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주력' 삼성전자, 불안한 미래
성장동력이었던 스마트폰도 하향세
중국發 치킨게임, 반도체 사업 위험
'새로운 먹거리' 부재가 더 큰 문제점
지분율 50% 넘는 외국인 투자자에
믿을 만한 '이재용 비전' 보여줘야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올해 국내 경제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핫이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합병 반대를 두고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튀', 또는 '기업가치 제고를 꾀하려는 주주행동주의'라는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가업 승계를 앞두고 있는 한국 재계에 깊이 고민해봐야 할 과제를 던져줬다.
삼성그룹은 이 합병을 관철시키고자 각종 매체들을 동원했고, 소액주주들에게 호소 하는 광고전까지 불사했다. 합병이 무산되면 그룹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뒤이어 '삼성의 이익=국익'이란 논리를 유도하기까지 했다.
삼성의 바람대로 합병은 성사됐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여전히 삼성의 '착각'에 냉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합병의 성사가 그룹의 밝은 미래를 장담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이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요체는 결국 삼성전자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지금의 삼성전자가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넥스트(Next) 갤럭시'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영진에 대해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삼성은 곧 삼성전자…성장세는 보이지 않아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그룹 내 삼성전자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2014년말 기준 삼성전자 등 전자부문이 그룹(비금융 계열사)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 매출 비중은 73%에 달한다. 현금창출력을 의미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전자부문 비중이 91%로, 전자부문만 돈을 버는 셈이다. 전자부문 내에서도 삼성전자의 EBITDA 비중이 90%를 넘는다. 여기에 한화그룹과의 빅딜(Big Deal)을 통해 화학계열사를 매각한 것을 감안하면 삼성그룹의 전자 의존도는 더 심각해진 셈이다.
이런 삼성전자의 성장세가 최근 꺾였다는 게 문제다. 매출액의 증가 폭이 둔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성장동력이었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 판매가 한계에 다다르면서다. 삼성전자 IM(IT & Mobile) 사업부는 2013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매출액은 2012년 수준으로 회귀했고, 한때 분기별 영업이익만 6조원이 넘었지만 작년 하반기 1조원대로 급감한 이후 정체 상태다.
갤럭시S6를 앞세워 올 2분기 깜짝 반등을 기대했지만, 출하량은 시장 기대치인 2000만대에 못 미치는 1800만대 이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서둘러 다음달 갤럭시노트5와 갤럭시S6플러스를 공개한다는 계획이지만, 시장의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저가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이 감소했다"며 "애플의 건재함과 중국 스마트폰의 약진으로 출하량 증가가 쉽지 않아 모바일 부문의 이익 감소는 불가피하고, 오히려 얼마나 빨리 이익이 줄어들 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뒷받침 해주던 반도체…180조 투자하는 中 추격전 우려
IM사업부의 부진에도 삼성전자 실적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 덕분이었다.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2012년 3사 체제로 재편됐다.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 엘피다를 인수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체제가 굳어졌다. 그간 부침이 심했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실적도 이 무렵부터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특히 IM사업부 성장세가 꺾인 2013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사업부는 분기별 평균 2조원의 영업이익을 꾸준하게 달성했다. 2013년 68%였던 모바일 부문의 영업이익 기여도가 2014년 58%로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반도체 부문의 기여도는 19%에서 35%로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평택에 2017년까지 15조6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라인을 구축한다. 삼성전자는 D램뿐만 아니라 3D 낸드, 시스템 반도체 등에 대한 매출도 끌어올려 인텔을 뛰어넘는 종합반도체 회사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반도체 부문의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반도체는 시장 수요에 따라 실적 변동 가능성이 큰 사업이기 때문에 언제든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소 나아졌다지만 2007년 이후 반도체시장 환경은 좋지 않다"며 "기술집약적 사업이라 항상 위기상에 있고, 적기에 기술 개발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1위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더 큰 우려는 중국발(發) 치킨게임 재현이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향후 10년간 1조 위안(한화로 약 18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때맞춰 중국 칭화유니(淸華紫光)그룹이 3강의 하나인 미국 마이크론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 유일의 메모리 업체를 중국에 순순히 내줄 리가 없다는 반론이 있지만, 중국의 반도체 시장 점령 의지는 충분히 내비친 셈이다. 메모리 3강의 과점 체제로 한동안 안정적인 수익성이 창출됐지만, 중국의 사업 진출 의지로 현실화하면 사업 안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관련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정부가 나서 산업을 육성한 중국의 무서움을 숱한 기업들이 체험한 바 있다.
◆삼성의 '새로움' '다음 먹거리'는 무엇? 보이지 않는 미래
삼성전자 투자자들은 단기적 실적 저하나 중국발 리스크보다 더 큰 문제점을 지적한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새로움'이 없다는 점이다.
한 외국계 투자자는 "이건희 회장의 과거 발언처럼 10년후 삼성전자의 코어 비즈니스(Core Business)는 없어질 수 있는데 시장 선도를 위한 새 성장동력이 없다"며 "며 "현재는 반도체로 버틴다지만 스마트폰 성장 때와는 비교가 안돼 삼성전자는 사실상 올스톱(All Stop) 상태로 보인다"고 전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에도 미래의 화두를 계속 제시하고 있는 애플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아직 삼성전자는 창조적인 기업이기보다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마저도 중국에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외국계 투자자는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50%가 넘는 것은 과거 외국계 투자자들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신뢰를 보낸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식을 단순히 물려받는 것이 아닌,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최고경영자(CEO)의 확신을 받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제일 먼저 했어야 할 일은 CEO로서 투자자들에게 향후 비전을 제시하는 것인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제시했던 미래 먹거리는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리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 2010년 삼성그룹은 ▲자동차용전지 ▲의료기기 ▲LED ▲바이오제약 ▲태양전지를 5대 신수종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만 5년이 지난 현재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태양광사업은 사실상 접은 상태다. 의료기기를 위시한 나머지 사업도 한풀 꺾였다.
그나마 남은게 바이오 사업 정도다. 삼성전자가 제일모직과 함께 바이오사업을 추진 중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내세워 CMO(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를,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의 바이오사업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글로벌 제약업체들로부터 CMO 사업을 수주하려면 삼성의 바이오사업이 세계적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트랙레코드가 있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분명히 바이오산업이 미래 성장 먹거리인 것은 맞지만, 불확실성이 커 장기간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을 위험도 충분히 감내해야 한다"며 "삼성의 바이오사업이 태양광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전자를 제외한 여타 사업군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도 아직 완전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독립부문으로 분류되는 삼성SDS, 제일모직, 호텔신라, 에스원과 금융 계열사는 차치하고 합병이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그리고 삼성물산까지 그룹의 재무적 부담을 키우고 있는 중공업·건설 부문에 대해 어떤 용단을 내릴 지 관심이다. 앞서 비주력인 화학부문 매각으로 그룹 전반의 순차입금은 줄고, 삼성전자로 자금이 유입되는 효과를 봤다.
한국신용평가는 2015년 삼성그룹 분석 보고서에서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의 자원이 비금융 부문 내에서는 주력 사업인 전자 부문에 보다 집중되는 양상"이라며 "그룹 자원 배부과정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약해진 계열사의 경우 사업 및 재무안정성뿐만 아니라 그룹의 지원가능성 측면에서도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5년07월22일 14: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