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못 놓는 증권사, 역마진 상품 손대는 보험사
입력 2016.01.21 07:00|수정 2016.01.21 07:00
    원화가치·주가지수
    연초부터 하락세
    주가연계증권·채권 등
    수익기반 뿌리째 '흔들'
    자본확충 부담 본격화
    오히려 역마진 커질 듯
    • 새해 들어 국내 금융시장의 가시거리는 더욱 짧아졌다. 미국·중국발 글로벌 변동성이 시야를 가렸다. 2%대 중반의 견고한 경제 성장을 기록 중인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경기둔화와 구조개혁 지연으로 경제 경착륙 위험이 부각된 중국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진땀을 흘리는 중이다.

      충격파는 국내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원화가치는 떨어지고, 주가지수도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로 45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무역수지 흑자는 오히려 일본식 장기침체의 전주곡으로 해석된다.

      이런 글로벌 변동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업종으로 증권과 보험이 꼽힌다. 이들은 투자 상품을 개발하고 운용을 통해 수익을 내야 한다. 최근 2~3년간 수익의 기반이 돼왔던 상품들이 모두 올해 들어 뿌리째 흔들리고 있지만, 이들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오히려 관성에 따라 움직이며 위험요인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 증권사, 수수료·ELS·채권이익 수익기반 '흔들'

      증권사들은 지난해 '반짝 호황'을 맛봤다. 3분기까지 증권사 전체 당기순이익은 2조9200억여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3400억여원) 대비 무려 118%나 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조금씩 대외 변동성이 커지며 수익성 지표가 모두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지만, 대책은 미흡했다. 2014년 후강퉁 열기에 힘입어 'BUY CHINA'(중국 투자)를 외치던 증권사들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해외 상품을 발굴해내지 못했다. 이는 연초 고객들의 대규모 투자손실로 돌아오고 있다.

      증권사들에 '젖과 꿀'을 제공했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들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HSCEI 지수에 상당 부분 의존했던 ELS 상품들이 손실 위험과 마주했다. 그런데도 증권사들은 ELS를 쉽사리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발행 잔액을 자율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 헤지'를 늘렸다. 증권사가 운용 위험을 직접 떠안다보니 하락 장세에서 증권사도 운용 손실을 낼 가능성이 커졌다.

      증권사 실적을 견인한 '효자'였던 채권 역시 불안하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증권사가 보유한 총 채권 보유액은 174조8000억원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계속된 금리 하락기엔 상당한 수혜를 입었다. 기준금리가 꾸준히 인하되며 증권사들은 2014년엔 총 6조1580억여원, 지난해 3분기까지 총 4조5900억여원의 채권 관련 이익을 냈다.

    • 하지만 지난해 말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내 국고채 금리도 하락추세를 멈췄다. 이전 같은 채권평가이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금리 인상에 따른 손실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증권사들을 먹여 살린 위탁매매 수수료 수입은 올해 기대하기 어렵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근 국내 코스피 지수는 중국 증시와 커플링(동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중국 증시의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국내 증시도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환경 속에서 증권사들이 그나마 새로 선보이는 상품은 '로보 어드바이저' 정도다. 프라이빗뱅킹(PB) 시장을 중소득자로 확대해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지만, 수수료가 저렴한 데다 은행권도 앞다퉈 도입하고 있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진 미지수다.

      ◇ 보험사, 자본확충 부담에 역마진 우려 지속

      보험사들은 올해 새로운 규제 도입으로 자본확충 부담을 떠안았다. 글로벌 금융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간 실적의 효자 역할을 했던 채권 관련 이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런 와중에 일부 보험사는 성장성 정체에 맞서기 위해 다시금 역마진 우려가 있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보험사 전체 순이익(5조9843억원)이 국내 은행의 순이익(5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익의 상당 부분은 금리 하락으로 가격이 올라간 보유채권 매각에서 발생했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보유채권 매각은 미래 이익을 미리 당겨서 쓴 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에는 이마저도 힘들 전망이다. 미국의 금리 상승 여파로 시중금리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해 보험사들은 시가평가를 하지 않는 '만기보유증권'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지난 3년간 '매도가능증권'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던 것과는 정반대 움직임이다.

      더 큰 문제는 올해부터 자본확충 부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보험 부채 시가평가와 이익-손실 상계를 주 내용으로 하는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세부안이 올 상반기 확정될 예정이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2013년 기준 시뮬레이션을 통해 국내 보험사의 RBC비율이 IFRS4 2단계 도입 시 10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국내 보험사 RBC비율 평균치(284.8%, 지난해 9월말 기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운용수익률 제고가 대안이지만 이에 필요한 투자처 찾기에도 실패했다. 보험사들은 투자 수익률 제고를 위해 수년 전부터 해외투자·대체투자 확대를 외쳤지만, 실제 성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국내 보험사의 투자 유가증권 중 외화유가증권 비중은 2011년 8%에서 2015년 3분기 말 기준 11%로 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고금리 상품들로 인한 역마진 우려는 해소되긴커녕, 오히려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일부 생명보험사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최저보장이율을 크게 높인 상품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해서다. 2013년과 2014년 역성장 하던 생보사의 저축성보험 수입 보험료는 지난해 상반기 전년동기 대비 3.7% 증가하며 성장세로 돌아섰다.

      일부 저축성 보험의 최저보증이율은 시중 은행 저축 금리의 두 배에 이르는 2.85%에 달한다. 국고채 1년물 금리가 1.6%대에 머물고, 보험사들이 주로 투자하는 AA급 회사채 평균 금리가 2.5% 안팎인 상황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역마진을 초래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에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상품 가격 자율화 등 규제 완화에 나설 예정이지만 실제 보험사의 '살림살이'에 영향을 주기까진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오히려 규제를 풀고 경쟁을 유도하며 보험사간 상품 및 가격 경쟁이 더욱 가열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