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는 장부가 절반 수준…오릭스 인수가·대우證 비해 저평가
금융 3사 실적 개선…자사주 효과에 마지막 매물 프리미엄도
높아도 낮아도 안 되는 우선매수권 가격…공은 KB·한국으로
-
현대증권 매각 가격을 둘러싼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반드시 매각을 성사시켜야 하는 현대그룹, 대우증권 인수 실패를 만회해야 하는 KB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 우선매수권을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등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으로선 가격만 앞세울 처지가 아니지만, 재무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장부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현대증권의 가치평가를 높일 요인이 있고, KB금융과 한국금융이 인수할 만한 마지막 대형 매물이라는 점에서 인수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KB·한국지주 2파전…현대證 인수, 장기목표 앞당길 마지막 기회
KB금융과 한국금융은 자금 조달 여력과 금융당국의 승인 가능성, 거래 종결의 신속성 등을 감안할 때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힌다.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각각 명분으로 내세웠던 ‘자산관리(WM)와 투자은행(IB) 부문 강화를 통한 국민의 부(富) 증진’, ‘글로벌 IB로의 도약’이라는 장기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증권은 대우증권 인수 실패의 아쉬움을 달랠 사실상 마지막 매물이다. 그나마 남은 대체재인 삼성증권의 매각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현대증권은 대우증권에 비해 IB 역량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고, 자기자본도 대우증권보다 1조원가량 작지만 그만큼 인수 부담은 덜 하다.
KB금융과 한국금융은 일찌감치 인수의향을 밝히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IB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가 실사 자료 부실 문제를 제기하고 우선매수권 해소를 요구한 것은 결국 정확한 가치 산정을 통해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인수전의 향방은 현대상선에 유입될 금액, 즉 누가 더 높은 가격을 써내느냐에 따라 갈린다. 대우증권 실패로 절치부심하는 한국금융은 경영진의 결단에 따라 인수 가격을 더 써낼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KB금융의 이사회 역시 대우증권 인수 당시 전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가는 3500억…대우증권 매각 PBR 적용 시 9000억
매각 대상인 현대증권 지분 22.56%의 시장 가격은 3555억원이다. 현대증권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7.06%를 고려하면 사실상 29.62%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하게 되는데, 이를 감안한 가격은 4667억원에 이른다.
-
오릭스는 지난해 현대증권 인수를 위해 6474억원을 제시했다. 이 중 2000억원은 현대그룹이 재출자 하고, 2000억원은 산업은행 브릿지론 상환에 쓸 계획이었기 때문에 현대상선에 실제 유입될 돈은 2500억원가량에 그쳤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지분 신탁담보대출 2500억원과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빌린 1719억원 등 4219억원을 갚아야 한다. 지난해 수준의 현금 유입을 원한다면 현대증권을 7000억원 가까운 금액에 팔아야 한다. 오릭스 때와 달리 진성 매각이기 때문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여지는 있다.
실적도 좋아졌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전년 대비 648.5% 증가한 297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강점이 있는 리테일은 물론 부동산, 기업공개 등 IB 부문의 실적이 개선된 영향도 컸다. 7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낸 현대저축은행에 현대자산운용까지 포함한 금융 3사 영업이익은 4000억원에 육박한다.
현대그룹 사정에 밝은 IB 업계 관계자는 “현대증권은 지난해 매각 추진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사업을 이어갔다”며 “최근 부실 가능성이 제기된 부동산 사업과 저축은행 역시 대규모 손실이 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매각을 통해 계열사 지원 부담과 위험 전이 가능성을 벗게 되면 저평가된 주가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0.5배 수준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지난 대우증권 매각 당시 수준(1.28배)으로 올라간다고 가정한 가격은 9000억원 이상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우선매수권 행사 가격도 변수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열어 본입찰 직전 기준 가격을 제시하되, 그 이상의 가격을 써낸 인수 후보가 있을 경우 현대증권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대그룹으로선 무턱대고 높은 금액을 써내기 어렵다. 채권단은 3월까지 가시적인 자구 성과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리한 가격을 써내 외부 매각이 무산되면 채권단의 지원 가능성은 사라진다. 만의 하나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게 될 경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마지막 핵심 자산을 너무 낮게 팔 수도 없다. 현대그룹은 정부의 해운사 지원 기준(부채비율 400%)에 맞추기 위해 용선료 조정 및 회사채 상환기일 연장 등 자구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적어도 장부가 수준에는 매각하길 원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오릭스에 매각할 당시에도 장부가격이 기준점이 됐다.
KB금융과 한국지주도 고민이 될 상황이다. 현대그룹이 적정한 가격을 결정했는데도 그보다 낮은 금액을 써낸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현대증권 인수 필요성이 있고, 현대증권의 가치도 개선될 가능성이 있어 매각 성사 가능성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도 현대그룹이 사실상 우선매수권을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두 회사 중 적어도 한 곳은 기준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써낼 것이란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계속해서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진성 매각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매수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점, 사외이사를 현대그룹 인사들로 교체한 점,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진성 매각을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3월 11일 14:1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