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투자지원 필수적…삼성전자 직접적 지원 여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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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1일 12: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삼성그룹이 최근 석유화학·방산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등 비주력사업 정리에 나서면서 의료기기 사업 향방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의료기기 사업은 삼성이 신수종 사업으로 추진해왔지만 지금까지 성과가 미미하고 글로벌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시장에선 삼성그룹 내 의료기기 사업에 대해 합병·분사설(設)에 이어 사업철수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의료기기 사업은 지난 2010년 삼성그룹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선정돼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져왔다. 삼성전자는 2010년 초음파 검사기기 업체인 '메디슨(이후 삼성메디슨으로 사명 변경)' 인수를 시작으로 2011년 '넥서스', 2012년 '뉴로로지카' 등 의료기기 업체를 인수했다.
또한 삼성전자가 2009년 의료기기 사업 진출을 위해 자체적으로 신설한 'HME(Health & Medical Equipment) 사업팀'은 2011년 '의료기기사업팀'으로 재편됐고, 2012년 '의료기기사업부'로 격상됐다.
지난 9월 삼성전자는 "중장기적 의료기기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삼성메디슨과 합병 등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히는 등 의료기기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의지를 보였다. 삼성전자와의 합병으로 인한 기대감으로 지난 9월 기준 6000원대였던 삼성메디슨 장외 주가는 11월말 2만원대에 육박할 정도로 급등했다.
하지만 12월에 들어 기존 계획과는 반대로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가 분사돼 삼성메디슨으로 흡수 합병될 것이란 소문이 돌며 주가는 다시 1만원대로 급락했다. 삼성전자가 의료기기사업부를 삼성메디슨으로 넘기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의료기기사업에서 철수할 것이란 분석도 이어졌다.이러한 각종 설에 대해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삼성전자·삼성메디슨 합병 추진 조회공시요구 답변에서 밝혔듯이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며 "추가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있으면 공시를 통해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뤄진 삼성전자 조직개편에서도 의료기기사업부는 기존 체제가 유지됐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삼성메디슨을 합병을 발표하지 않고 장고(長考)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삼성이 의료기기 사업에 대해 기존과 다른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준엽 하이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의료기기 사업은 대규모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사업으로 삼성전자 아래에 있으면서 직접적인 R&D 투자 지원을 받을 때 성장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전자가 삼성메디슨을 합병하지 않고 오히려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를 삼성메디슨에 넘긴다면 이는 삼성그룹이 의료기기 사업에서 엑시트(exit)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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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메디슨이 벌어들이는 이익 수준에서 자체 투자를 하기엔 회사 규모가 너무 작다는 설명이다. 삼성메디슨 영업이익은 2012년 308억원에서, 2013년 8억원으로 줄어들었고, 올해는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 25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의료기기 시장은 단기간 내 성공을 거두기 힘든 시장이다. 이미 전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소수의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노경철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의 90%는 로슈·GE 등 글로벌 업체들이 꽉 잡고 있는 상황으로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 병원에서도 대부분 글로벌 업체 의료기기를 사용한다"며 "지금 삼성은 의료기기 사업을 철회하는 단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양준엽 하이투자증권 선임연구원도 "의료기기 고객인 의사들이 수련의 시절부터 사용해온 글로벌 의료기기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몇 십년간 기술 노하우와 고객기반을 갖추고 있는 외국 업체들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기 사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보다 오랜 기간의 투자와 영업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이 의료기기 사업을 축소하되 철수까지 하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류승협 한국신용평가 기업·그룹평가본부 실장은 "의료기기 사업은 향후 삼성그룹의 먹거리로 괜찮은 사업이다"며 "삼성그룹이 자금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닌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의료기기 사업을 축소할 수는 있어도 사업 자체를 접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