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믿었던 은행들, 여신심사 관행 바뀔까
입력 2015.06.18 07:00|수정 2015.06.18 07:00
    [Invest Chosun]
    '모기업 지원 가능성'에 부실 자회사 여신지원에 후했던 은행권,손실 되풀이
    웅진그룹 법정관리부터 포스코플랜텍 워크아웃까지 '여신심사 방식 제자리 걸음'
    • [06월14일 12: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최근 대기업의 자회사 부실이 늘어나면서 은행들의 그룹 계열사에 대한 여신심사 기준이 도마 위에 올랐다. '모기업의 지원'만을 믿고 부실 계열사에 대출해 준 은행들의 손실이 번복되면서 여신심사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모기업만 믿다가 '발등'…웅진그룹 법정관리부터 포스코플랜텍 워크아웃까지

      포스코하이알의 법정관리에 이어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까지 이어지면서 은행들의 대기업 계열사 여신평가 방식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지난 2012년 극동건설과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와 현재 은행들의 심사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당시 극동건설은 재무상황이 악화했지만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여신을 축소하기는커녕 외려 확대하거나 유지했다. 모기업인 웅진그룹의 지원가능성을 믿었 까닭이다. KT ENS사태도 KT지원 가능성에 대한 은행권의 막연한 믿음이 사태를 키웠다.

      포스코하이알과 포스코플랜텍도 은행이 믿었던 '모기업'에 발등 찍힌 대표적 사례다.

      작년 5월 신용등급 A-였던 포스코플랜텍이 올해 들어 C등급까지 추락하는 동안 은행들은 여신을 계속 늘렸다. 포스코의 지원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은행권의 익스포저는 그만큼 늘었다.

      포스코의 또 다른 자회사인 포스하이알이 지난 4월 말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며 당황했다.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포스하이알에 대한 차입금이 191억원(2013년 말) 수준이었으나 작년 말 500억원 수준까지 확대했다. 그만큼 손실도 늘었다.

      은행들이 최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들에 대해 신용한도를 줄이거나, 만기연장을 거부하는 것과 대조되는 행보다.

      ◇ 손실 되풀이 하는 은행들 "영업적 협력관계 유지하려면 '찍히지' 말아야"

      과거나 현재나 은행들이 부실해진 대기업 계열사의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다 손실을 키우는 여신행태를 번복하고 있는 데는 '영업적 협력' 관계 때문이다. 은행들은 대기업들의 예금을 유치하거나, 대출을 진행한다. 수익성 및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대기업들의 전략적 영업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은행으로선 대기업 부실 자회사에 대해 여신 지원을 소홀히 할 경우, 모기업과 은행 간 영업적 전략 관계가 자칫 틀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은행이 대기업의 눈치를 보는 셈이다. 반면 포스코와 달리 눈치 볼 모기업이 없는 기업에 대해서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는 적극적이다. 1년 새 AA-에서 A로 떨어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작년 신한은행을 필두로, 여타 은행들은 여신을 급격히 줄이며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포스코플랜텍과 대우조선해양을 대하는 은행들의 대출 태도 차이는 모기업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는 현재 산업은행이다. 시중은행들로서는 눈치 볼 모기업이 없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해당 자회사의 부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모기업으로부터 소위 '찍혀서' 영업적 손실을 입느니, 해당 자회사의 리스크를 감내하는 방향을 택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 은행 여신심사, 패러다임 변화에는 은행권 공감

      은행들은 대기업 자회사에 대한 심사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근 부실 기업지원을 활발히 한 산업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은 역대 최대치에 이르렀다. 작년 말 기준 위험가중자산은 217조원으로 전년(124조원)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금융위기 여파로 기업부실이 커졌던 2008년 말 (126조원)이래 가장 큰 위험가중자산 수치다. 2013년에 산업은행은 13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냈기도 했다.

      자본적정성 및 수익성 부담에 더해 대기업들의 지주사 체제전환 움직임도 은행권에 긴장감을 주고 있다.

      자회사에 대한 모기업의 지원의지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여신평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과거 순환출자 구조에서 중간 자회사가 부실해질 경우, 모기업의 지원 의지는 막강했다. 중간 자회사의 부실이 전체 그룹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기업의 지주사 체제도 전환하면, 은행들도 자회사를 바라보는 심사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