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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주주총회는 유진그룹의 뼈아픈 패배로 끝났다. ㈜동양의 경영권 인수를 위해 모든 직원이 발벗고 나섰지만 회사의 민낯만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달 30일 주주총회는 유진그룹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소액주주들은 유진그룹을 소수지분으로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악덕 기업으로 몰아세웠고, 최종성 유진기업 대표의 발언은 주주들의 고성에 묻혔다.
이날 유진기업이 제안한 안건에는 전체 주식의 약 37%가 찬성했다. 유진그룹 보유지분 10%와 공동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한 파인트리자산운용의 지분 10%가 포함됐다. 소액주주는 17%가 동의했다. 결국 특별결의 요건(전체의 33.3%, 참석주식의 66.7% 동의)을 충족하지 못해 안건은 부결됐다.
유진그룹과 소액주주들의 괴리감은 컸다. 유진그룹은 지난해 중순부터 장내매입을 통해 10%의 지분을 확보했다. 올 3월부터는 '로또'와 '음료수'를 사들고 일일이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니며 주총 의결권을 위임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에게 유진그룹의 행동은 주총 승리를 위한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주주들은 장내에서 주식을 인수, 33%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지만 유진그룹은 대주주간 연합을 선택했다.
유진그룹은 주총 이틀 전 파인트리와 공동의결권행사 계약을 체결했다. 주총 하루 전엔 동양레저가 보유한 지분 3%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인수했다. 장내에선 싼 값에 지분을 사들이려 애썼지만, 동양레저 지분은 오히려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 주주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었다.
유진그룹의 전략은 '경제적'이었다. 1000억원을 채 들이지 않았다. ㈜동양의 시가총액은 8000억원, 유진기업(약 3500억원) 보다 2배 이상 큰 기업의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그랬다. 만일 유상감자도 성사됐다면 투자자금 일부 회수와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 이외에 지분율 확대도 노릴 수 있었다.
㈜동양의 주주들은 여타 기업의 주주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2013년 동양사태는 경제 재앙(Disaster)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5만여명에 가까운 피해자를 낳았고, 이중 상당수가 강제적인 출자전환을 통해 ㈜동양의 주주가 됐다.
그들에겐 로또와 음료수를 나눠주며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주주보다는 주가부양을 통한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주주가 필요했다.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유진그룹의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에 그쳤다. 주주들은 오히려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유진그룹보다 자사주 매입계획을 밝힌 회사의 제안에 매력을 느꼈다.
유진그룹의 비전 자체에 반대하는 주주는 많지 않다. ㈜동양에게도 안정적인 주주가 필요하고, 레미콘 및 건자재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주주들 또한 유진그룹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 주주는 "유진기업도 정당하게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해 경영에 나선다면 충분한 기회가 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진그룹은 주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주총 이후 지분매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주총까진 1년이 남아있다.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할 수도 있다. 소액주주의 표심이 유진으로 향한다면, 다음 주총이 끝난 뒤 유진그룹은 축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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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4월 04일 17:30 게재]
입력 2016.04.06 07:00|수정 2016.04.06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