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내부 의견 합의 안 돼…"딜 구조 여부 상관없이 무리한 추진이 발목"
국제 신용평가사 등급압박 직면…재무구조 개선 의지 피력 '카드'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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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16일 11:07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SK이노베이션이 MBK파트너스와의 SK루브리컨츠 매각 협상을 중단했다. 여러 이유가 거론되는데 생각보다 사정이 간단치 않다.
공통된 언급은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의 독단강행이다. 정 사장이 임원진과 그룹 전반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리한 추진을 했다는 점이다. 취임 이후 켜켜이 쌓였던 임직원들의 반발이 이번 기회에 터져 나왔다는 평가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최태원 회장 장기 부재로 마련된 집단지도 시스템 수펙스(SUPEX)가 여전히 혼선을 보인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언급하는 SK의 '우왕좌왕'하는 의사결정 구도가 이번에도 또 발현됐다는 것이다.
◇ 내부의견 통합 안된 상황…"정철길 사장, 무리한 매각 추진"
SK루브리컨츠 매각은 협상 보도가 나온 지 단 3일만에 협상 중단이 공시됐다. 매각주체인 SK이노베이션은 공시에 밝힌 내용 외에는 따로 언급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협상 중단이 선언되자, 투자은행(IB) 시장에선 미리 세세한 지분인수 구조가 공개된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가격은 물론 SK의 재투자 비중, 우선매수권 포함여부 등 민감한 내역이 사전 공개됐다.
그 사이 매매계약(SPA)이 체결됐다면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다보니 매각 반대론자들이 "가격이 너무 낮다", "팔아야 할 사업이 맞느냐", "왜 사전논의 없이 진행했느냐"는 등의 이유로 반발하기 딱 좋은 상황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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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여기에 정철길 사장에 대해 쌓여있던 내부불만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정철길 사장은 알려진 대로 구조조정 전문가이자 최태원 회장 측근으로 분류된다. 취임 3개월에 접어들면서 사업구조개편 차원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아직 없었다. 성과를 욕심 낸다면 지금쯤 '한 방'을 보여줘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사내에서는 정 사장의 취임 후 태도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환골탈태'를 주문하며 출퇴근 시간 확대 등 임직원들의 태도변화를 요구했다. 또 SK C&C 재직 당시 성과에 대한 자부심도 자주 드러냈다. 내부에선 이에 반감이 있었고, 루브리컨츠 매각과 같은 대형사안을 결정하는데 있어 선뜻 그의 편을 들어주기 어려웠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비교 대상도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그룹 핵심인사로 부상한 박정호 SK C&C 사장과 비교가 되는데, 박정호 사장은 비슷한 시기에 취임해 SK㈜와 합병을 하는 성과를 일궈냈다"며 "정철길 사장이 초조함 때문에 성급하게 SK루브리컨츠를 매각으로 선회시켰다는 지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철길 사장이 루브리컨츠 매각을 '강행'하자 SK이노베이션 내부뿐만 아니라 그룹 집단지도체제가 반발하게 된 셈이다. 루브리컨츠 매각과 같은 사안은 오너인 최태원 회장 결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너의 '승인'이 떨어진 사안조차 내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번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SK루브리컨츠는 최근 실적에서 부침이 있긴 하지만 알짜 회사라는 그룹 내부 평가에는 공고했다. 상장 후 일정 지분을 투자자들 대상으로 매각하는 것에 대해선 꾸준히 논의가 됐고, 동종 외국계 기업들도 이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합의 없이 독단 추진한 만큼 반발은 불가피했다는 평가다.
그룹 내부 관계자는 "이번 매각 딜의 구조를 어떻게 짰는지, 그리고 외부에 어떻게 노출이 됐는지가 문제라기 보다는 SK이노베이션과 그룹 전반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매각을 진행하면서 내부 불만을 미리 소화하지 못한 것이 협상 중단의 가장 큰 이유"라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오너 부재, 최고경영자(CEO)의 단독 플레이, 집단지도체제의 혼선 3박자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 재무구조 개선 강력한 의지 보여 줄 카드 사라져
업황 부진에 따른 수익성 저하, 신규 투자에 따른 차입 부담 증가로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다. 회사의 신용도는 계속 떨어지고,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국제 신용평가사의 등급하향 압박도 거세졌다.
SK이노베이션이 시장의 예상과 달리 SK루브리컨츠의 기업공개(IPO) 대신 지분 매각 카드를 꺼낸 이유는 유입 대금 규모 때문이다. IPO로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은 약 1조5000억원인 반면 매각은 2조3000억원가량이 기대됐다.
시장의 평가도 엇갈렸다. '꾸준히 현금이 유입되는 회사를 팔아 무엇을 얻을 수 있냐'는 의견과 '알짜 회사를 팔아 대규모 현금을 수혈, 재무구조 개선을 꾀할 수 있다'로 나뉘었다.
이번에는 매각작업이 멈췄지만 정확히 따지면 '매각' 중단이 아닌, '매각 협상' 중단이다. 추후 다시 매각이 진행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룹 차원에서 제동을 걸었으니 당장 재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간 추진해 온 IPO 카드를 다시 꺼내 진행하면서 상황을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호평을 받을 기회는 놓치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7월경 한 국제 신용평가사와 미팅을 앞둔 상황으로 알려졌다. 당초 계획대로 매각을 진행했다면 국제 신평사에 강력한 재무구조 개선 의지를 피력할 수 있었지만 그 기회는 날아갔다는 평가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재무적투자자(FI)들의 구애가 늘어날 여지도 생겼지만, 이번 결렬로 그룹의 SK루브리컨츠 존속 의지가 강해진 것을 시사하는 상황에서는 IPO 외에 다른 방도는 좁혀졌다"며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카드를 소진한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