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춘추전국시대...중소형 증권사 "틈새시장 찾아라" 악전고투
입력 2016.04.14 07:00|수정 2016.04.14 10:01
    대형 인수합병으로 지각 변동
    후순위채 발행으로 자본 확충
    부동산 PF 신용 보장 늘어
    고수익·고위험에 건전성 우려
    • 여의도 증권가의 지형이 변화하며 중소형 증권사들이 생존을 위한 틈새시장 찾기에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인해 수년간 미동이 없었던 증권사 자기자본 순위가 요동치고, 정부의 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침과 함께 덩치를 갖춘 증권사와 그렇지 못한 증권사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특화증권사 라이선스에 십수개의 증권사가 출사표를 던졌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새 수익원으로 내세운 곳도 있다. 고수익을 쫒다보니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증권사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내 증권업계의 핵심 트렌드는 '대형화'다. 미래에셋대우가 1인자로 급부상했고, 인수 경쟁에서 밀린 한국투자증권은 불리한 판세에 처했다. 자기자본이 3조원을 눈앞에 둔 신한금융투자·하나금융투자·메리츠종금증권 등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라이선스를 노리고 있다. 앞으로도 공격적인 영업과 자본확충, 추가적인 M&A가 잇따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대형 증권사 질서 재편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소형 증권사들도 나름의 생존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자산규모를 자기자본의 일정 수준(11배)으로 제한하는 레버리지규제가 도입되며 자본확충은 중소형사에게도 핵심 과제가 됐다. 메리츠종금증권 4100억원, 하이투자증권 1200억원, IBK투자증권 1000억원 등 지난해 증권사 유상증자가 잇따라 진행된 건 이 때문이다.

      최대주주로부터 유상증자가 여의치 않은 증권사는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있다.  동부증권은 지난 3월 8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계열사 동부화재가 280억원을 지원했고 나머지는 기관투자자를 모집했다. SK증권은 이달 내로 700억원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SK증권은 지난해 증자를 염두에 두고 수권주식수(발행할 주식 수)를 2배로 늘려놨지만, 모기업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자 후순위채로 방향을 돌렸다.

    •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수익성 확보에 초점을 맞춘 움직임도 보인다. 주가연계증권(ELS)이나 부동산PF 신용보강이 주요 수익원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2010년 23조원 수준이었던 파생결합증권(ELS 포함) 발행 잔액은 지난해 말 100조원으로 4배 늘었다. 중소형 증권사가 발행을 주도했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의 파생결합증권 발행 규모는 이 기간 3.5배가량 늘었지만, 중소형사는 4.5배 이상 늘었다.

      ELS 발행시장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증권사는 대신증권이다. 대신증권은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의 변동성이 커진 이후에도 꾸준히 이 지수를 기반으로 하는 고이율의 ELS 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타 증권사들은 H지수 기반 ELS 상품의 수익률을 낮추고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품 구조를 짜고 있지만, 대신증권은 지난해 홍콩H지수 기반 ELS가 크게 유행했을때와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부동산 PF 신용보강도 크게 늘었다.  PF 채권 유동화 과정에서 증권사가 개입해 신용공여나 유동성 공여 약정을 맺는 방식이다. 이로 인한 증권사 우발채무 규모는 지난해 총 24조원으로, 2년 전 11조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졌다. HMC투자증권의 경우 부동산 PF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며 2013년 78억여원의 적자였던 영업실적이 지난해 682억원의 흑자로 크게 돌아섰다.

      고위험 고수익 구조의 거래가 많다보니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대신증권·신영증권·KB증권 등 일부 중소형사의 자기자본 대비 ELS 발행 잔액 비중은 200%를 훌쩍 넘어섰다. 대신증권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980%로 레버리지 규제선에 근접했다. 메리츠종금증권, 교보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부동산 PF 신용보강에 집중한 일부 증권사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비중이 100%를 훌쩍 넘기고 있다. 한때 우발채무 비중이 180%를 넘겼던 HMC투자증권은 지속적인 감축 노력으로 지난해 말 140%대까지 내려왔다.

      한 중형 증권사 관계자는 "위험한 상품이라고 내부적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선 중소형사가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은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특화 영역을 개척하는 증권사도 있다. 동부증권의 경우 해외채권 중개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동부증권은 외국계증권사와 연계해 해외기업 채권에 대한 국내 기관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고 있다. 동부증권 관계자는 "국내 채권시장의 발행량이 줄고 있고, 투자자 모집도 쉽지 않아 해외로 눈을 돌렸다"며 "태동한지 얼마 안 된 영역이라 경쟁력 키우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특화증권사 모집에 13곳의 증권사가 대거 몰린 것도 '특화 영역'에 대한 갈증 때문으로 해석된다. 중기특화증권사는 프라이머리 자산담보부증권(P-CBO) 발행 주관사 선정시 우대되고 한국증권금융에서 증권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지원 한도를 늘려주는 등 혜택을 받지만, 실제 효용성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할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중소형 증권사들은 "없는 것보단 낫다"며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5일 첫 중기특화증권사 5곳의 명단을 발표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한 분야에 특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지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며 "일반적인 경쟁으로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