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테크윈, 성장 방향 선명성 부각…KAI 인수 '전략적 선택'
입력 2016.01.08 07:00|수정 2016.01.11 09:09
    보름 새 7200억 확보, 항공엔진 부품사업 및 관련 M&A 활용
    "KAI 인수 추진 가능성 낮춰, 잠재적인 재무부담 요소 제거"
    KAI 경영권 매각, 오리무중…매각 불발 가능성 높아
    한화, 先항공 엔진 투자 後 KAI 인수 가능성…"한화外 KAI 인수후보 없다"
    • 한화테크윈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일부 매각(Block Deal)으로 향후 성장 계획과 방향을 보다 선명하게 제시했다. 주력인 '항공기 엔진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그룹에서 한화그룹으로 소속이 바뀐 후, 불확실한 성장 방안과 지속적인 확장기조를 우려했던 투자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시장은 이번 블록딜을 "한화가 KAI 경영권 인수에 현재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KAI 매각을 시작할 KDB산업은행만 당황스러운 상황이 됐다. 다만 한화가 KAI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고 단정짓긴 어려워 보인다.

      ◆항공기 엔진사업에 집중…작년 회사채 차환 어려움 겪으며 내부 기조변화 

      한화테크윈의 KAI 지분 매각 발표는 시장의 예상 밖이었다. 작년 말 KAI 주주들의 공동매각기간이 해제되면 (주)두산(DIP홀딩스)가 가장 먼저 지분 매각에 나설 것으로 봤고, 한화테크윈은 거꾸로 KAI 인수를 고려할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한화그룹은 이번 거래에 대해 "항공기 엔진 부품 사업 확대를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한화테크윈은 민간엔진 분야에서 세계 3대 항공기엔진 제작사인 GE 및 P&W와 엔진 부품 공급에 관한 RSP 계약(Risk & Revenue Sharing Program ; 항공기 엔진의 개발, 양산, 유지보수 등의 사업에 위험과 수익을 참여지분만큼 배분하는 계약방식)을 체결했다. 한화테크윈이 이들과 지난 1년여동안 체결한 계약 규모만 총 68억8000만달러(약 8조원)에 달한다.

      연간 단위로 보면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같은 수주는 한화의 경영진들에게 항공기 엔진 성장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군수 분야에서는 KF-X 관련 엔진 계약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항공기 엔진 사업 강화를 위해 한화테크윈은 기술 개발 및 사업확대를 위한 투자 외에 해외 엔진 부품 업체에 대한 M&A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미 일부 기업에 대해선 인수 검토를 깊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항공기 부품 하청업체였던 영국의 GKN사(社)가 2012년 스웨덴의 볼보(VOLVO)를 인수한 후 RSP 업체 지위를 확보한 것과 유사한 컨셉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지난해 한화테크윈의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았던 점도 이번 매각을 이해하는 중요 요소로 꼽고 있다.

      한화테크윈은 작년 7월 2000억원 규모의 채권 만기를 맞이했다. 여느때 같으면 차환 발행에 나섰겠지만 한화테크윈은 이를 전액 상환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차환발행을 하려했으나 정작 투자하려는 곳을 찾지 못해 상환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고심 끝에 11월에 1000억원 채권 발행에 나섰지만 수요예측에 250억원만 참여해 '흥행 참패'라는 딱지를 달았다. 한화테크윈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한화테크윈은 자산매각 기조로 돌아섰다. 12월 중순 한화종합화학 지분 23.4%를 4418억원에 매각했고, 이달 6일에 KAI 지분 4%를 팔며 보름 사이에 7215억원을 확보했다. 이 돈은 한화테크윈의 차입금(9월말 기준 6371억원) 전부를 상환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항공•방산 산업의 경우 수주를 위해선 기술력뿐만 아니라 튼실한 재무구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는 상황이 됐다.

      아울러 한화테크윈은 이 자금으로 탈레스의 한화탈레스 지분 50%에 대한 '풋옵션 행사' 에 대한 대응 여력도 확보했다. 오는 6월말부터 40일간, 프랑스 탈레스는 보유한 한화탈레스 지분을 한화테크윈 등에 정해진 이율을 적용해 매각할 권리를 갖고 있다.  지분 매각 규모는 약 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회사채 차환 발행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이 12월 중순 이후 주요 자산 매각을 통한 자금조달 결정에도 영향을 줬다"며 "항공기 엔진 사업 확대와 KAI 경영권 인수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 産銀, KAI 매각 전략 수정 필요 …한화, 선택지는 남아 있어

      올해 KAI 경영권 매각에 나서려 했던 산은은 전략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다. 산은은 두산그룹이 가장 먼저 지분 매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한화그룹의 지분 매각은 예상 밖이었다. 산은은 자회사관리위원회를 설치한 후 KAI 지분 매각 시기와 방향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 시장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을 한화테크윈이 KAI 경영권 인수에선 일단 물러선 것으로 해석했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날 발표한 분석보고서를 통해 "한화그룹은 KAI 인수보다는 기존 엔진사업 강화에 더 관심이 있고, 지난해 한화종합화학 지분매각 때도 밝혔던 '엔진 RSP사업과 관련 투자자금 마련'에 실제로 목말라 있었음이 사후적으로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한화그룹이 KAI 경영권 인수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번 매각 뒤에는 한화그룹의 KAI 인수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있다고 한화그룹 사정에 정통한 IB업계 관계자들이 전했다. KAI와 한화테크윈의 사업 연관성도 높다.

      "산은이 KAI 지분을 판다면 누가 인수에 나설 것이냐"는 물음을 던졌을 때, 국내 기업 가운데서는 마땅한 인수 후보를 꼽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가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최소한 2조원 이상은 필요하다. 삼성ㆍ롯데ㆍ SKㆍ한화를 제외하고 보면 이 같은 금액을 투입할 대기업 집단은 현재로선 없다고 봐도 무리한 평가는 아니다. 과거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이 KAI 인수에 나섰지만 역시 여력이 없다. 업종 특성상 사모펀드(PEF)나 해외기업에 매각하기도 쉽지 않다. IB업계에서는 2~3년 내로도 KAI 경영권 매각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그룹 입장에선 항공기 엔진 분야 강화에 우선 순위를 둔 이후 차분히 KAI 경영권 인수에 나선다는 판단도 해볼 수 있다. 한화테크윈은 여전히 지분 6%를 보유하고 있고, 산은 지분까지 더하면 33.56%가 된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한화테크윈이 KAI 지분을 일부 매각했다고 해서 경영권 인수에 대한 관심도 지웠다고 보긴 어렵다"며 "선순위와 후순위를 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을 했다"며 "이번 KAI 지분 매각은 계획했던 5% 전량 매각 여부를 떠나 거래가 가진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한화테크윈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처럼 지분 매각대금으로 다시 해당 지분을 인수하는 형태를 취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처한 상황이 다른 데다 한화그룹에 대한 신뢰 문제로 이어져 투자자들의 대량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취재 : 투자팀=황은재·이서윤·위상호·한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