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처럼 회사채 선(先)판매 시도
회사채 수요예측제도 도입 취지 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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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월21일 11:29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국내 최고 신용등급을 보유한, 회사채 시장의 대표 발행사인 KT가 회사채 발행을 위한 대표주관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증권사들로부터 확보 가능한 투자자금을 약속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회사채 수요예측 시행 전의 투자확약은 공정한 발행금리를 형성하기 위해 도입한 수요예측 제도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KT는 내달 초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이달 대표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서(RFP)를 주요 증권사에 발송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KT가 입찰제안서에 “각 투자기관으로부터 확보 가능한 금액을 기재하라”는 문구였다. KT는 “약속한 금액을 못 채우면 인수단에서 배제하겠다”는 내용도 함께 포함했다.
이에 대해 KT는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런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사전 세일즈(sales) 목적이 아니라 사전 조사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KT가 언급한 '사전 조사'는 회사채 발행에 앞서 통상적으로 이뤄진다. 발행기업들은 대표주관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증권사를 두고 어떤 증권사가 최적의 발행을 이끌어낼지 저울질한다. 이때 각 증권사가 어떤 기관투자가들과 밀접하게 일해왔는지를 파악하면 특정 증권사가 확보할 수 있는 투자수요도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식으로 KT는 증권사들의 면면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입찰제안서에 구체적인 확보 가능한 투자금액을 기재하라고 한 경우는 '사전 조사'로만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기업들이 증권사들과 어느 정도의 투자수요를 모을 수 있는지에 대해 구두로 논의하곤 한다”며 “제안서에 확보 가능 금액을 기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국내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보유했고, 해마다 대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KT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내부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든지, 갑(甲)으로서 회사채 시장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 행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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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금융투자협회가 마련한 무보증사채 수요예측 모범규준에 어긋나는지 검토중이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도 전에 회사채 투자 모집을 유도할 수 없도록 한 자본시장법 조항과도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증권신고서 제출 전에 일본계 투자기관으로부터 낮은 발행금리를 약속받는 행태로 수요예측 제도 취지를 흐린 것과 유사하다.
금투협의 무보증사채 수요예측 모범규준 제8조는 “특정 투자자와의 이면 합의 등을 통해 사전에 약정된 금리로 해당 투자자를 수요예측에 참여하게 하거나 청약하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번처럼 사전에 투자수요를 확약하게 되면 자연스레 발행금리가 낮아지면서 수요예측 전에 발행금리가 결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KT 회사채에 투자하려 했던 기관투자가들은 투자기회가 더 적어지는 셈이다.
증권업계에서는 KT가 증권사들의 역할을 무리하게 늘리기 위한 의도였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KT는 등급이 높아 잘 팔리는 회사채여서 증권사들이 앉아서 일하는 행태를 보지 않기 위해 발행절차를 강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