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각국 정부, 자금지원 및 성장생태계 조성…국내와 상황 대조적
-
[편집자주] 구조조정의 파도가 조선업계를 넘어 이제 해운업계로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급조되고 실효성 논란이 큰 설익은 정책들만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늑장대처, 낮은 업종 이해도, 방향성 상실과 미숙함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베스트조선은 국내 해운업계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점, 적절한 대처 방안에 대해 진단한다.
-
- 이미지 크게보기
- 머스크가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해 지난 5월 인도받은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국내 해운사들이 불황에 주춤한 사이 해외 대형 해운사들은 자국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으며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격렬해지고 있다. 갈수록 한진해운과 현대상선과의 격차를 벌리는 모습이다.
◇ 초대형 에코쉽·얼라이언스로 경쟁력 강화…비용절감 중심 치킨게임 본격화
해운업 불황이 시작되던 2008~2009년, 상당수의 해운사가 이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요는 줄었고 고유가 흐름이 이어졌다. 갈수록 유가와 운임간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각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대형 글로벌 해운사들은 이때부터 경영전략을 바꾸면서 새 환경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선제적으로 나선 곳은 세계 1위 머스크(A.P. Moller-Maersk Group)다. 2008년 인력감축과 해외지사 축소 등을 골자로 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이후 사업전략도 비용절감과 수익성 향상에 초점에 맞췄다. 2011년 대우조선해양에 1만8000TEU급 대형선박 20척을 발주하면서 초대형 에코쉽(Eco ship)을 늘리기 시작했다.
노선운영 전략도 허브앤드스포크(Hub and Spoke) 방식으로 전환했다. 한 곳에서 최대한 많은 화물을 실어 운송을 하고 연비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머스크는 이를 통해 경쟁사들과의 차이가 뚜렷할 정도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양호한 수익성을 바탕으로 불황기에 오히려 운임하락을 주도하며 다른 해운사들과의 격차를 벌려갔다.
-
다른 해운사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MSC(Mediterranean Shg Co), 프랑스 CMA-CGM, 대만 에버그린(Evergreen), 일본 MOL(Mitsui O.S.K. Lines) 등이 연이어 초대형 에코쉽을 발주했다. 당분간 과잉공급이 예상되는 가운데 각사는 비용절감을 핵심으로 한 생존전략을 들고 나오고 있다. 반면 재무구조 개선에 한창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 5년간 초대형선박을 단 1척도 발주하지 못했다.
동맹(얼라이언스)을 통한 시장지배력 확대경쟁도 한층 뜨거워졌다. 머스크가 2위인 MSC와 손을 잡고 '2M'을 출범시키자 나머지 해운사들도 적극적으로 합종연횡에 들어갔다. 2M과 함께 얼라이언스(P3) 구성을 추진했던 CMA-CGM는 중국 CSCL(중국해운그룹), 범아랍권 해운사인 UASC(United Arab Shipping Company)와 함께 오션(Ocean) 3를 만들었다. 기존 CKYHE와 G6를 비롯해 4개의 얼라이언스간 각축이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선 쪽은 업황이 좋아지길 기대하긴 쉽지 않기에 원가를 얼마나 더 줄일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가고 있다”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이미 이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정부·금융권, 자금지원 및 성장 생태계 조성…불황기 부담 덜어
불황기에도 해외 해운사들이 이렇게 경쟁력을 키우는 바탕엔 자국 정부와 금융권의 탄탄한 지원이 있다. 최근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건 중국이다. 중국 수출입은행과 각 시중은행들이 주요 해운사들에 대규모 금융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노후선박 해체보조금까지 지급해주면서 해운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신 선박발주는 자국 조선사에 맡기도록 해 조선업도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글로벌 10위권 해운사인 COSCO(중국원양운송그룹)와 CSCL이 불황기를 잘 버티며 성장해온 배경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양사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대형 해운사 육성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사 합병시 글로벌 4위 해운사가 탄생하게 된다.
-
일본은 오래 전부터 해운사들이 성장하기 좋은 토대를 다져놓았다. 화주들이 해운사들과 장기계약을 맺도록 한 지 오래다. 1990년대 후반에는 화주가 자사에 등록된 해운사만 입찰기회를 주는 지명입찰방식을 도입해 사실상 외국 해운사의 진입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했다.
이에 힘입어 일본 해운사들은 자국 해상 수출입 물동량의 55~65%를 수송하고 있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자원운송 쪽에선 그 비중이 더 크다. 일본 3대 해운사인 NYK(Nippon Yusen Kaisha)·MOL·K라인이 컨테이너선뿐만 아니라 벌크선과 유조선 등 각 사업에서 고른 성장세를 보이는 비결이다. 이들은 호황기 때 비싼 가격에 맺은 용선계약들을 해약해 선박을 조기반환하면서 2009~2010년 300억엔 이상의 특별손실을 냈지만, 그 이후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이익을 내고 있다.
유럽 해운사들 또한 자국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을 받고 있다. 머스크는 덴마크 수출신용기금(5억2000만달러)과 시중은행(62억달러)들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와 은행 등은 CMA-CGM에 15억달러 규모의 대출 및 보증을 제공했다. 하팍로이드(Hapag-Lloyd)도 지속적으로 독일 정부의 자금지원과 지급보증을 받고 있다. 뒤늦게 회사채 신속인수제 도입 등의 대안을 내놓았던 국내상황과 대비된다는 평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장기불황기로 들어가는 초입에 정부가 자국 해운사에 대규모 지원을 실시해 자금부담을 덜어줬다”며 “반면 한국은 정부지원이 상당히 늦었고, 규모도 작고 지원기간도 짧아 해운사들이 회복할만한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5년 11월 09일 08: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