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 호치티에프 등 유럽업체 M&A 통해 사업 다각화 매진
방향성 잃은 국내 건설업, 향후 전략 제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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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업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조 단위 손실을 기록해 온 해외 사업은 추가 손실 여부도 파악을 못 하고 있다. 저유가로 중동 시장 침체가 이어지며 먹거리 확보도 쉽지 않다.
글로벌 건설사들도 과거 저마다의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기술력 확보에 집중해 경쟁력을 키운 벡텔(Bechtel)부터 전통적 '건설'에서 탈피해 금융회사에 가까운 모습을 띤 페로발(Ferrovial)까지 각자의 해법을 찾아 생존했다. 여전히 해외 사업이 '중동·플랜트'로 집중된 국내 건설사들도 향후 생존 전략을 결정해야 할 때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건설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와 글로벌 건설사들의 수익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2012년까지 국내 건설사들은 해외 매출규모 및 비중에서 모두 정체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기업은 지속적인 성장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건설사들이 보인 '선제적 변화'가 성장을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건설사들도 전통적인 시공 위주의 사업 구조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변화에 직면했고, 이를 통해 저마다의 해법을 찾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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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건설사들의 변화 과정은 크게 기술력 확보 중심의 '전문화' 유형과 다양한 사업구조 중심의 '다각화' 유형으로 양분된다.
전문화 유형에 속한 회사는 시공 외 기획·설계 등 고부가가치를 지닌 기술력 확보에 집중했다. 미국 벡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 벡텔은 중동 시장 중심 도급 사업에 집중해 역량을 키웠다. 이후 한국과 일본 건설사들이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중동시장에 진출하면서,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위기감을 느꼈다. 1980년대엔 미국 내수 시장 부진까지 겹쳐 경영 위기에 처했다.
벡텔은 단순 시공회사가 아닌 설계에서 관리에 이르는 고부가 영역 발굴에서 해법을 찾았다. 자신들을 ‘건설사’가 아닌 ‘컨설팅 회사’로 포지셔닝 할 정도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건설업계에 벡텔이 수행하는 사업의 90%는 공기 내에 준공된다는 인식을 심을 정도로 신뢰를 확보했다.
다각화 유형으로의 변화도 기존 사업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독일 건설사 호치티에프(Hochtief)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독일 내수 건설시장이 침체하면서 생존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수합병(M&A)을 돌파구로 삼았다. 직접 진출 대신 시장규모가 큰 현지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해 미국과 아시아 신흥국 등 신규 시장에 진출했다. 전통적 건설 외 개발·운영·관리 영역의 회사까지 흡수했다.
스페인의 페로바도 2000년대 초반까지 전통적인 시공 사업에 치중했지만, 기존 사업에서 위기를 느끼고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금융을 활용해 공항 및 도로, 주차장에 이르는 시설관리(O&M)에 사업 역량을 집중했다. 이후 7년여 만에 운영·유지관리 부문에서 회사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확보할 정도로 빠르게 체질변화에 성공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건설사들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생존을 위한 전략을 필사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며 “국내 건설사들은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분양으로도 충분히 수익확보가 가능했고, 국내 경기가 좋지 않을때마다 정부가 정책 지원까지 해주는 상황에서 해외에서 큰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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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을 할 수 있는 유연한 회사가 돼야한다는 점도 글로벌 건설사들이 얻은 교훈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건설사들은 과거 세계 금융위기에서 최근 저유가로 인한 중동시장 축소 등 환경 변화에도 생존에 성공했다. 금융위기 당시 사업비중을 건축에서 토목으로 빠르게 옮긴 세계 10위권 건설사 오스트리아 스트라벡(Strabag)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방시(VINCI)는 전세계에 걸쳐 자회사만 2246여곳(2011년 기준)에 달한다. 회사의 고용 정책 목표를 ‘세계화의 가속화’에 둘 정도로 전 세계에 걸쳐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스웨덴 스칸스카는 다수의 현지 법인를 통한 소규모 공사들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구조를 짰다. 대규모 수주경쟁을 통해 '외형 확대'에 집중한 국내건설사와 대비된다.
최석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기술정책연구실장은 “유럽 건설사들의 해외 자회사들은 글로벌 도급순위 500위에 들지 못할 정도로 소규모 회사들로 구성돼있다”며 “한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정리하기 쉽기 때문에 회사 전체로 손실이 이전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화와 다각화 사이에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국내 건설사들은 향후 전략을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국내건설사가 수주한 해외 물량 중 97%가 발주처를 통한 도급형 사업일 정도로 획일화된 사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국내 건설사가 미국과 유럽을 위협했듯 인도와 중국이 국가지원과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흡수하고 있다. 시공 외 사업의 기획 및 개발·설계·유지관리 영역으로는 여전히 '걸음마'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 실장은 "전문화 유형으로 가려면 매출 확대를 통한 몸집 키우기 경쟁에서 벗어나,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고민에 나서야 한다"며 "반면 다각화로 가려면 단시간 내 원천기술 및 시장확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M&A가 효과적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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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4월 24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