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정책만 쏟아내고 방향은 없다
입력 2015.10.22 07:00|수정 2015.10.22 07:00
    핀테크·기술금융…각종 정책 난무
    장기적 접근 없이 단기 성과에 매몰
    오락가락 정책에 현장선 불만 호소
    "금융시장 파이 키우는 개혁 필요"
    • “금융개혁은 한마디로 담보가 아니라 기술평가를 통해서, 새로운 피가 경제의 혈맥에 흐르게 하는데 목표가 있다”(박근혜 대통령 2015.10.5.)

      “금융사 노조의 힘이 너무 강해 금융개혁이 역동성을 잃고 있다.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금융사가 어디 있냐”(최경환 부총리 2015.10.10)

      현 정부가 노동개혁, 공공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의 4대 개혁을 기치로 내 건 가운데 금융개혁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완화와 기업에 새로운 자금공급 방안의 필요성을 역설하면,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금융 노조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식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건전성 강화가 금융정책의 중심이었다면 이번 정권에선 ‘창조경제’에 걸맞은 금융시스템 구축이 주요 화두다. 이를 위해 6대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자본시장 개혁, 핀테크 활성화, 기술금융 정책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각 경제부처는 이에 발맞춰 금융정책을 내놓느라 정신이 없다. 금융개혁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실천과제가 60개에 이르며 이 중 확정발표된 것만 37개다. 금융 관행에서부터 핀테크 활성화까지 금융의 전 영역에 걸쳐있다.

      정부에서 금융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현장의 불만은 점점 쌓여 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새로운 정책에 이제는 어떤 정책이 실행되고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는 의견이다. 핵심 금융정책 중에서 다음 정권에도 이어질 정책이 몇 가지나 될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 쏟아지는 펀드, 일회성 정책에 그칠 우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의 한 축은 ‘펀드’를 활용한 자금지원이다. 중소 벤처기업 육성과 청년실업 문제를 펀드 조성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13년에는 기업의 창업, 성장, 회수·재도전 단계에 맞춤지원을 하는 ‘성장사다리펀드’가, 지난달에는 청년 창·취업 지원을 위한 ‘청년희망펀드’가 조성됐다.

      성장사다리펀드는 3년 계획으로 추진된 사업으로 한국산업은행, 은행권청년창업재단, IBK기업은행이 주요 출자자로 나서 총 6조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달부터 모금을 시작한 청년희망펀드는 56억원(20일 기준)이 모였다.

      자본시장 업계에선 이들 펀드의 취지에는 공감을 표한다. 민간 영역에서 하기 힘든 업무를 정부가 나서서 해주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란 평가다. 그러나 이벤트성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마지막 사업 연도를 맞은 성장사다리펀드는 향후 재원 마련과 중장기 로드맵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성장사다리펀드를 운용하는 한 관계자는 “앞으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겠다거나 어떤 사업을 벌일지에 대해 나온 것이 없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사업주체인 정책금융공사가 지난해 산업은행에 합병되면서 추진 동력도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업 준비자들은 정부출자 펀드에서 투자를 받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투자금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많고, 관련 절차가 복잡하단 설명이다. 교육 관련 업체를 경영하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투자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며 “창업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일부 업체에만 투자금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에 민감한 은행들은 투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정부의 혁신성 평가에 반영되기에 눈치를 보면서 출자에 나서긴 하나, 안정성 측면에선 고민이 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올해를 기점으로 바젤Ⅲ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본적정성과 유동성 관리가 더 중요해지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혀 안 할 수는 없기에 출자할만한 곳을 선별해 들어가고 있다”며 “금감원에서도 이런 점 때문에 은행별 투자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청년희망펀드는 자금 운용 계획조차 나와 있지 않다. 국내 13개 은행이 수탁을 맡고 있지만 사실상 기부금을 받는 통로 역할만 하고 있다. 펀드의 속성 자체도 기부금에 의존하다 보니 좀처럼 자금이 모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일과 15일 사이에 모금된 금액은 7억원에 불과했다. 벌써 조단위 예산으로도 해결 못 한 청년실업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사모펀드(PEF) 관계자는 “투자자가 펀드에 투자하는 가장 큰 목적이 투자 수익 실현인데, 아무런 금전적인 보상이 없는 청년희망펀드에 일반 개인이 나설 유인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 핀테크 사업자 선정에 ‘급급’…기술금융은 또 다른 이름의 '관치'

      새로운 금융모델 도입이란 취지로 진행 중인 핀테크(Fin-tech)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핀테크 활성화란 목표 아래 추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과 크라우드 펀딩이 중장기 전략보단 단기 성과용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이다. 인터넷전문은행만 하더라도 정부가 도입 의사를 밝힌 지 6개월만에 사업자 선정을 끝낼 계획이다. 이를 두고 금융업계에선 정부가 인터넷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사업자 선정에만 목을 맨다고 지적한다.

      정부에선 핀테크의 핵심사업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꼽지만, 이는 이미 10년 전부터 논의가 됐던 사안이다. 과거 2000년대 초반 SK텔레콤, 롯데, 안철수연구소 등이 ‘V bank’라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검토했으나 규제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 은행들은 현재 정부가 밝힌 인터넷 전문은행이 당시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오히려 시장의 경쟁만 부채질할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인터넷 뱅킹이 활성화 돼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얼마나 신규 고객을 끌어모을지 미지수란 평가다. 한 증권사 금융담당 연구원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마치 사업자 선정이 정책의 최우선 목표인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기술금융은 금융개혁이란 이름의 새로운 ‘관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이 나서서 보증이나 담보 관행에 대해 비판했지만, 은행권에선 이는 현실을 외면한 목소리란 주장이다. 대기업 여신마저 줄이는 판국에 기술 하나만 믿고 대출을 한다는 것은 은행으로선 너무 큰 부담이란 설명이다. 은행 건전성 강화가 요구되는 형국에 기술금융을 확대하란 것은 달성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대출이 기술금융이란 이름으로 바꿔 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자는 “정부가 혁신성 평가란 항목을 통해 은행 간 순위를 매기고 부진한 은행에 불이익을 준다고 하니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 장기적 안목 부재한 정책들…피로감만 쌓여

      금융권에선 어느 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일선 영업 현장에선 정부의 요구사항이 많다 보니 본업 이외의 일이 늘어만 간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고객은 줄어드는데 정부에서 요구하는 것은 많아지다 보니 본업인 고객 서비스 업무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다”며 “최 부총리는 4시에 문닫는 은행에 대해 비판했지만, 현장에선 과도한 업무에 대한 피로감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의 조급함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 정권 내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금융산업의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할 기회를 놓치고 있단 비판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는 금융위기로 인해 금융산업 재편에 쏟을 여력이 없었다”며 “현 정권에선 상대적으로 큰 이슈가 없어 금융산업 전반의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할 기회인데, 정부가 긴 안목에서 접근하기보단 단기성과에 매몰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내년에 바젤Ⅲ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의 건전성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기획재정부는 금융개혁을 이유로 은행들의 '과감한' 투자를 종용하는 등 정부 부처간 이견 조율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의 정책들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보단 정해진 파이를 놓고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다른 관계자는 “은행업, 증권업, 보험업 모두 위기라고 말한다”며 “현재의 정책은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기존 국내 시장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부는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다른 국가들과 글로벌기업들과 비교하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 정권의 임기가 2년가량 남은 상황에서 추진력이 뒷받쳐줄 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