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관투자자 '항공기 투자' 눈 떴다
입력 2015.09.17 09:18|수정 2015.09.17 14:46
    •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항공기 투자에 눈을 떴다. 지난해 2000억원대 규모였던 항공기 투자금액은 올해 상반기에만 6700억원에 달했다. 현재 추세로 보면 연말에는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대체 투자자산 규모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하지만, 투자 증가 속도만큼은 가장 빠르다.

      교보생명, 한화생명, 흥국생명 등 국내 주요 생명보험회사와 롯데손해보험, 흥국화재 등 손해보험사들이 적극적이다. 연기금도 예외는 아니다. 교직원공제회가 2013년에 첫 투자(700억원 규모)를 한 데 이어 경찰공제회가 가세했고 올해는 국민연금도 항공기 투자에 발을 들였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KDB대우증권과 HMC투자증권이 공동 주관한 보잉777-200 화물기를 매입해 DHL에 빌려주는 거래에 중순위 투자자로 참여했다.

      김태균 하이투자증권 선박금융실장은 “국내기관투자자들의 항공기 투자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세계 금융시장에서 국내 항공기 투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우리나라에서 투자금을 조달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해 10월 싱가포르항공이 사용할 A380-300을 매입하는 거래에서 국내 중순위 투자자 모집을 맡았다. 주선 규모는 5700만달러로, 이 항공기 투자에는 호주의 ANZ은행과 독일의 로이드펀드 등이 참여했다. 올해 2월에는 아랍에미레이트의 에티하드항공이 15년간 사용할 A380-300의 금융리스 투자자 모집에 성공했다. 3억 달러 전부를 국내에서 조달해 눈길을 끌었다.

      보험사에서 연기금으로…국민연금도 참여

      올해 투자금액 전체 투자금액 2조원 내외 예상

      바젤3 도입, 항공기금융 자본시장으로 이전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항공기 투자 기회는 세계 항공기 금융 시장의 주요 자금공급원이었던 수출신용기관과 유럽계 상업은행들의 항공기 투자위축에 따른 급부로 열리기 시작했다. 2011년 OECD 회원국 간에 채택된‘항공산업양해각서’는 각국 수출신용기관의 항공기 담보대출 최저이율과 개별 대출의 규모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계 상업은행들은 2013년부터 바젤Ⅲ 시행으로 요구자본 수준과 유동성 비율 규제가강화됐다. 10년 이상이 대부분인 항공기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릴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항공기 금융은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는 게 한 흐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잉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항공기 금융에서 2012년만 해도 9% 수준이었던 자본시장 비중은 지난해 46%로 증가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이머징마켓의 항공수요 증가로 신형항공기 도입 수요가 증가하면서 자본시장의 항공기금융 참여 기회는 더 많아졌다. 항공사들은 직접 항공기를 매입하기보다는 리스(Lease) 비중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운용리스의 경우 리스료에 대한 비용처리가 가능해 항공사의 부채비율 부담을 완화하는 회계적인 효과도 있어 항공기 리스사의 경쟁도 본격화됐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항공기 투자에 나서기 시작한 시점도 세계적인 흐름과 맞물려 있다. 교직원공제회보다 훨씬 앞선 2011년 한 화재보험사가 선도적인 투자에 나섰고 2014년 하반기부터 KDB대우증권이 노부스캐피탈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선박금융이 강했던 하이투자증권이 참여하면서 확산됐다. 항공기 투자 구조는 선박금융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핀란드 항공사 핀에어가 사용하는 항공기를 시작으로 여객기 3대, 화물기 2대에 대한 투자와 주선에 성공했다. 이교형 KDB자산운용 대안투자팀장은“회계기준 변경 및 금융규제 강화 등으로 항공기 투자에 대한 세계적인 투자 저변이 확대되면서 국내투자자들도 항공기 투자시장에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곳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내 기관, 2011년부터 항공기 투자 시작

      KDB대우證, 노부스캐피탈과 전략제휴

      항공기 투자 안정성 부각…제한적 공급

      부동산 일색에 선박금융이 대체투자를 보완하던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항공기 투자는 분산투자 차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항공기 투자는 대체투자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나범수 유지파트너스 대표는“미국의 9·11사태와 금융위기 이후 중고 항공기 가격이 하락했지만, 정상 수준을 되찾는 데까지 불과 1.5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전 세계 투자 자산 가운데 가장 가격 변동성이 낮고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항공기는 공급 측면에서 선박과 달리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양분하고 있어 공급 충격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항공기 수요 증가에 미치지 못하는 제한적인 신규 항공기 공급은 향후 중고 항공기 가격에 대한 예측 오차를 줄여준다. 선박이나 부동산, 원자재와 비교해보면 투자 안정성이 더 높다는 평가다.

