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와 네트워킹으로 이뤄진 CFO, 투자자 신뢰 주지 못해
산업 성숙기·혁신 둔화…생존을 위한 '시스템'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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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넥슨 주축인력들의 퇴사가 줄이었고 김정주 넥슨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4일 내로 우호 지분을 확보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에 김정주 회장은 회사 내부자금을 진경준 씨 등 지인에게 빌려준 후 우호지분을 매입하도록 했다. 4개월 뒤에는 갚으라는 조건과 함께. 이 과정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요구하는 등의 과정은 전부 생략됐다. 기본적인 내부 통제도 없었다"(A 회계사)
#2 "카카오가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예상보다 투자자 수요가 더 몰렸다. 증액 발행까지 할 정도로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신용평가사에서 차입금 비중을 낮추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바이백'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B 증권사 크레딧 팀장)
꾸준한 성장성을 보이는 IT업체들이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IT업계의 자금 운용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창업주의 독단적 판단에 지배되는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방식이 여전한데다 기업 규모에 맞는 중장기적인 자금관리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IT기업들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유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CEO 결정에 대한 견제와 함께, 자금조달 다각화에 나설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며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 벤처 신화 이룬 IT 대기업들...CFO는 '창업자 대학동문'
국내 IT 기업의 성공 스토리는 창업주들의 1인 신화였다. 이해진(네이버 의장), 김범수(카카오 의장), 김택진(NC소프트 대표), 김정주(넥슨 회장) 등 국내 벤처기업 1세대 CEO들은 자신이 일궈온 '평판'을 바탕으로 투자를 유치했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 규모를 키웠다. 변화가 급격하고 회사의 수명이 채 3년을 넘기기도 힘든 IT업계의 특성상 대규모 인수·합병(M&A), 주력사업의 전환에서는 창업주의 '감'이 기업의 성패를 갈라왔다.
문제는 이 같은 의사결정 구조가 여전해 체계적인 기업운영과 리스크 관리, 자금운용 방식이 커진 기업규모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여전히 CEO가 내린 의사결정의 영향력이 크다보니 CFO로 대표되는 재무 라인의 역할은 한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CFO 라인들 상당수가 창업자의 지인, 친구, 대학동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카카오의 경우. 다음 CFO를 역임했던 최세훈 카카오 최고재무책임자는 이재웅 다음 창업자와 연세대 동문으로 알려진다. 네이버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한 황인준 상무는 네이버 이해진 의장과 절친한 사이인 김정주 넥슨 회장과 부친간의 법조계 인맥으로 이어져 있다.
넥슨의 경우도 2011년 넥슨의 일본 상장을 전담했던 최승우 전(前)일본 넥슨 대표가 창업주 김정주 넥슨 회장의 대학 동문이자 동갑내기 친구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벤처 시절부터 회사를 키워온 CEO입장에서는 자신이 투자 유치 등 회사의 자금조달을 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FO를 따로 두는 사례는 드물다"라며 "대부분 IPO 준비 단계에서부터 인맥을 활용해 금융권에서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CFO로 스카웃 해오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CFO 확보 경쟁 붙은 美 실리콘밸리 기업…조달 다각화 등 체질변화 이끌어
해외IT기업들은 규모가 커질수록 CFO들이 CEO를 견제하며 자금운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CEO의 결정에 적극 반대의견을 펼치기도 한다.
2012년 휴렛패커드(HP)가 영국 소프트웨어 회사 '오토노미' 인수를 추진하던 당시가 대표적인 사례. CFO를 맡았던 캐시 레스젝은 이번 인수에 대해 "가격이 너무 비싸고 회사는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인수"라며 HP의 CEO 레오 아포테커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비록 인수는 강행됐지만 피인수회사인 오토노미가 곧 분식회계 논란에 휘말려 HP는 당시 인수금액 약 12조6000억원(110억달러) 중 약 10조(88억달러)를 감가상각해 손실처리하는 파국을 맞이했다. 이 결과로 CEO는 불명예 퇴진했지만, 캐시 레스젝은 현재까지 CFO 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문화가 가능한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 IT기업들 사이에서는 예산 집행이 CFO 고유의 권한으로 명확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EO가 사업상 큰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자금 운용 권한이 CFO에 있기 때문에 비교적 원활히 견제가 이뤄진다는 것.
이러다보니 CFO의 전문성은 CEO만큼이나 더 주목받고 있다. 미국 IT 기업들은 높은 연봉과 지분을 제시하며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은 CFO들을 물색하고 있다. 구글은 모건스탠리의 CFO였던 루스 포랫을,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는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CFO 로런스 토시를 CFO로 데려왔다.
글로벌 IT공룡들은 재무 라인에 힘을 실어주면서 자금조달의 다각화도 함께 노리고 있다.
구글·애플·아마존 등 천문학적인 현금을 내부에 쌓아놓은 IT 선두 기업들이다. 현금이 필요하다면 내부자금으로도 충분히 충당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 이들 기업은 꾸준히 채권발행에 나서며 시장과 소통하고 시장에 신뢰를 제공하고 있다.
당장 자금이 필요하지 않고, 일정 정도 금리도 지급해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유사시를 대비한 자금조달 포트폴리오를 늘려가는 전략인 셈이다. 이런 움직임들이 쌓이면서 투자자들은 IT기업들에 신뢰를 구축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난다. 세계적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가 한때 기업가치평가(벨류에이션)에 대한 거품 논란이 일며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자 회사채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배경으로 풀이된다.
국내 IT기업들도 커진 규모와 20여년의 역사를 계기로 이 같은 시스템의 구축과 투자시장의 신뢰회복을 쌓아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 증권사 크레딧 연구원은 "사업적인 의사결정과 별개로 자금 조달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재무적 버퍼(Buffer)를 쌓는 등 일정정도의 경험이 필요한 문제"라며 "CEO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외부 CFO의 영입 등 IT업체들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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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7월 05일 09:47 게재]