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노믹스' 제대로 빗겨간 현대차그룹
입력 2014.09.23 09:18|수정 2014.09.23 09:18
    10조 들여 한전 부지 '부동산' 매입
    "투자촉진·배당 및 임금 상승 유도한 정부 의도 어긋나"
    • [09월18일 18:06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현대자동차그룹이 10조원을 들여 한전 부지를 매입함으로써 2017년까지 14조7000억원의 빚을 줄이겠다는 한전의 부채감축계획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풀어 경기 부양을 꾀하겠다는, '초이노믹스'로 대변되는 정부 경제팀의 기대감을 제대로 빗겨나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한전 부지 매입을 통해 국가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18일 "그룹의 제2 도약을 상징하는,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건립하겠다"며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100년 앞을 내다 본 글로벌 컨트롤타워로서, 그룹 미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자동차 산업 관련 외국인과 관광객을 적극 유치해 경제 효과를 창출함으로써 국가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 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몇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추진하는 '사내유보금 과세방안'의 취지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사내유보금 과세방안은 이른바 '최경환노믹스', '초이노믹스'로 대변되는 정부의 경기부양책 중 하나이다.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유도하고 배당이나 임금을 인상하도록 해 궁극적으로 가계소득 증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사내유보금은 114조원가량이다. 이중 10분의 1에 달하는 자금을 부동산 매입에만 사용한다. 여기에 기부체납 및 세금 등 추가비용을 감안하면 부담은 더 늘어난다. 여기에 개발비용까지 더해지면 현대차그룹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2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부지 개발 및 공사는 계열 건설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맡는 것이 유력하다. 다만 부지 개발 및 건축과 관련된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가 한전 부지 상한용적률을 800% 이하로 못박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상황이어서 건설사들이 챙길 수 있는 수익이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현대차의 10조원 투자 계획은 현대차그룹의 '발전'과 '도약'에 방점이 찍혀있다. 재계를 대표하는 현대차그룹이 '선례'를 남겨주길 바라는 정부의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대기업들이 회사 내에 쌓아둔 현금을 풀어 직원들 연봉도 올려주고, 또 고용도 창출해 경기를 부양하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며 "정부 입장에서 봤을 땐 현대차가 세금을 내기 싫어 그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배당을 이끌어내겠다는 최경환 부총리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데 이번 현대차의 한전 부지 매입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고, 그 결과가 주가 하락으로 나타났다"며 "정부 입장에선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은 반갑지만, 경제팀의 의도와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지 고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다른 평가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10조원이나 들여 한전 부지를 매입한 것은 정부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정몽구 회장은 이번 한전 부지 매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올해 초 현대차가 한전 부지 입찰 방침을 밝힐 때, 정 회장은 "다른 경쟁사를 의식하지 말고 반드시 한전 부지를 따내라"고 지시했다.

      현대차그룹은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뚝섬에 GBC 건립을 추진했지만 서울시 규제에 막혀 무산됐다. 이번 삼성동 GBC 건립에 그룹의 명운을 걸었고 10조원이 넘는 입찰가 결정에도 정 회장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국내에서 시설투자 확장을 사실상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력 생산기지는 미국 등 해외로 옮겨지는 추세고 해외 생산량은 이미 국내 생산량을 넘어선지 오래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면서도 국내 투자에는 소홀하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립 이후 현대차그룹이 국내 투자를 더 늘리기는 어려워 정부의 바람대로 국내 시설투자를 늘려 고용 증대를 꾀할 수 없다"며 "한전 부지 입찰가를 높여 국가 부채 규모를 줄여주고, 취득세 등 많은 세금을 냄으로써 정부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려고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실제로 "인수 대금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공기업인 한전에 넘어가는 것인 만큼 국가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