      한 손보사의 투자담당자는“항공사가 부도난다고 해도, 리스료를 내야 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우선으로 리스료 집행이 이뤄지며 항공사가 파산해도 리스료는 상사채권이기 때문에 최우선 변제 대상이라 법적인 안정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국적 항공사 가운데 부도가 난 경우는 스위스항공과 일본항공이 있지만, 이때도 항공기 리스료 납입은 부도 이후 이틀 만에 정상화됐고 부도기간 동안 리스료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그는 또“항공사가 부도나 파산 시, 해당 항공기를 다른 항공사에 대여함으로써 지속적인 투자수익 확보도 가능하다”며“선박은 화물이 중심이지만 항공기는 승객 중심으로 소득 증가와 함께 항공기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되면서 항공기 투자에 대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움직임은 현재까지 이뤄진 투자 금액보다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거래가 끝난 에티하드항공의 A380-300 투자자 모집은 시작되자 48시간 만에 4800억원의 투자금액이 모였다. 목표치 3300억원은 하루 만에 돌파해, 거래를 주선한 하이투자증권 등이 투자자별 투자금액을 조정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나 대표는“올 하반기에 거래될 항공기까지 투자 확약을 하며 투자 기회를 노리는 기관투자자들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항공기 투자를 감안하면 연말까지 1조원 정도의 추가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관련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현재 항공기 투자수익률은 선순위대출의 경우 3%대 후반에서 4%대, 중순위투자는 5~6%대, 지분투자는 8% 내외다.

      대출중심…지분투자 기피

      항공기 아닌 항공사 신용도 평가 우선

      중동계 위주, 특정 항공사 투자 쏠림

      기관투자자들이 항공기에 대해‘안정적인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투자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대체투자 대상으로써 항공기의 가치와 투자 구조 등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항공기 투자는 투자금을 모아, 혹은 단독으로 항공기를 구매해서 항공사에 빌려주고, 리스료를 받아 투자원금과 수익을 회수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이다.

      복수의 보험사 투자담당자들은 그러나 “국내항공기 투자는 PF 투자로 접근하지 않고 담보 대출에 준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투자 심사 과정에서 가장 논의가 많이 되는 부분이 항공사의 신용등급, 재무구조다. 항공사의 신용도에 대한 우선 고려는 특정 항공사에 대한 쏠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귀에 익은

      항공사 가운데 부채비율이 낮고 신용등급은 투자적격 이상을 갖고 있어야 하며 정부가 대주주인 항공사를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한다. 이 같은 범위에 들어가는 항공사는 싱가포르항공,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캐세이패시픽, 영국항공, 루프트한자, 콴타스항공, 핀에어 정도다.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항공사가 운영할 항공기에는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거의 없다. 국가신용등급이 낮아 투자 검토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기 금융전문가는“해외 투자자들은 항공기종을 중시하지만 우리나라는 항공사를 더 먼저 본다”며“항공기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항공사 채권을 사는 것과 같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항공기 리스료를 지급하는 곳이 항공사이기 때문에 항공사의 크레딧이 가장 중요하다’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항공기는 항공사가 파산해도 즉각적인 재(再)리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항공기 투자는 대체투자란 점에서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받는다. 같은 금액을 오피스빌딩에 대출해줄 경우 보험사의 RBC비율 산정시 위험가중치는 4% 정도를 부여하지만 항공기는 신용등급이 없을 경우 지분투자와 같은 12%를 적용하고 있다. 항공기 투자의 위험성, 이에 대한 투자 접근, 위험관리가 제각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복수의 보험사 투자 담당자는“금융감독당국이 투자 자산의 위험 속성을 감안해 위험가중치 부여 방식을 재조정해야 한다”며“또한 항공기 투자 특성상 해외 항공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만큼, 금감원이 해외 투자에 대해 최소한 부정적으로 바라보진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로 투자하되 목표 수익률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 구조를 변형하는 경우도 있다. 항공기 투자는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로 층을 지어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선순위 대출 투자로는 국내 보험사나 연기금들이 목표한 수익을 낼 수가 없다. 한 투자회사 관계자는“선순위 단일 트랜치(Tranche) 형태로 투자하거나, 명목상으론 선순위지이만 사실상 중순위에 가까운 위험을 지는 구조로 수익률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후순위인 지분(Equity)투자는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 일부 증권사들이 연기금 또는 보험사와 함께 투자하면서 지분투자를 하며 자기자본투자(PI)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상은 연기금 등의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다만, 항공기 투자에 있어 지분투자의 필요성과 그 효과에 대한 이해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일부 투자회사들은 선순위와 후순위에 동시에 투자했거나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