 반도체, 철강, 자동차, 2차전지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한신평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첨단 제조기반을 유치하고 중국의 첨단기술 자립화를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AI 인프라 구축에 첨단 반도체 확보가 필수적인데 미국 내 제조기반이 취약하다보니 지속적으로 관세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원종현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미국의 IT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국내 메모리 업체의 실질적인 관세 영향 노출도는 큰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수익성 저하 가능성에도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부분의 메모리반도체가 미국 밖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업체 간의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 변화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세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는 마이크론이 미국 내 수요를 우선적으로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미국의 대중국 견제의 반작용으로 중국 메모리업체의 성장이 빨라지고 있다는 점은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다. 원 실장은 "향후 국내 메모리 업체들은 중국시장의 범용 제품 영역에서 중국 업체들과 가격 경쟁보다 기술 경쟁력 격차와 고부가 제품 리더십 유지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철강산업은 그동안 적용받던 쿼터제가 사라지고 모두 관세를 부과받게 되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쟁 여건이 저하됐다는 평이다. 관세 발표 후 급등한 미국 열연 가격이 관세 부담을 일부 상쇄할 수도 있지만 높은 철강 시세가 장기간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철강산업은 미국 수출 물량과 비중이 높은 강관부문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며 자동차나 가전 등 전방업체로부터의 간접적인 영향도 간과하기 어렵다. 안희준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전방업체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적극 검토함에 따라 철강사들의 미국 투자 부담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대한 관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양사 모두 현대차·기아 등이 직면한 통상 위험이 간접적으로 전이될 수 있는 점은 리스크로 지목됐다. 포스코는 현대차그룹과의 업무 협약을 체결했고 현대제철은 미국 전기로 제철소 투자를 결정한 만큼 재무적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는 평이다. 

    자동차 산업은 업체별로 일부 차이가 있긴 하지만 관세 부과로 인해 업권 전반의 실적이 저하될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만으로는 업체별로 30~50% 가량 공급이 부족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야하기 때문에 생산 원가 상승에 따라 미국 내 완성차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171만대 중 116만대 가량이 관세 부과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2분기부터 25%의 관세 부과가 지속되고 리스크의 대부분을 현대차·기아가 흡수할 경우 올해 양사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1.8%p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다수의 OEM 업체들이 관세 부과에도 가격 유지 또는 인하를 공표한 것과 관련해서는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며, 올해 하반기부터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 소비자에게 관세 부담이 일부 전가될 것으로 전망했다. 

    성호재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단기적으로 관세가 완성차 업체의 신용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아직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외부환경 변화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품사는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배터리 시장의 공급과잉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내 생산량으로 현재 수요를 대응할 수 있는 배터리셀사들은 관세 영향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배터리 소재업체들은 국내 생산설비 의존도가 높아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성호재 실장은 관세보다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인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한 미국 전기차 시장의 수요 위축 가능성을 더 큰 위협으로 진단했다. AMPC 전면 폐지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지만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신용도 하향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