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깎고, 주말 출근 기본…시장 흐리는 '슈퍼갑'의 횡포
입력 2014.10.16 08:30|수정 2014.10.16 08:30
    삼성SDS IPO 최초 패널티 수수료 적용
    주관사 수수료 인하, 낮은 발행 금리에 곤혹
    실무진 눈칫밥·내부 보고서 작성도
    乙이 된 증권사는 '울며 겨자 먹기'
    • [10월14일 15:09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아무 일 없이 네 달 동안 고객사로 출근해서 족구만 했어요. 회사 내부 보고서를 써주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두 번씩 출석체크를 합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 이른바 슈퍼 갑(甲)이라 불리는 기업들과 함께 일하는 증권사 임직원의 얘기다. 일부 대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이 같은 갑질은 만연해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국내외 증권사를 막론하고 주 고객인 기업이 증권사를 마치 용역처럼 부리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이상 자본시장에서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 관계는 형성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외치고 있지만, 발행사이자 주요 고객인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가증권시장에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 삼성SDS는 연내 상장을 목표로 본격적인 공모절차에 돌입했다. 공모규모만 1조원에 달하는 올 한해 최대어로 손꼽히는 만큼 이를 담당한 주관사단에도 가장 큰 먹거리로 손꼽힌다.

      특이하게도 이번 거래에서는 일반적인 수수료지급 구조와는 다르게 '패널티' 방식이 적용됐다. 삼성SDS는 인수단의 ▲업무성실도 ▲기여도 등을 고려해 수수료를 0.2% 내에서 '차감'하기로 했다. 국내 IPO시장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구조다. 국내 IPO 시장에선 공모를 성공적으로 잘 마치면 추가 수수료를 얹어주는 '인센티브'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한다. 심지어는 주관사단이 삼성에 밉보인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수수료율 책정은 국내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구조"라며 " 증권사를 파트너 관계라고 여겼다면 불가능했을 구조"라고 말했다.

      이 같은 대기업의 행태는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7월 롯데케미칼은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며 일본계 자금을 스스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유로 주관사단에9bp(1bp=0.01%포인트) 라는 업체 최저 수수료를 제시해 업계의 공분을 산 바 있다. 롯데그룹은 10대 그룹 중에서도 가장 낮은 평균수수료를 제공하고 있다.

      KT의 경우 지난 9월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에 앞서 일부 증권사에 입찰제안서에 모을 수 있는 금액을 명시하도록 했다. 차후 명시한 금액만큼 자금을 모으지 못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일부 대기업 계열사가 모회사의 후광효과로 지나치게 낮은 금리로 자금조달에 나서려 한다는 점도 증권업계에는 부담이다.

      지난 5월 회사채 발행에 나선 포스코건설은 공모희망금리 상단을 개별민평(민간채권평가사 집계 금리 평균) 대비 5bp만 높였다. 결과적으로 수요예측에서 400억원 가량의 미매각이 발생했지만,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의 일부는 차후 포스코 계열사 회사채 발행에서 배제될 것으로 우려해 참여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기업의 갑질은 비단 수수료와 금리의 문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삼성과 같은 대형 고객사와 함께 일하는 증권사 임직원들에게는 주말조차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말에도 수 차례씩 출석체크를 하고, 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어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다.

      발행사는 혹시 모를 정보 유출을 차단한다는 목적이지만 지나친 통제로 이를 담당하는 실무진만 피해를 보는 셈이다.

      이 같은 행태가 공기업과 공기업 성격이 강한 금융지주사에는 더 심하다는 말도 나온다. 매일 아침 보고는 물론이고 내부 보고자료를 증권사에 만들게 시키는 등 허드렛일까지 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공사는 보고서의 오타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산은금융지주는 결국 무산된 IPO의 주관사단이 사용했던 책상 값을 주관사단에 직접 청구해 업계의 원성을 들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금융지주사와 공기업의 경우 기본적인 발행규모가 큰 데다 트랙 레코드를 쌓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자금 조달 대표주관을 맡았던 한 증권사 임직원은 "증권사 실무진에 매일 아침 전반적인 시장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게 시켜 다른 업무는 손댈 엄두를 못 냈다"며 "인력 통제도 깐깐해 발행이 완료될 때까지 약 네 달간 실무 인력들이 매일 출근해 상주했는데 나중엔 딱히 할 일이 없어 족구 등으로 소일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