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무리수
입력 2015.02.27 09:40|수정 2015.07.22 14:30
    [금호산업·고속매각⑧]
    금호산업 인수전 참여 "재벌들 암묵적 배려 어겼다" 리스크 짊어져
    M&A 경험 부족도 한 배경 해석…경쟁사 롯데 자극 가능성 높아져
    박삼구 우선매수권 존재로 인수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
    • [02월26일 16:3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이번 금호산업 매각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사진)이 떠올랐다. 그가 출사표를 던지며 거래 자체의 판이 커지는 형국이다.

    • 이 결정이 정 부회장과 신세계그룹에 득(得)이 될지 실(失)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전략적 판단 실패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수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업을 되찾아야 하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감정만 상할 수 있고, 신세계그룹에 트라우마를 안긴 롯데그룹을 자극할 수 있는 선택이란 것이다.

      정 부회장은 LOI 제출 전날 공식 석상에서만 해도 "아직 보고받은 바 없다"며 금호산업 매각에서 한발짝 물러나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25일 오전까지만 해도 신세계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오후가 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 대기업이 LOI 접수 의향을 타진하며 시간이 촉박하니 마감일을 미뤄줄 수 있느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 마감시간인 오후 2시 직전 신세계가 LOI를 제출하며 지금의 판이 짜여졌다.

      신세계 관계자는 "광주신세계의 경영 안정 목적이라고 해석하는 건 일리있지만, 박삼구 회장의 백기사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가업을 되찾아오려는 박삼구 회장과 일단 대척점에 섰음을 뜻한다.

      인수의향서(LOI) 제출 이튿날 금호산업과 신세계 주가 모두 강세를 보이며 정 부회장의 결정을 환영했다. 채권단의 표정도 한 층 밝아졌다. 주가도 올랐지만, 대형 인수 후보자 등장으로 경쟁입찰의 구색이 맞춰줬고 시장의 주목 강도도 한층 높아졌다.

      금호산업을 인수한다면 신세계그룹은 물론이고 정 부회장이 얻을 수 있는 게 분명 있다. 금호터미널을 중심으로 한 광주광역시 상권을 강화하며 정 부회장이 지분 52%를 보유한 광주신세계의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 본인이 진두지휘중인 면세점 사업에도 새로운 성장동력이 생긴다.

      그러나 인수 성사까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LOI만 제출했을 뿐이지만, 정 부회장은 LOI 제출로 상당한 위험를 짊어졌다는 게 시장의 전반적인 평가다. 재벌들의 암묵적인 배려를 깨어가며 인수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박삼구 회장은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을 맡은 이래 10년 이상 전경련 회장단에서 활동하며 재계에 폭 넓은 인맥을 쌓고 있다.

      금호산업 채권단 지분의 우선매수권은 박삼구 회장에게 있다. 신세계가 아무리 높은 가격을 불러도, 박 회장이 같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면 금호산업은 박 회장의 품에 안긴다. 정 부회장으로선 얻는 것도 없이 박 회장과 사이만 나빠질 수 있다.

      신세계가 금호산업의 유력한 인수자로 부상한다면, 롯데그룹을 자극할 수도 있다. 롯데그룹이 자금력이 부족한 박 회장에게 달려가 백기사 역할을 한다면 신세계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박 회장과 롯데 등이 동맹 구도를 형성한 가운데 여기서 배제된 신세계가 부랴부랴 LOI를 제출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신세계가 LOI 제출로 금호산업에 관심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박 회장과 관계를 만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가격 외 평가요소에서 전략적 투자자(SI)가 유리한 채권단 거래라는 점을 이용해 PEF들의 과열 입찰을 막는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세계가 본입찰 적격자가 되어 예비실사에 참여하면 박 회장과의 지분 공동인수 등은 어려워진다. 산업은행은 예비실사를 진행할 후보에게는 박 회장과의 컨소시엄 구성을 금지할 방침이다.

      신세계가 1조원 이상이 될 금호산업 인수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지도 의문이다. 재무 여력도 하강 추세라는 지적이다. 신세계과 이마트의 2013년 대비 지난해 영업이익은 각각 6.5%, 20.7% 하락했다. 소비 침체로 매출이 줄고 있는데다 면세점·온라인 등 기존 유통 부문에 투자를 집행한 까닭이다. 신세계 역시 초기엔 재무 여력을 이유로 금호산업 인수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신세계의 판단에 대해 "박삼구 회장과 사전 논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그간 M&A에 나섰다가 번번히 고배를 마신 신세계의 조급함이 이번 금호고속 인수전에서도 다시 나타난 것 같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