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가격 하락세…제조사들은 설비투자 늘려
공급과잉 우려…중국 추격 거세질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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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반도체 사업에만 4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다.
최태원 회장의 복귀 신호탄을 알리는 야심찬 카드였지만 투자자들이 환영일색이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D램 가격이 하락하는 등 최근 반도체 업황이 주춤한 상태다. 구체적인 그림 없는 투자발표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SK그룹이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후 SK하이닉스의 주가는 하락세다. 최 회장의 사면이 결정된 지난 13일 주당 3만6900원이었던 SK하이닉스 주가는 사흘간 10% 이상 하락했고 19일에는 3만3000원을 기록했다. 모건스탠리, 바클레이즈, 메릴린치 등 해외 투자은행(IB)들이 매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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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시장의 업황이 좋지 않은 시점에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세계반도체무역협회(WSTS)에 따르면 지난 6월 글로벌 D램 매출은 총 36억6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11.2%,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했다.
컴퓨터와 통신 등 전방산업의 수요부진이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년간 PC용 D램과 서버용 D램 모두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들어 PC용 DDR3 4기가바이트(GB) 모듈 가격은 전월 대비 15%, 서버용 DDR3 8GB 모듈가격은 6% 떨어지는 등 하락폭이 더욱 커졌다.
애플, 인텔, 퀄컴 TSMC 등 글로벌 IT업체들은 일제히 하반기 실적목표치를 보수적으로 잡았다. 당분간 수급상황이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들 업체는 올해 설비투자(CAPEX)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하겠다는 방침도 세운 상태다.
D램 제조사들은 정반대다. 당초 계획보다도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다. 현재 각사들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글로벌 D램업계의 CAPEX는 약 16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수치로 2007년 이후 가장 많은 규모이기도 하다. 특히 마이크론의 경우 투자를 차치하고서라도, 싱가포르 D램공장(Fab7)의 낸드플래시 전환으로 인한 수율 손실로 줄었던 D램 생산량이 연말쯤부터는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도 안 좋아졌는데 마이크론까지 투자를 늘리겠다고 나선 상황”이라며 “SK하이닉스까지 D램에서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 공급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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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BK투자증권 제공
기술경쟁에서도 안심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21·25·29나노미터(㎛) 공정을 도입한 상태다. 25나노미터의 수율이 불안정해 사실상 주력공정이 30나노미터인 마이크론보다는 앞서 있다. 다만 업계 1위인 삼성전자는 이미 20나노미터 제품을 생산할 정도로 양사간 격차가 벌어졌다. 삼성전자조차 지난 6개월간 반도체사업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25%가량 하락했다. SK하이닉스는 이런 시장상황에서 더 자유롭기 어렵다는 시각이 크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D램보다는 낸드플래시 투자를 통해 사업다각화를 이루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란 전망도 많다. SK하이닉스의 매출에서 D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다. 현재 SK그룹이 밝힌 계획은 장비투자 및 신규공장 증설 등에 4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것 정도다. 구체적인 내용은 SK하이닉스와의 논의를 거쳐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 사이에선 ‘위험이 큰 결정’이란 우려가 많다”며 “최 회장이 사면 직후 곧바로 결정을 내릴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근 중국이 반도체산업에 적극적인 투자의지를 보이는 것도 부담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1조위안(한화 약 180조원)을 반도체에 투자할 방침이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어체인 BOE와 중국 최대 반도체기업인 칭화유니그룹(紫光集團)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겠단 의사를 밝힌 상태다. 칭화유니그룹은 마이크론을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마이크론을 중국에 넘기는 걸 반대하기에 현실 가능성은 낮지만 그만큼 중국의 추격이 거셀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변동성이 큰 산업 특성까지 고려하면 2017년쯤엔 회사의 수익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다”며 “투자의 방향성이 적합한지, 향후 재무구조에 어떤 영향을 줄지 봐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SK그룹 측은 적절한 투자 시기라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투자 자체에 대한 우려는 할 수 있겠으나, 지금 국내 경기상황 등을 보면 투자활성화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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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5년 08월 19일 16:3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