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지분값 250억에 우발채무 대비 500억 예치 조건 제시
한앤컴퍼니 1000억 출자 하되 채권단에 2000억 추가 출자전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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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08:3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대한전선 채권단 지분 가격으로 제시한 금액이 250억원에 불과했다. 채권단은 당황스러운 기색과 함께 매각주관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성토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투자업계 한켠에선 "이런 결과 밖에 나올 수 없는 매각구조"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전선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매각주관사는 지난 12일 본입찰에 홀로 참여한 한앤컴퍼니와 계약 조건 변경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결론은 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자 측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한앤컴퍼니가 내놓은 조건 때문. 한앤컴퍼니는 채권단 지분 72.7%(전환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 시) 인수 가격으로 25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발채무에 대비해 에스크로계좌(용도제한계좌)에 예치하기로 한 금액은 500억원이다. 이 돈은 우발채무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한앤컴퍼니가 다시 가져가게 된다.
한앤컴퍼니는 아울러 대한전선에 1000억원을 출자하기로 하는 한편, 채권단에도 2000억원가량을 추가로 출자전환해 부채를 줄여 줄 것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지난해 7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했고, 대한전선은 현재 채권단에 7000억원대의 부채를 지고 있다. 한앤컴퍼니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하면 채권단은 250억원과 2000억원 출자전환 지분을 가지게 되지만 채권 규모는 5000억원대로 줄어든다. 그나마 주관사에 수십억원에 달하는 성공보수를 지급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더 적어진다.
채권단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는 반응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한앤컴퍼니의 의사는 결국 일부 부채를 떠안아 줄 테니 채권단은 추가 출자전환 후 주식 가치 올려서 채권을 회수하라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회사가 어렵다지만 그래도 국내 전선업계 2위 업체인데 너무 헐값에 가져가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 대한전선 매각은 처음부터 성사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많았다. 인수자가 채권단의 기대치를 충족할 지분 가격을 내놓기도, 그렇다고 막대한 부채를 그대로 떠안기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각을 추진하려다보니 주관사의 역할을 기대했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자 주관사에 역정을 내는 모양새다. 해외 인수후보 초청도 가능하다고 JP모간을 꼬집어 언급하기도 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회사와 함께 우발부채 규모를 크게 줄이고 사업구조 및 수익성을 개선한 것은 인정할만 하지만 매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며 “JP모간 임석정 대표나 박태진 지점장 등이 호언장담을 해본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매각주관사인 하나대투증권-JP모간 컨소시엄은 올해 초 선정 당시부터 잡음이 일었다. 채권단 계열 증권사 중에선 하나대투증권과 우리투자증권만 주관사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받으며 사실상 내정된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하나대투증권과 짝을 이룬 JP모간은 디렉터급 인사들이 각 채권단 고위층을 방문해 주관사 선정에 동의해줄 것을 읍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결과 채권단 의결권 중 60.7%의 동의를 얻어냈다.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지난 9월 예비입찰에는 5곳의 업체만 참여했다. 매각자 측은 일찌감치 이름이 드러난 한앤컴퍼니와 글랜우드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이 ‘히든카드’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본입찰 결과 모두 허수였음이 드러났다.
채권단 관계자는 “주관사 선정 당시 국내 및 해외 투자자 확보에 자신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결국 말 뿐이었다”며 “한앤컴퍼니가 조건을 변경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수수료가 아쉬워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