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결실은 '밑 빠진 독' SK이노베이션으로…SK㈜ 투자자들은 동의할까
입력 25.04.25 07:00
취재노트
출범 6개월만에 또 빨간불 켜진 亞太 최대 종합에너지
SK㈜ 지원만 수차례…추가수혈 대의 있어도 명분 있을까
투자전문사 성과가 계열사 재무 방어금으로 소진된다면
리턴 가능성 증명 없이 주주 설득 어려워…"재검토 필요"
  •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시키며 리밸런싱(사업 조정)의 포문을 열었다. 배터리 밸류체인을 짊어진 중간지주회사 SK이노베이션에 지주사 SK㈜의 캐시카우를 붙여 안전판을 보강하는 작업이었다. 그룹 수뇌부와 재무적투자자(FI) 이해관계를 위해 주주 몫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은 배터리를 죽일 순 없는 노릇이라는 대의가 더 컸다. 

    그렇게 자산규모 105조원의 '아태(亞太) 최대 민간 종합에너지 기업'이 출범했는데 첫해부터 경고음이 울린다. 이번에는 안전판일 줄 알고 내걸었던 종합에너지 간판이 통째로 미국과 중국 싸움 한복판에 떨어졌다. 지난 한 달 새 증권가는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순이익 전망치를 7500억원이나 내려버렸다. 하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빠질 수 있다고 하니 연 4000억원 규모 순익이 3500억원 순손실로 급전직하한 것이다. 

    염치 불고하고 모회사 SK㈜에 또 한 번 손 벌려야 할 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덕에 형편도 나아졌고, 기왕 살리기로 작정한 마당에 SK㈜가 또 지원하지 못할 것도 없다. SK스페셜티 매각 대금으로 당장 손에 쥔 현금만 2조7000억원 가까이다. 내처 SK실트론까지 매각에 성공한다면 올해 안에 또 조 단위 뭉칫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룹의 장기 비전 속 에너지 몫이 반도체 못지않게 크고, SK이노베이션의 위기가 신성장 전략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추가 수혈에 여전히 대의는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명분이 없어 보인다. SK㈜ 투자자들에게 뭐라고 설명하고 설득할 것인지 근거가 희박하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작년에 합병비율 문제로 국민연금까지 반대하는 데도 캐시카우 SK E&S와 합병을 감행했는데, 반년 만에 또 지원 얘기가 나오면 염치가 없는 것"이라며 "SK㈜ 자산이 이런 식으로 매년 계속해서 SK이노베이션에 재배치되는 게 유효한 건지, 투자자 입장에서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인지부터 설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단 어느 정도의 자본확충이 필요한지부터 가늠이 어렵다. 합병한지 불과 6개월 만에 경고음이 울린 것도 있지만 지금 국제정세는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적당히 지원해선 재무여력을 보강하기 어려울 거란 걱정이 많다. SK이노베이션의 한 해 이자비용은 2조원을 향해가고 있는데, 작년 2조4000억원을 기록한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올해 얼마를 기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신용평가사들은 미국 정부의 첨단세액공제(AMPC) 유지 여부나 업황 회복 시점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나 업계에서는 미국의 내년도 보조금 예산을 둔 흉흉한 소문이 오르내린다. 

    그러니 지원한다고 해서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국내외 신평사들은 배터리 사업을 SK이노베이션 재무부담의 출발점으로 꼽고 있다. 배터리 부진만 아니었다면 국제유가가 이 정도 출렁거린다고 해서 상환 능력을 의심받는 일도 없었을 거란 지적들이 나온다. 뒤집어 보면 배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부담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렵다는 말로 들린다.

    투자전문회사 SK㈜의 결실을 리턴이 불확실한 곳에 재투자하는 것이 맞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SK스페셜티나 SK실트론은 그룹 반도체 밸류체인 내에서의 시너지도 상당하지만 투자전문회사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대표작으로도 통한다. 각 포트폴리오에서 여느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못지않은 차익을 남겼는데, 이를 SK이노베이션 지원에 쓰면 결국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지 않겠냐는 것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전문회사로서 조 단위 차익을 실현해놓고, 이걸 계열사 재무 방어에 소진해버리면 SK㈜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지 않겠나. 정체성 충돌 문제이기도 하다"라며 "단순히 주주들 눈치 보는 걸 떠나서 그룹 배터리 사업을 살려낼 수 있는지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