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도 적극 투자해 성장…기술력도 향상
차세대 소재기술 개발 중대과제로 '부상'
-
“중국은 정부가 뒷받침하면서 움직이니까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듭니다. 기술이 부족해도 적극적으로 투자합니다. 만약 중국기업들이 열교환이나 열단열 같은 기술들을 접목시키면 쫓아갈 수 없을 겁니다. 2~3년 후엔 (국내기업들이) 상당히 어려워질까 우려가 많이 됩니다.”
권호진 박사의 말이 끝나자 행사장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7년, 삼성SDI에서 16년 동안 연료전지와 리튬이온전지 등을 개발했던 배터리 전문가다. 2014년부터 중국 2차전지 소재업체인 이스프링(Easpring)에서 배터리 기술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 中 정부, 공격적 지원정책…시장 커지고 기업들도 성장
권 박사는 SNE리서치가 지난 14~15일 진행한 ‘2016 한국 전기차 컨퍼런스’ 첫째날의 마지막 연사(演士)였다. 그의 발표는 사실상 이번 행사에서 중국 리스크를 경고하는 신호탄이 됐다. ‘증국 전기차시장 심층분석’을 주제로 한 둘째날부터는 중국이 화두였다. 이날 연사로 나선 중국 전기차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정책 덕분에 전기차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차오 란 보세라 글로벌 인베스트먼트(Bosera Global Investment) 펀드매니저는 “정부는 2020년까지 500만대, 2025년까지 1000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보조금을 비롯한 여러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 마크 중국 산업기술연구원(ITRI) 연구원도 “심각한 환경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매년 급속도로 성장하는 전기버스 시장이 올해도 큰 폭의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총 31만2000대로 전세계 판매량의 13.4%를 차지했다. 배터리 용량을 기준으로 하면 비중이 크게 상승한다. 중국에서 팔린 전기버스 비중만 해도 40%(10GWh)다. 중국 정부는 주행거리가 긴 전기차일수록 보조금을 더 많이 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 번에 250km 이상을 가는 순수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은 6만위안(한화 약 1060만원)이다. 충전 인프라 조성에도 한창이다. 이미 2014년 3만7000개 이상의 충전기 설치가 완료됐다. 2020년까지 480만대 이상의 충전기를 갖추는 것이 목표다.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중국 선전(深圳)에 갔었는데 충전소 한 곳의 충전기 개수만 109개일만큼 인프라가 잘 깔려 있었다”며 “BYD만 봐도 전기차가 마진이 더 많이 나오는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BYD가 지난해 거둔 순이익은 28억2300만위안(약 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550%가량 증가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에 중국시장에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중이다. 글로벌 소형배터리 시장 점유율 4위(11.4%)인 ATL도 꾸준히 성장세를 바탕으로 주목받는 기업이다. 삼성SDI처럼 소형배터리로 시작해 중대형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사례다. 중국 양극재·음극재 1위업체인 샨샨(杉杉)도 공격적인 투자로 배터리소재 사업을 키워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옛 제일모직처럼 모직회사에서 시작해 소재업체로 변신했다.
◇ 기술력 추격 본격화…LG·삼성·SK, 차세대 소재개발 중대과제로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투자가 한창인 국내업체들 입장에선 위협적인 현상이다. 이들은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는 과정 속에서 자동차 제조사들과 연이은 계약을 맺으며 성장기반을 다져왔다. 선두주자인 LG화학은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길 전망이다. 시장에선 2018년부터 그동안의 투자활동이 조금씩 결실을 맺을 것이란 기대가 조성돼 있었다.
그 기대감만큼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제는 중국 배터리(소재 포함) 제조사들도 전기차 시장 확대와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 공신부는 최근 현지 배터리 제조사들 중 상위 8개 기업을 선정해 보조금·인센티브·무이자 대출 등 대규모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이들은 모두 니켈코발트망간(NCM)을 소재로 한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지금까지 에너지밀도에서 뒤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리튬인산철(LFP)을 기반으로 배터리를 만들어왔다.
올초 중국 정부가 LFP 소재 배터리를 장착한 상용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겠다고 결정했을 때만 해도 중국의 정책 리스크만 부각되는 분위기였다. 이제는 중국 기업들과의 가격과 기술경쟁력을 두고 맞붙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도 중국기업들의 성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김광주 SNE리서치 대표이사는 “지난해말부터 글로벌 투자기업들과 20~30건의 미팅을 했는데 전기차 시장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진 모습”이라며 “특히 중국을 빼놓고 얘기를 못 할만큼 중국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배터리 가격추세와 소재기술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제조사들은 주행거리를 늘리면서도 가격은 낮춘 배터리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보다 가성비가 월등한 배터리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3만달러대의 가격에 주행능력 300km를 갖춘 전기차를 출시하기 위해선 킬로와트시(kWh)당 250달러대인 배터리 가격이 150달러 밑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시각이 크다. ‘모델3’ 발표와 함께 공격적인 가격전략을 펼치는 테슬라의 움직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선 제조원가 개선이 중대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주요 원재료인 리튬가격은 최근 5년새 2배가량 뛰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도 향후 대응방안을 묻는 질문들이 연거푸 나왔다. LG화학과 삼성SDI가 4대 핵심소재인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기술개발과 내재화, 배터리 재활용기술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배경이다. 양사 모두 “주행거리 600km 이상은 새로운 소재기술을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중국기업들은 원재료 확보에서 한 발 앞서 있다는 평가다. 현지 전극체 제조사들은 일찍이 매입해놨던 아프리카 광산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광물들을 들여오고 있다. 음극재의 경우 중국 내에 카본(Carbon) 광산이 많아 조달이 용이하다. 값싼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이들의 기술력이 더 향상되면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권호진 박사는 “중국기업들의 공장 몇 곳을 방문해보니 한국기업과 다를 게 없었다”며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능력을 언제 깨우치느냐에 따라 우려한 것이 눈앞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4월 17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